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軍 발목잡았던 진흙탕, 이번엔 우크라에 부메랑
이 기사는 언론사에 의해 수정되어 본문과 댓글 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러시아군의 진격을 방해했던 ‘라스푸티차’가 이제는 점령지 수복에 나선 우크라이나군의 발목을 잡고 있다. 라스푸티차는 봄과 가을철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의 비옥한 흑토 지대가 온통 진흙탕으로 변하는 현상이다. 봄에는 눈 녹은 물이 넘치면서, 가을에는 한 달 이상 이어지는 가을장마로 인해 발생한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봄에는 우군이었던 자연현상이 가을이 되자 ‘적’으로 돌변한 셈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와 우크라이나 현지 매체들은 28일(현지 시각) “10월 초부터 시작된 가을장마로 우크라이나 남부와 동부 일대가 거대한 진창으로 변하면서 거침없던 우크라이나군의 진격이 어려움에 봉착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서방 지원으로 강화된 포병과 기갑 전력을 내세워 지난달 동북부 하르키우를 완전 탈환했고, 동부 돈바스의 루한스크주(州)도 일부 수복했다. 남부에서는 크림반도와 돈바스를 연결하는 요충지 헤르손을 고립시켜 탈환 직전에 왔다. NYT는 “하지만 최근 우크라이나군을 이끄는 (탱크와 장갑차, 자주포 등) 기갑 차량이 진흙탕에 빠져 옴싹달싹 못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특히 헤르손 지역은 농경지 사이로 관개수로가 이리저리 나 있는 탁 트인 평원이어서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고 전했다.
이는 올해 3월의 상황과 정반대가 된 것이다. 당시 러시아군은 날씨가 풀리면서 발생한 봄 라스푸티차로 인해 진군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로 인해 돈바스 지역을 단번에 점령하지 못했고, 키이우 공격에도 심각한 지장을 겪었다. 이는 러시아의 입장에서 전쟁이 장기화하는 계기 중 하나였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역사적으로 13세기 몽골군부터 19세기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군, 1940년대 나치 독일의 러시아 침공군까지 많은 군대가 이 ‘진흙 장군’에 발목이 잡혔다”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쪽 모두 어려움을 겪으면서 당분간 전선이 교착상태를 보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NYT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측 모두 한 발도 물러서지 않은 채 일전을 벌일 기세”라며 전투가 더 치열해질 가능성도 제기했다. 이 매체는 “특히 남부 헤르손이 격전지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우크라이나는 하루빨리 헤르손을 수복하고, 이 여세를 몰아 크림반도까지 진군해 가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또 러시아군도 헤르손 방어전을 준비하기 위해 민간인을 소개하고, 증원군을 속속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NYT는 “돈바스와 크림반도를 육로로 잇는 헤르손을 잃는다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심각한 군사적·상징적 타격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11월 중순이 지나면 전쟁을 어렵게 만드는 또 다른 난관인 ‘동장군(冬將軍)’이 온다는 점도 우크라이나의 마음을 급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 전쟁연구소(ISW)와 미국 국방부는 “겨울 전투가 시작되면 되면 양측 모두 중장비 기동력이 떨어지고, 식량과 연료 등 보급품 호송 지연이 발생하면서 ‘버티기 싸움’이 돼 내년 봄까지 계속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과 유럽연합(EU) 국가들의 경제 침체가 기정사실이 되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이 얼마나 계속될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그 전에 가능한 한 많은 점령지를 수복, 러시아와 담판에 나설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반면 러시아는 올겨울을 이용해 우크라이나를 곤경에 몰아넣으려 하고 있다. 이를 위해 10월 내내 우크라이나 후방의 전력과 수도, 지역 난방 시설에 무인기(드론) 공격을 감행해왔다. 우크라이나 국민이 혹독한 겨울을 버티기 힘든 상황을 만들어 항전 의지를 꺾겠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29일 “흑해 함대에 우크라이나군이 드론 공격을 가해 소해정(기뢰 제거함)이 손상을 입었다”며 이를 빌미로 “7월부터 계속된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겠다”고도 선언했다. 올해 상반기 전 세계 곡물 가격 급등을 유발했던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중단’을 재연해 서방국가들을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라스푸티차(Rasputitsa)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에서 봄(3~4월)에 눈이 녹거나 가을(10~11월)에 비가 내려 흑토 지대가 진흙탕으로 변하는 현상이다. 비포장도로가 많은 이들 나라는 이 기간 이로 인해 기갑 차량 등의 통행에 장애가 발생하면서 군사 작전을 펼치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란 최고지도자, 이스라엘에 “압도적 대응 받게될 것”
- 민주당 집회에 與 “특검은 핑계, 목적은 ‘이재명 방탄’”
- 사실혼 아내 마구 때려 숨지게 한 70대, 2심서도 징역 20년
- 한국, 쿠바와 평가전 13대3 완승… 2연전 싹쓸이
- "접종도 안하고 딸 얼굴 만져"…사진촬영 우려한 박수홍 아내, 무슨일?
- 인천서 성 소수자 축제 열려…기독교계에선 동성애 반대 맞불 집회
- 신경 안정제 먹고 무면허 운전한 20대 여성…9명 경상
- 日, 후쿠시마 원전 내 핵연료 잔해 13년만에 첫 반출
- '가을 한복판' 11월인데…서울 낮 기온 25도까지 치솟아
- ‘김건희 특검’ 민주당 대규모 집회…인파에 극심한 교통 체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