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키우느라 고생만” 아빠에게 보낸 생일 문자가 마지막 됐다
“그동안 키워주셔서 고생 많으셨어요, 차차 갚아 나갈게요♡”
30일 오후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김모(58)씨는 스마트폰 화면 속 스물다섯 딸이 보낸 카카오톡 문자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김씨의 딸은 전날 밤 발생한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숨졌다. 딸이 세상을 떠난 날은 바로 김씨의 생일이었다. 그는 “딸이 ‘엄마와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라’며 의왕에 있는 스카이라운지 레스토랑을 자기 돈으로 예약해줬다”며 “’딸 덕분에 42층에서 분위기 있게 식사 잘했다’고 메시지를 보냈더니 저런 문자로 답했던 아이인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의 딸은 이날 부모님에게 ‘핼러윈을 즐기러 이태원에 간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마지막 문자 이후 연락이 끊겼고, 딸은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다. 딸의 남자 친구 역시 함께 이태원에 갔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최근 지방 근무 발령이 나면서 직장인이 된 딸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얼굴 보는 게 고작이었다”며 “아이를 다 키워놔서 이제 걱정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슬퍼했다.
이날 희생자 6명의 시신이 안치된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에서는 서모(20)씨의 어머니 안모(54)씨의 울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안씨가 딸이 ‘사망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건 사건 당일인 29일 밤 12시쯤이었다. 안씨는 딸의 생사도 모른 채 무작정 이태원으로 향했고, 그 뒤엔 거기서 가까운 순천향대병원까지 걸어갔다고 한다. 신원 확인을 위해 병원에서 6시간을 기다리던 안씨가 들은 건 결국 딸의 사망 소식이었다.
안씨는 “딸은 남편과 사별한 나를 늘 다정하게 위로해 준 아이”라며 “곧 군 입대를 하는 남자 친구랑 이태원에 간다고 했었다”고 전했다. 서씨는 대학 진학도 포기하고 홀로 된 안씨와 지내면서 병원과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함께 생계를 꾸려갔다고 한다.
이날 새벽부터 사고 실종 신고 접수처가 설치된 한남동 주민센터에서 외동딸의 행방을 찾던 서모(67)씨도 슬픔에 흐느꼈다. 서씨는 “마흔을 넘어 얻은 외동딸이 회사에서 최근에 대리를 달았다고 좋아했는데 어떻게 하느냐”며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참사에서 사고 피해자는 이들 같은 20대, 그리고 여성 피해자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사망자 154명 중 10대가 4명, 20대가 95명이었다. 그 외에 30대 32명, 40대 9명, 연령 미상이 14명이었다. 사망자 154명 중 여성은 98명, 남성은 56명으로 확인됐다. 박찬석 서원대 소방행정학과 교수는 “경사진 골목에 사람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질 경우 상대적으로 체격이 작고 버티는 힘이 약한 여성들이 피해를 크게 당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10대 사망자 4명 중에는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서모(17)군이 있었다. 그는 서울 동대문구 삼육서울병원 장례식장에 이날 안치됐다. 서군의 이모는 이날 병원에서 취재진을 만나 “외아들이었던 조카는 공부도 잘하고 밴드부 동아리를 열심히 해 여동생이 매일 카톡으로 조카 자랑을 하는 게 일상이었다”며 “이날도 조카가 머리에 천사 날개를 쓰고 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했다. 서군의 이모는 “조카가 중학교 때 친구들과 이태원에 간다고 했다가 변을 당했다고 들었다”며 “입술이 터지고 머리에 타박상을 입은 조카를 보고 눈물이 쏟아졌다”고 했다.
외국인 사망자도 26명 나왔다. 이태원은 외국인 관광 특화거리로 지정돼 이국적인 음식과 옷가게 등으로 유명해, 사고 당일에도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몰렸다. 외국인 사망자는 미국, 일본, 중국과 이란, 노르웨이 등 12국에서 온 사람들로 확인됐다. 사고 희생자 미국인 앤 기스케(20)씨의 시신도 이날 오후 한림대성심병원에 이송됐다. 기스케씨는 한양대 간호학과 교환학생으로 한국을 찾았고, 방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외국인등록증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지지통신은 주한 일본대사관 관계자를 인용해 10대와 20대 일본인 여성 2명도 사고로 숨졌다고 보도했다. 이날 순천향대병원과 한남동 주민센터 등에는 외국인 희생자들의 친구나 지인들이 신원 확인을 하러 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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