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 젊은 나에게
사랑하는 너를 데리고 갈 데가
결혼 말고는 없었을까
타오르는 불을 지붕 아래 가두어야 했을까
반복과 상투가 이끼처럼 자라는
사각의 상자
야생의 싱싱한 포효
날마다 자라는 빛나는 털을 다듬어
애완동물처럼 리본을 매달아야 했을까
침대 말고 아이 말고
내 사랑, 장미의 혀
관습이나 서류 말고
아찔한 절벽 흘러내리는
모래 모래 모래시계
미치게 짧아 어지러운 피와 살
무성한 야자수 하늘 향해 두 손 들고 서 있는
모래 모래 모래사막
독수리의 이글거리는 눈망울을
사랑하는 너를
문정희(1947~)
진학, 취업, 결혼 등 인생의 분기점이 있다. 진학이나 취업이 혼자 이뤄야 한다면, 결혼은 상대가 있어야 가능하다. 결혼은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과 사람의 결합이 아닌 집안과 집안, 문화와 문화의 만남이다. 확장된 관계와 이에 따른 갈등 해법도 복잡할 수밖에 없다. 아이가 태어나면 삶은 더 다양해지고, 육아로 단절된 여성의 경력은 특히 많은 영향을 받는다. 시인은 인생의 황금기인 결혼 시점에 주목한다. 그때 결혼을 선택한 것이 과연 옳았는지 되묻는다.
“늘 새로 태어나기 바빠 해가 기울어 간 것도 몰랐다”는 시인의 말을 떠올리면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면서 타오르는 청춘의 불을 “지붕 아래 가두어야 했”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견뎌야 했던 날들에 대한 반추다. 야생을 잃어버린 채 “사각의 상자”에 갇혀 애완동물이 돼 가는 것에 대한 성찰이다. “반복과 상투”로 소비하기엔 인생은 너무 짧다. 장미 가시에 찔려 죽은 릴케처럼 사랑하고,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김정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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