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한·중 공동체’는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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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운명공동체론’을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다. 2017년 10월 당시 노영민 주중 대사는 “한중 양국은 운명 공동체이며 공동의 이익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해 12월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공산당 초청 행사에서 “연대와 협력을 통해 인류 운명 공동체의 미래와 행복을 만들어가자”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시진핑 국가주석 앞에서 “한중은 운명적 동반자 또는 운명 공동체 관계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국은 30년 전 대만으로부터 “옛 친구를 발로 차 버렸다”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중국과 수교했다. 떠오르던 대국(大國)이 경제뿐만 아니라 북한의 개혁·개방과 통일, 북핵 문제 해결에 건설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중국과의 외교를 말할 때면 우리가 잘하면 중국도 잘해줄 것이란 ‘희망적 사고’가 주를 이뤘다.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이 서방 지도자들이 보이콧한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해 시 주석과 나란히 천안문 망루에 섰던 것이 절정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수교 30년 동안 중국은 자기 이익 앞에서 한없이 차갑고 치밀했던 반면 우리 이익은 철저히 무시했다. ‘전략적 협력 동반자’라는 나라가 대북 제재의 뒷구멍이 돼 북한의 핵 폭주를 사실상 방조했다. 올해 들어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성명조차도 거부권을 행사하더니 급기야 침공자 러시아와 편먹고 유엔 안보리를 식물화시키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면서도 역사·경제 문제와 관련해 자국에 조금이라도 손해가 예상될 때는 완력을 과시하며 우리의 인내를 시험했다. 이달 초 우리 정부가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신장 위구르족 인권침해’ 특별 토론회 개최에 찬성하기 직전 대통령실과 외교부 전화에는 불이 났다고 한다.
미국·유럽(EU) 같은 자유·민주 진영 국가들은 최근 전략 개념을 정비해 ‘중국의 위협’을 명시했다. ‘대국 굴기’에 따른 위기감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늑대 전사 외교’를 표방하는 중국이 자국의 핵심 이익 수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인도, 미얀마,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필리핀 등 거의 모든 이웃 나라와 갈등을 빚고 있다. 하지만 우리 일각에서는 여전히 “언론이 언제나 진실은 아니다”(문재인 전 대통령) “등거리 외교가 우리의 운명”(이해찬 전 대표)이라는 낭만주의가 팽배하다.
시 주석이 바라는 ‘운명 공동체’는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이자 새로운 조공 질서의 구축이라는 것이 점차 선명해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대만 통일’에 대해 “무력 행사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미국과도 ‘끝까지 간다’고 시사해 미·중 경쟁이 한중 간 마찰로 전환될 개연성도 커졌다. 이래도 ‘운명 공동체’를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제는 그 진의(眞意)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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