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터치] 펼친 손가락으로 말할 수 있는 것
필자의 아이는 십이월 생으로, 나자마자 한 살이, 보름 만에 두 살이 되었다. 아이는 자기만의 속도로 자라지만, 부모는 그 친구의 의사와 별개로 부과된 초고속 승진을 떠올리며 무엇이든 늦될까 조바심을 떨치기 어려웠다. 막 다섯 살 문턱을 넘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씽씽카를 타던 아이가 넘어지고 말았다. 얼른 보아선 멀쩡해 보였지만, 빼 울음이 터졌다. 나는 아이 옷을 털면서 아내의 추궁을 덜컥 걱정했다.
집으로 가자는 아이를 슈퍼로 앞세워 영양가도 없는 뭣을 하나 쥐어주었다. “이제 안 아프지?” 단 걸 물렸으니 괜찮아졌어야 할 아이는 아비의 바람과 달리 다섯 손가락을 죄 펼치며 이만큼 아프다 했다. 아이가 셀 수 있는 가장 큰 수 앞에 마음이 내려앉았으나, 마지막 희망을 걸 듯 아이의 손가락을 하나씩 접기 시작했다. “하나, 두울… 이제 다섯 살이 되었으니…” 아이의 애먼 주먹만 한참 내려 볼 뿐, 할 말이 마땅치 않았다.
역시나 보라는 애는 안 보고 휴대폰에 시선을 뺏겼던 중죄에 관한 비난이 쏟아졌다. 나는 아내 뒤로 무한히 반복되는 벽지 격자무늬의 규칙성을 좇으며 그녀의 말을 흘리고 있었다. 아이에겐 자기 손가락 개수만큼의 세계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일 것이다. 싱거운 잡념이 꼬리를 물었다. 만약 아이 대신 내가 넘어졌어도 손가락을 들어 보였을까. 말로 설명했으면 했지, 유치하게 숫자로 말했으려고. 아이는 저의 통증이 5라는 숫자와 대응한다 믿겠지만, 어른은 그 같은 강한 연결 대신 말이라는 느슨하게 연결된 표현을 선호한다. 이는 우리의 앎이 어차피 대상이 지닌 속성의 근사치일 뿐이란 걸 세월 속에서 인정하게 된 까닭이다. 주지의 사실대로, 말이야 개별 존재로부터 솎아낸 보편의 개념이다. 우리가 ‘새’를 “새”라고 부르기까진 뭇 새들을 통해 귀납적 공통을 묶는 과정이 필요하다. “새”라고 불리기 전의 ‘저 대상’으로부터 날개, 부리 같은 보편적 속성을 상정해놓고, 이 조건을 충족시키는 대상에게 “새” 또는 “Bird”라 명명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귀납적 방법은 오류의 가능성을 품기에 언제까지나 참일 순 없다. 백 마리의 새에서 날개가 관찰되었으나, 백한 마리째 새에서 팔이 발견되었다면 새의 공통속성이라 믿었던 날개를 폐기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수와 달리 말은 불완전한 매질일 수밖에 없는 언어로, 설명될 수 없는 어떤 대상 a를 설명하려는 불가능한 행위의 반복 속에서 태어난다.
아내는 사람이 말하고 있는데, 어딜 보느냐며 을러댔다. 어른의 세계에선, 적어도 내게 수는 날짜나 돈을 셀 때나 동원될 뿐이다. 지금보다 어릴 적의 난 ‘다른 직업을 갖지 않고 글쓰기로만 삶을 꾸린다면?’ 같은 상상을 자주 했다. 어떤 날에는 ‘삼십만 원이면 한 달쯤 살겠지?’ 생각하다 또 어느 날엔 ‘그래도 백만 원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대중없이 널뛰곤 했다. 현실감의 결여에서 오는 그 같은 공상이 어디까지 뻗든 그쯤 내게 가장 큰 수가 백만(원)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만(萬)이 억 단위로 넘어오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출받아 얻은 아파트 값만 해도 ‘억’ 소리가 나오고, 백만이란 그 대출금을 매달 갚는 액수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우리의 일상을 헤는 수의 증가가 곧 사고의 깊이라 주장하려는 건 아니다. 수가 일정한 진실을 담아 현상을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매질임은 분명하지만, 때로 수는 무심한 낯으로 우리와 마주하기에 수로 변환된 실제를 단박에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코로나가 휩쓸었던 몇 해간, 지구촌은 연일 경신되는 확진자와 사망자 수를 목도해야 했다. 그 무덤덤한 숫자들을 보며 아파할 수 있는 역량이야말로 사고의 깊이, 사람의 깊이가 아닐까. 그러고 보면 아이에게 손가락 다섯 개는 숫자 ‘5’와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무한히 많음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을까 의심이 든다. 백 천 만 억…, 그 이상의 개념까지 사유할 수 있다는 것과 무한을 감각하는 것 사이에는 대양이 흐른다.
암만 높고 깊은 사고를 지닌 어른인들 그 또한 유한자일뿐. 나는 손바닥을 펼쳤다 쥐길 반복하며 잡념을 이어나갔다.
정재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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