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변질된 핼러윈
핼러윈데이는 원래 종교 축제다. ‘모든 성인의 날’이란 기독교 축일이 아일랜드 전통 축제와 섞이면서 1000년 전부터 유럽에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일랜드와 영국, 그리고 영국 식민지였던 미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정도에 국한된다. 같은 기독교라도 유럽 대륙의 가톨릭, 동유럽 정교회 나라에선 여전히 낯설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과 일본은 매우 특이하다. 종교적 의미는 사라지고 청춘들의 열기가 분출하는 축제로 변했다.
▶핼러윈 파티가 우리 유치원, 초등학생에게 생일잔치만큼 중요하게 된 지 10년 가까이 된다. 어린이 영어 교실에서 교육에 핼러윈 축제를 활용하면서 유행했다고 한다. 성인들에겐 젊은 원어민 영어 강사들의 파티가 영향을 미쳤다. 외국인이 많이 사는 서울 이태원이 핼러윈 성지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 역시 같은 이유로 외국인 클럽이 많은 도쿄 시부야가 핼러윈 성지가 됐다. 그 과정에서 테마파크, 식품업체의 상술이 개입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환경적인 위험성도 비슷하다. 4년 전 시부야에서 일명 ‘크레이지 핼러윈 사건’이 일어났다. 한꺼번에 몰린 군중이 폭도로 돌변해 기물을 때려 부수고 패싸움을 벌인 것도 모자라 여성을 성추행하는 난동을 일으켰다. 일본인은 집회, 응원, 축제 때 비교적 질서를 잘 지킨다. 그런데 핼러윈 불상사만은 끝없이 일어난다. 10월 마지막 주가 되면 일본 경찰은 테러 대비에 준하는 경비를 시부야에서 펼친다.
▶젊은 사람이 모이면 열기가 도를 넘을 때가 있다. 술까지 취하면 더 심해진다. ‘복면 심리’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핼러윈 축제 때 많은 사람이 기괴한 가면과 복장으로 분장한다. 한일 핼러윈엔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변신하는 ‘코스프레’ 놀이까지 끼어든다. 영미권처럼 최소한의 종교적 경건함이 있을 리도 없다. 긴장이 풀릴 수밖에 없다. 안전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태원에서 아까운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안전 대비에서 아쉬운 점이 한둘이 아니지만 원점에서도 돌아봐야 한다. 외래 문화를 이런 식으로 받아들인 게 과연 정상이었을까. 남의 문화를 잘못 받아들인 것이 사고의 원인은 아닐까. 영미권에서 핼러윈 사고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이웃을 돌아다니며 사탕을 받아오는 것처럼 그들에게 핼러윈은 공동체의 결속을 확인하는 문화라고 한다. 모든 축제의 본래 의미도 사실 이런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핼러윈 속엔 축제라는 가면을 쓴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정말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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