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한 당신] 48년 전 원주민 전사의 호소와 아카데미의 조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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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남성을 향한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와 '오스카(Oscar)'의 강박적 편애를 눅인 건, 인종-성차별의 그릇됨을 바로잡자는 공감대 말고도, 망하지 않으려면 달라져야 한다는 위기의식일 것이다.
1973년 3월 27일 LA 도러시 챈들러 파빌리온에서 열린 제45회 아카데미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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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남성을 향한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와 ‘오스카(Oscar)’의 강박적 편애를 눅인 건, 인종-성차별의 그릇됨을 바로잡자는 공감대 말고도, 망하지 않으려면 달라져야 한다는 위기의식일 것이다.
영화업계는 2015, 16년의 해시태그 ‘#OscarsSoWhite’ 캠페인을 저 변화의 분수령으로 꼽는 모양이다. 2015년 1월 AMPAS가 발표한 오스카상 연기부문 후보자 20명 가운데 비백인은 한 명도 없었다. 미디어 다양성 옹호 활동가 에이프릴 레인(April Reign)이 명단 발표 직후인 1월 15일 트위터로 저 운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AMPAS는 이듬해 아카데미 연기상 후보도 보란듯이 전원 백인이었다. 2016년의 반발과 해시태그 캠페인은 훨씬 격렬했다. 영화 제작자 스파이크 리와 배우 제이다 핑킷 스미스가 시상식 보이콧을 선언했다. 리는 할리우드의 인종주의에 대한 ‘진짜 전쟁(real battle)’을 촉구했고, 2년 연속 시상식을 보이콧한 제이다는 페이스북 영상으로 “이제 어떤 그룹에 대한 사랑과 인정, 존중을 더는 구걸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 스스로 우리의 자원을 우리만의 커뮤니티와 프로그램에 투입해, 우리가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소위 ‘주류’들이 그래왔듯, 우리가 우리를 인정해야 할 때가 아닐까”라고 말했다.
올해 초 시상식에서 제이다 핑킷 스미스에 대한 부적절한 농담으로 제이다의 남편 윌 스미스에게 맞은 코미디언 겸 영화인 크리스 록이 2016년 시상식 진행자였다. 그는 오프닝 멘트로 이렇게 말했다. “할리우드가 인종주의자인가? 당신들 말이 맞다. 할리우드는 인종주의자다.(…) 불타는 십자가를 든 인종주의자는 아니지만(…) 다른 유형의 인종주의자다.(…) 우리는 기회를 원한다. 백인 배우들만큼 흑인 배우에게도 기회를 주라. 그거다. 리오(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매년 대단한 배역을 맡는다. 제이미 폭스도 그런가?” 2017년 오스카상 남녀 주조연 전 부문에는 흑인 후보가 포함돼 남녀조연상을 모두 흑인 배우가 받았고, 작품상도 ‘문라이트’의 흑인 감독 겸 제작자 배리 젱킨스가 받았다.
‘#OscarsSoWhite’ 해시태그 열기가 뜨겁던 2016년 초, 만 69세 한 무명 전직 배우가 제이다의 용기에 찬사를 보내는 이메일을 썼고, 당일 제이다가 답장을 보냈다. “친애하는 사신 리틀페더(Sacheen Littlefeather)께: 일부러 시간을 내어 제게 편지를 보내주셔서 진심으로 영광스럽습니다.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잘 알고, 당신의 오스카 시상식 연설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당신의 용기와 담대함은 우리에게 소박한 진실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우리가 갈 수 있는 길을 닦아주었습니다.”
1973년 3월 27일 LA 도러시 챈들러 파빌리온에서 열린 제45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명명된 영화 ‘대부’의 주인공 말런 브랜도를 대신해 미국 원주민 출신의 한 무명 단역배우가 원주민 전통의상을 입고 단상에 올랐다. 그는 영화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 역을 갓 맡은 로저 무어가 건네는 오스카 트로피를 손짓으로 물린 뒤 단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파치(부족 출신)이고, 미국 원주민 이미지회복위원회 의장입니다. 저는 말런 브랜도를 대신해서 이 자리에 섰고, 그가 왜 이 고마운 상을 받을 수 없는지 이유를 밝힌 긴 연설문을 지니고 있지만, 시간 관계상 그걸 여러분께 모두 읽어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가 상을 거부하는 이유는 북미 원주민들이 영화와 방송에서 당하고 있는 처우…” 박수갈채와 야유가 함께 터져 나오면서 잠깐 멎은 리틀페더의 연설은 이렇게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 빚어지고 있는 ‘운디드 니(Wounded Knee) 점거 대치’ 사태 때문입니다. 제가 오늘 밤 여러분의 행사를 방해한 게 아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저는 언젠가 우리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사랑과 관대함으로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런 브랜도를 대신해 감사드립니다.”
그의 연설이 진행되는 동안, 객석에서는 영화 속 '인디언 전사'들이 지르는 괴성과 함께 ‘토마호크’ 도끼를 휘두르는 걸 흉내내며 그를 조롱한 이들이 있었다. 여우주연상 수상자 라켈 웰치(Raquel Welch)는 수상 소감을 밝히며 “수상자가 (정치적) 명분을 언급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런 브랜도를 우회적으로 비난했고, 최우수작품상 수상자 클린트 이스트우드 역시 “존 포드의 서부영화에서 총을 쏜 모든 카우보이를 대신해서”라며 조롱에 동조했다. 앞서 리틀페더가 연설을 하는 동안, 수상자 발표를 위해 대기실에 있던 서부영화의 영웅 존 웨인이 화를 못 참고 무대로 뛰어나가려는 걸 보안요원들이 가까스로 저지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해 시상식 쇼 프로듀서 마티 퍼세타(Marty Pasetta)의 증언과 리틀페더의 인터뷰를 통해 알려진 저 일화는, 당시 65세의 존 웨인이 폐암 수술 후유증으로 숨쉬기도 힘들던 때여서 와전됐거나 과장된 것이라는 반박도 있지만, 그해 시상식장 파문의 강도를 짐작케 하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지금도 회자된다.
시상식 총감독의 제한 탓에 ‘딱 1분’ 만에 끝맺어야 했던 리틀페더의 연설은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표출된 역사상 최초의 정치적 발언이었고, 마침 그해 시상식은 위성 생중계 방식이 도입된 첫 해였다. 전 세계 약 8,500만 명의 시청자가 그 장면을 지켜봤고, 정부(CIA)의 보도 통제로 미국인 대다수가 모르고 있던 사우스다코다 파인리지 라코타 수족의 저항운동도 세상에 알려졌다.
사신 리틀페더(본명 Marie Louise Cruz)는 1946년 11월 14일 캘리포니아 살리나스에서 아파치-야키 혈통 원주민 아버지와 프랑스-독일-네덜란드계 백인 어머니의 3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부부가 인종간 결혼을 허용하지 않던 애리조나를 떠나 서부로 이주한 직후였다. 훗날 리틀페더는 “나는 애리조나 원주민보호구역에서 잉태돼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고, “당시는 2차대전이 갓 끝난 뒤였지만 가난과 질병, 학대와 인종주의에 대한 나의 전쟁은 그때부터 시작됐다”고 말했다. 마구(馬具) 장인이던 부모 모두 정신질환을 앓았고, 특히 아버지는 청각장애까지 앓던 폭력적인 가장이었다. 리틀페더 자매는 백인 외조모 가정에서 성장했고, 학교에서도 피부색 때문에 따돌림당하곤 했다. 고교 졸업 후 하트넬 주니어칼리지에서 초등교육학을 전공한 그는 69년 모델이 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이주,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연기를 공부하며 자잘한 모델 일과 영화 단역으로 돈을 벌었다.
반전-인권운동 열기와 더불어 원주민 권익운동도 활기를 띠던 무렵이었다. 리틀페더는 지역 원주민협회에 가입해 활동하며 원주민들의 앨커트래즈 점거농성(1970)에도 가담했고, 이름도 원주민 식으로 개명했다. 앨커트래즈 농성을 현장에서 지지한 배우들 - 앤서니 퀸, 제인 폰다 등 -을 알던 그는 베이에어리어의 이웃이자 촬영 현장에서 안면을 익힌 ‘대부’의 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를 통해 말런 브랜도를 소개받았다. 미국의 냉전 외교정책 등을 비판하며 다양한 진보적 의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던 ‘할리우드의 반골’ 브랜도에게 원주민 인권 의제를 소개하고 지지를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둘이 알게 됐고, 그 결과가 오스카 시상식 사건이었다.
시상식 당일 브랜도는 리틀페더를 집으로 초대, 비서와 함께 즉석에서 작성한 8쪽 분량(739단어)의 연설문을 건넸다. 원고 작업이 늦어져 리틀패더는 개막 15분 전에야 시상식장에 도착했고, 총감독(Howard Koch)의 ‘단 1분’ 허락을 얻었다. 2021년 인터뷰에서 리틀페더는 “객석이 마치 표백제(Clorox)의 바다 같았다. 유색인종은 극소수였다”고 기억했다. 시상식 다음 날 뉴욕타임즈는 말런 브랜도의 연설문을 전재했다.
“(할리우드는 영화를 통해 줄기차게) 원주민을 비하하고, 야만적이고 적대적이고 사악한 존재로 묘사하며 끊임없이 조롱해왔다. 이런 세상에서 자라야 하는 아이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자기 혈통이 그렇게 묘사되는 티비나 영화를 보며 그 아이들이 겪을 마음의 상처를 우리는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시상식 후폭풍도 만만찮았다. 원주민 인권단체들은 당연히 환호하며 리틀페더의 용기에 찬사를 보냈다. 비난도 거셌다. 리틀페더는 브랜도가 고용한 멕시코계 매춘부다, 스트리퍼다, 진짜 원주민도 아니고, 의상도 빌려 입었다더라… ‘직접 말하지 않고 비겁하게 불쌍한 여자를 내세운’ 브랜도를 비난한 이도 있었다. 앞서 리틀페더가 ‘미스 아메리카 뱀파이어’ 경연대회에서 우승해 그 부상으로 제임스 골드스톤의 갱스터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한 일, 잡지 ‘플레이보이’가 기획한 ‘열 명의 인디언 모델 Ten Little Indians’ 10명 중 한 명으로 누드사진을 촬영한 일 등이 음해의 불쏘시개로 활용됐다. 플레이보이의 원주민 기획은 발행인 휴 헤프너에 의해 백지화됐다가 시상식 후 리틀페더의 단독 화보로 73년 10월호에 실렸다. 훗날 인터뷰에서 리틀페더는 “메시지가 못마땅하면 메신저를 죽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그 메신저였다”고 말했다. 말런 브랜도는 “미국 역사에서 원주민은 목소리 없는 존재로 밀쳐져 있었다.(…) 시상식장의 그들은 최소한 그의 말을 경청하는 예의 정도는 갖춰야 했다”고 말했다. AMPAS는 오스카상 대리수상을 금지했다.
리틀페더는 북미원주민협회 대변인 등으로 일하며 몇 편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지만 배우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CIA가 그를 채용하지 말라고 압력을 행사했다는 말을 지인들로부터 전해 들었다며 자신은 “블랙리스트가 아닌 레드리스트의 희생자”라고 말했다. 그는 20대에 한 차례 결혼-이혼한 뒤 원주민 전통춤의 대가로 알려진 찰스 코시웨이(Charles Koshiway, 2021년 작고)와 결혼해 32년간 해로하며, 캘리포니아 지역 원주민 공동체 기도모임 등을 말년까지 이끌었다.
원주민 혈통을 부분적으로 이어받았다고 공개한 바 있는 오클라호마 출신 정치인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이 2012년 매사추세츠 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을 때의 일이다. NBC 시사토크 프로그램 ‘투나잇 쇼’에서 우파 정치평론가 데니스 밀러(Dennis Miller)가 워런을 두고 “자칭 인디언이라고 말한 그 계집(chick)?”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진행자(Jay Leno)가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아니라고 하자, 밀러는 “대부로 오스카를 받은 브랜도가 시상식장에 보낸 그 스트리퍼 인디언과 마찬가지 아니냐”고 반문하며 “오늘 나도 워런 캠프에 후원하긴 했는데, 워런을 열 받게 하려고 돈 대신 구슬(원주민 장식품)을 보냈다”고 말했다. 리틀페더는 방송사에 항의하며 공식 사과를 요구했지만 허사였다.
AMPAS가 리틀페더에게 공식 사과한 것은 73년 시상식 후 48년 만인 2021년 6월이었다. AMPAS 의장 데이비드 루빈(David Rubin)은 리틀페더에게 보낸 편지에 “당신이 감당해야 했던 정서적 부담과 당신의 이력에 미친 손해는 어떻게도 보상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당신이 보여준 용기는 너무 오랫동안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당신에게 우리의 깊은 사죄와 진정한 경의를 보냅니다”라 썼다. 아카데미 박물관장이던 재클린 스튜어트(Jacqueline Stewart)는 박물관의 아카데미 구술사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리틀페더를 방문, 액자에 담은 루빈의 편지를 읽어주며, 원주민 여성 최초로 오스카 시상식 무대에 불청객으로 섰던 그를 인터뷰했다. 리틀페더는 먼저 세상을 뜬 그의 원주민 운동 동료들 - 데니스 뱅크스, 러셀 민스 등 - 과 남편을 언급하며 “너무 오래 기다렸다”며 흐느꼈다. 그러곤 “우리 원주민들은 참을성이 많은 사람들이다. 겨우 50년 아닌가(…) 우리는 항상 유머감각을 지녀야 했다. 그게 우리가 생존해온 비결이다”라고 말했다. 리틀페더 역시 2018년 발병한 유방암(4기)이 폐로 전이돼 암 투병 중이었다.
그러곤 그날 시상식장에서 하려던 말, ‘우리 원주민’이 하려던 말을 아카데미가 허락한 자리에서 비로소 말했다. “우리를 영화에 출연시키고, 우리의 진짜 모습을 연기할 수 있게 해달라. 당신들의 영화산업의 일부, 즉 프로듀서와 감독과 작가가 되게 해달라. 우리 이야기를 우리 자신이 쓸 수 있게 해달라. 우리가 우리일 수 있게 해달라.”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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