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발디 ‘四季’가 자연 묘사라고? 내겐 인간의 희로애락 담긴 걸작”
“내 생각에 비발디의 ‘사계’는 그저 자연을 묘사한 작품이 아니다.”
웬만한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하면 웃고 넘어가겠지만, 수화기 너머의 상대는 이탈리아 출신의 바로크 바이올린 거장 파비오 비온디(61). 4년 만의 내한 공연을 앞둔 그는 1991년과 2001년 두 차례 녹음한 비발디의 ‘사계’ 음반으로 전 세계 음악계에 돌풍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과감한 셈여림과 템포, 이탈리아 선배들의 표현을 이어받은 우아한 칸타빌레(’노래하듯이’라는 이탈리아어), 상상력과 창의가 돋보이는 통주(通奏) 저음을 통해 자신만의 비발디상(像)을 제시했다”(음악 칼럼니스트 이준형)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바로크 당대의 악기와 연주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시대 연주’를 표방하는 점은 이무지치 합주단 같은 이탈리아 선배들과의 차별점이기도 하다. 실제로 비온디의 음반은 ‘고풍스럽고 점잖다’는 바로크 음악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파격과 격정으로 가득하다.
일본 투어 도중인 27일 요코하마에서 수화기를 든 비온디는 이탈리아어 억양이 깃든 영어로 거침없이 이야기했다. “비발디의 ‘사계’가 300년 가까이 사랑받는 건 단지 자연 묘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슬픔, 두려움 같은 인간의 근원적 감정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물론 ‘사계’에는 새의 지저귐부터 시냇물의 흐름까지 다채로운 자연의 변화를 담은 대목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는 “18세기 바로크 음악의 유행에 따라서 자연을 묘사한 ‘표제 음악’의 성격은 상대적으로 덜 흥미로운 점”이라며 “인간의 온갖 희로애락이 녹아 있는 만화경 같은 작품이라는 점이야말로 현대적 면모이며 지금도 여전히 연주되는 이유”라고 말했다.
비온디는 스물여덟 살 때인 1989년 바로크 전문 악단인 ‘에우로파 갈란테(Europa Galante)’를 창단하고 30여 년간 리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당시 여러 악단에서 악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프랑스 클래식 음반사인 ‘오푸스 111′이 생기면서 이 음반사의 권유를 받고 직접 창단에 나섰다”고 말했다.
비온디는 이 음반사를 통해서 바흐·헨델·비발디 등의 작품들을 녹음하면서 이탈리아 바로크의 간판 연주자로 부상했다. 특히 ‘사계’는 지금까지 200여 차례 가까이 연주했다. 그는 이 작품을 “우리 팀의 ‘마스코트’이자 ‘깃발’”에 비유했다. 그는 “매일 저녁 같은 작품을 연주해도 지루하지 않은 건 시대 변화를 반영하는 올바른 해석과 연주법에 대해서 계속 탐구하기 때문”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바로크 음악의 ‘의사들(doctors)’과도 같다”고 말했다. 비온디와 에우로파 갈란테의 내한 공연은 11월 4일 대구콘서트하우스와 5일 아트센터인천으로 이어진다. 물론 이번에도 ‘사계’는 빠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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