[르포] '핑크타이드 시즌2' 앞둔 중남미…"룰라가 돌아온다"
(상파울루=뉴스1) 최서윤 기자 = 브라질 대선 결선 투표일인 30일(현지시간) 오전 7시 상파울루 외곽 상베르나르드두캄푸 지역 투표소인 공립초등학교 '에스쿠엘라 플로렌시아' 앞에는 투표 시작 한 시간 전인데도 족히 100m는 넘어 보이는 긴 대기줄이 늘어서 있었다.
이곳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전 대통령의 투표소로, 그의 투표 현장을 직접 취재하기 위해 브라질 국내 언론은 물론 외신 기자 수백 명이 모여 열띤 취재 열기를 보인 것이다.
이날 룰라 전 대통령은 9시 13분쯤 투표소에 도착해 9시 20분쯤 투표소로 들어갔다. 부인 잔자 여사, 페르난두 아닫 상파울루 주지사 후보도 함께였다.
9시 24분쯤 투표를 마친 룰라 전 대통령은 투표소 옆 한쪽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서 당선 후 다짐을 발표하고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브라질은 물론 중남미 각지에서 모인 취재들로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취재 열기를 보였다.
중남미 언론사 기자들은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한결같이 2003~2010년 재임 당시 '중남미 핑크타이드(좌파 물결)' 속 지역 통합을 이끌었던 룰라 전 대통령의 당선 관련 기대감을 내비쳤다.
물론 이날 새벽 중남미 지역 언론에도 집중 보도된 한국의 이태원 참사와 관련, 기자에게 "150명 넘게 사망한 가슴아픈 뉴스를 봤다. 깊이 애도한다"며 위로의 말을 전하는 것도 있지 않았다.
◇"강력한 중남미 지역 통합·협력 기대"
룰라 당선 시 브라질과 함께 '핑크타이드 시즌2'를 견인할 멕시코에서는 텔레비사, 카날14 등 여러 언론사에서 현장을 찾았다.
멕시코 카날14 방송 클라우디아 마르티네스(38) 기자는 "지금 멕시코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MLO·줄여서 '암로') 정부가 좌파이기 때문에 룰라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좌파정부 양국간, 중남미 통합이 강화될 수 있다"며 강한 기대감을 보였다.
최근 중남미 지역에 완연한 좌파 정부 출범 바람 첫 시작점이 바로 2018년 집권한 멕시코 암로 정부다.
마르티네스는 "(지역 내) 경제, 국제관계, 무역 등 협력분야도 많고, 중남미 자체 통합기구인 '우나수르(UNASUR·남미국가연합)'나 '메르코수르(MERCOSUR·남미공동시장)'같은 기구들이 다시 활성화 될 수 있을 것이라 룰라 당선 여부에 아주 관심이 높다"고 부연했다.
과거 룰라 정부 시절 브라질과 베네수엘라를 주축으로 유럽연합(EU) 같은 통합을 꿈꾸며 좌파 국가들 간 창설한 우나수르는 보우소나루 대통령 취임 첫 해인 2019년 브라질의 공식 탈퇴로 유야무야 됐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우나수르를 탈퇴하면서, 남미 지역 친미 우파 국가 모임인 프로수르(PROSUR)를 출범, 중남미 좌파 연대 와해를 시도했다. 그러나 최근 인근 국가에 다시 좌파 정부가 속속 출범하면서 우나수르 재활성화 필요성이 커지는 상황이다.
옆나라 아르헨티나의 룰라 복귀 여부 관련 관심은 지대했다. 취재 대기줄을 오가며 방송한 크로니카TV 리포터는 "투표소가 위치한 이 동네는 룰라 전 대통령이 성장한 곳"이라고 소개했다. 또 "보우소나루 정부 기간 무기 구매가 수월해져 치안이 악화됐다"며 현 정부의 실책을 지적, 룰라의 귀환을 바라는 마음을 에둘러 표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카날9 방송 누엘리아 그리헤라(43) 기자는 "브라질은 아르헨티나의 가장 중요한 무역 상대국이라 이번 선거 결과가 너무나 중요하다"며 "룰라가 되면 지역 통합이 강화될 것으로 믿어 특히 관심이 많다"고 했다.
아르헨티나 공영방송(TV Pública)의 플로렌시아 로드리게스(36) 기자는 "보우소나루 정부 때 브라질은 너무 고립됐었다"며 "현재 중남미 국가들은 물론 미국도, 유럽도 사실상 룰라의 당선을 원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룰라가 당선하면 무역이 활성화 될 걸로 믿는다"며 "아르헨티나가 내년에 대선이 있어서 정권이 바뀔 수도 있지만, 현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정부가 좌파 정부이기 때문에 일단은 협력 강화도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칠레 메가메디아의 안드레아 아리스테기(43) 기자는 "브라질은 원래 중남미에서 아주 중요한 국가라 늘 브라질 대선이 큰 관심사이지만, 올해 대선은 칠레의 현 가브리엘 보리치 정부가 사회주의 좌파 계열이기 때문에 더 특별하다"고 말했다.
그는 "보우소나루 정부는 칠레 현 정부와 이념적으로도 상당히 거리가 있고 협력이 쉽지 않다"며 "룰라 전 대통령이 당선하면 기후변화나 사회 정책 등 보리치 정부와 협력할 수 있는 게 아주 많기 때문에 특히 이번 대선을 통한 룰라의 복귀 여부에 관심이 많다"고 강조했다.
우루과이 카날4 방송 레안드로 파군덱(28) 기자는 중남미에 좌파 정부 출범 바람이 부는데 우루과이는 몇 년 전 보수 정권으로 교체된 데 아쉬움을 표했다.우루과이는 2020년 3월 라카예 포우 현 정부가 출범하는 과정에서 진통을 겪었다. 2005년 3월 사상 첫 좌파 정부가 출범한 이래 3연속 집권해왔는데 우파 4개 정당이 연합해 절반의 지지를 확보, 정권교체를 이룬 것이다.
그는 "이번 브라질 대선은 지난 우루과이 대선 때처럼 상당히 양극화된 선거다. 여론조사 보면 격차가 실제론 2%포인트(p) 정도 나는 것 같다"며 "나라가 반토막 나는 선거"라고 짚었다. 당선된 뒤에도 한동안 진통이 클 거란 우려다.
룰라 전 대통령은 이날 투표를 마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중남미 취재진의 우려와 열망을 반영한 듯 국내적으론 협치와 함께 대외적으론 중남미 국가들과의 협력 강화 의지를 강조했다.
룰라 전 대통령은 중남미 핑크타이드(좌파 물결) 전성기인 2003~2010년 재임, 공격적인 사회지출로 수백만 명을 빈곤에서 구출하고 대외적으로도 좌파 정부들과 다각도로 협력하며 '좌파 대부'격으로 칭송받았다.
1990년대 초 중남미 민주화 바람과 함께 시작된 좌파 정부 출범 물결은 룰라 재임 기간 절정을 이룬 뒤 조금씩 쇠퇴, 룰라의 2018년 수뢰 혐의 유죄 판결과 함께 무너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 중남미 지역에서 2018년 △멕시코 로페스 오브라도르 정부를 시작으로, △아르헨티나 알베르토 페르난데스(2019) △볼리비아 루이스 아르세(2020) 그리고 2021년 △페루 페드로 카스티요와 △칠레 가브리엘 보리치, 2022년 △온두라스 시오마라 카스트로와 △콜롬비아 구스타보 페트로 정부 등 속속 다시 좌파 물결이 재현하고 있다.
이제 중남미에 '두 번째 핑크타이드' 조건이 갖춰졌고, 룰라가 그 마지막 퍼즐 조각이란 점은 이번 브라질 대선을 대외적 측면에서 바라볼 때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로 꼽히고 있다.
sab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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