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사당한 청춘들… 국가는 또 없었다
전조 있었지만 정부와 지자체는 외면
세월호 참사 공통점 '안전 의식' 결여
"행사 주최 없었기에 더 신경 썼어야"
"대응·복구보다 예방·대비에 초점을"
꽃보다 눈부신 154명의 청춘들이 허망하게 쓰러졌다. 이들은 3년을 기다린 '핼러윈 데이'에 길이 40m, 폭 3.2m의 좁은 비탈길에서 압사당했다. 사고 현장은 아비규환이었고 살아남은 이들에게도 악몽이었다. 이번 참사는 2014년 4월 16일 304명이 사망한 세월호 사건 이후 8년 만에 발생한 후진국형 사고였다. 국가는 존재하지만, 항상 참사가 발생한 뒤에 등장했다.
재난 전문가들은 10만 명이 밀집하는 핼러윈 데이에 행사 주최가 없었다면 국가가 나서 안전사고를 대비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임 주체가 없을 때야말로 안전사고에 더욱 대비를 했어야 한다는 의미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는 '국가개조론'을 언급하며 재난 시스템 개혁을 선언했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버티는 힘 약한 여성 피해 커…사망자 154명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30일 오후 9시 기준 사망자는 154명에 부상자는 132명으로 총 28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사망자는 오전 2시 10분 59명에서 오전 2시 40분 120명, 오전 4시 146명, 오전 9시 151명으로 증가했다. 부상자 대부분이 심폐소생술(CPR)을 받으며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숨졌다. 소방당국은 중상자가 적지 않아 사망자는 더 증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피해자 대부분은 20대로 외국인 사망자도 26명 있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인명 피해로,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충격은 더욱 컸다.
사망자 가운데 여성은 98명, 남성은 56명으로 집계됐다. 서울 용산구 해밀턴호텔 옆 비탈길(경사각 5.7도)에 한꺼번에 인파가 몰리면서 상대적으로 힘이 약하고 체격이 작은 여성들의 피해가 컸다.
세월호와 비견될 대형 참사
이번 사고는 세월호 참사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사상자가 많고 피해자 대부분이 10~20대라는 점도 있지만, 안전 의식 결여로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도 공통점으로 꼽힌다. 세월호는 예고된 참사였다. 세월호의 재화 중량은 987톤임에도 2,213톤이나 적재했고, 평형수 1,703톤을 채워야 함에도 800톤 미만만 싣고 출항했다. 화물의 고박 상태도 불량해 세월호가 급선회하자 복원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참사에서도 10만 명이 이태원에 몰려들 것이라고 예고돼 있었지만 적절한 통제는 없었다. 좁고 가파른 골목길에 인파가 몰렸지만 어떤 경고음도 없었다. 세월호가 급선회를 계기로 침몰했듯, 이태원에서도 중압감을 이기지 못한 누군가가 넘어지면서 도미노처럼 대형 사고로 이어졌다.
문현철 숭실대 재난안전관리학과 교수는 "세월호는 바다에서, 이태원 참사는 육상에서 발생했을 뿐, 안전 문화 결여가 비극을 초래했다는 점에선 차이가 없다"며 "위험 전조가 보이면 위험하다고 외쳐야 하지만 누구도 외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후진국형 참사 막으려면…대응·복구보단 예방·대비에 초점을
이번 사고가 전형적인 후진국형 참사라는 점도 뼈아프다. 우리나라 재난관리 시스템이 예방과 대비보다는 대응과 복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대형 참사에는 속수무책이라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정상만 한국재난안전기술원장은 "우리나라는 재난 관리에 30%를, 사후 대응 복구에 70%를 투자하는데, 이런 기조가 유지되는 한 이런 비극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행사 주최가 없어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데, 오히려 주최가 없으니 정부와 지자체가 더 신경 썼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나욱정 안동과학대 소방안전과 교수는 "2주 전부터 10만 명이 이태원에 모일 것으로 예상됐는데도 전혀 대비하지 않았다는 게 후진국형 참사임을 보여준다"며 "사람들이 밀집되는 것만으로도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에 1차적 책임이 있지만, 개개인이 안전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인식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문 교수는 "안전은 내가 나를 보호하고, 내 주변을 보호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위험을 감지하면 신고하고 공유하는 문화가 정착됐다면, 이번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성원 기자 support@hankookilbo.com
이정원 기자 hanak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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