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참사] 세월호 이후 인명피해 최대 규모…대부분 안전불감증이 부른 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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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서 발생한 참사는 단일 사고 인명피해로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이처럼 대규모 인명피해를 초래한 참사가 발생한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 재임 기간 몇 차례 있었다.
1993년 3월 28일 부산 북구 경부선 구포역 인근에서 서울발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가 탈선·전복하는 사고가 나 78명이 숨지는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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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서 발생한 참사는 단일 사고 인명피해로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망자가 153명에 달한다. 부상자 중 위독한 이들도 있어 사망자 수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이처럼 대규모 인명피해를 초래한 참사가 발생한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 재임 기간 몇 차례 있었다. 1994년 10월 성수대교 중간 부분이 무너져내리며 통행하던 시내버스와 차들이 그대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버스로 등교하던 무학여고 학생 등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다쳤다. 하루에도 수많은 차량이 오가는 한강 다리가 갑자기 붕괴했다는 데 당시 시민이 받은 충격은 컸다. 그로부터 8개월 뒤인 1995년 6월에는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502명이 숨지고 937명이 다쳤다. 당시 두 참사의 원인이 부실 공사 혹은 허술한 안전 관리 등에 따른 ‘인재’인 것으로 드러나 국민적 공분을 샀다.
1993년 3월 28일 부산 북구 경부선 구포역 인근에서 서울발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가 탈선·전복하는 사고가 나 78명이 숨지는 일이 있었다. 한국 철도 역사상 최악의 참사였다. 4개월 뒤엔 하늘에서 대형사고가 일어났다. 1993년 7월 26일 김포를 이륙해 목포로 가던 아시아나 여객기가 공항 접근 중 산에 충돌했다. 이 사고로 66명이 사망하고, 44명이 부상했다. 이어 10월에는 전북 부안 인근 해역에서 서해 훼리호 침몰 참사로 승객 292명이 목숨을 잃었다. 1995년은 대구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사고(101명 사망, 202명 부상)가 발생했다.
2003년 2월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으로 사망자 192명, 부상자 151명 등 343명의 사상자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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