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소리] 기성세대에게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
최근에 문해력이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서울에서 진행된 한 행사의 예약 오류에 관하여 주최 측에서 SNS를 통해 “심심한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한 것이 시발점이었다. ‘심심(甚深)한’이란 마음을 표현하는 정도가 매우 깊음을 뜻하는 관용적 표현이다. 그런데 일부 네티즌은 ‘나는 하나도 심심하지 않다’ ‘사과를 장난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라는 투의 글을 남기며 불씨를 키웠다. 이전에도 ‘사흘’ ‘금일’ ‘고지식’ 등을 통해 유사 논란이 있었으나, 당시 한글날이 가까웠기 때문에 이슈를 넘어 사회적 논란으로까지 이어졌다.
문해력(Literacy)은 사전적으로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라 정의되지만, 단순히 문자 해독에 머무르지 않는다. 다양한 텍스트의 의미를 분석해 그 의미를 비판적으로 읽어 낼 수 있어야 하며, 더 나아가 그러한 역량이 삶에 직접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리터러시가 학문의 영역에선 ‘문식성’으로 지칭되는 경우가 많지만, EBS의 영향력 때문인지 대중은 대부분 문해력으로 인식하고 있다.
세대·성별을 불문하고 문해력 저하가 실제 현실임을 부정하긴 어렵다. 긴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두 시간 분량의 영화 한 편을 온전히 보기도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스스로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우리는 ‘쇼츠의 시대’에 스며들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뒷받침하듯 최근에 발표된 다양한 연구·조사에서는 현대인의 문해력 저하를 문제 삼으며, 이에 대한 원인과 해결책을 제시하려 노력한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문해력 이슈를 10, 20대의 젊은 세대에 한정하려 한다. 심심한 사과 논란 때도 웹상에서는 ‘MZ세대 문해력, 이대로 괜찮은가?’와 같은 투의 기사와 칼럼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문해력 이슈를 1020세대에만 한정해선 안 된다는 글도 있었지만, 이는 일부에 불과했다.
현실은 과연 어떠할까? OECD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문해력은 273점으로 OECD 평균인 266점보다 높다. 하지만 세대별로 보면 25세를 기준으로 문해력 기준은 하강 곡선을 그린다. 45~54세 구간에서는 평균 이하가 되며, 55~64세 구간에서는 최하위권인 24위를 기록한다. 또한,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문해력 평가는 총 22개국 중 12위에 그쳤다. 즉 문해력 저하 문제는 1020세대가 아닌 기성세대에게 더욱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기성세대의 문해력 문제는 성인의 독서실태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본다. 성인의 연간 평균 독서량과 독서율은 매년 최저치를 보이고 있다. 두 달에 책 한 권을 완독하는 것조차 버거운 것이 성인 다수의 현실이다. 특히 문학은 기성세대와 점점 멀어지는 듯하다. 문해력 문제는 단순히 어휘의 영역에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 문해력의 기반에는 타인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능력, 즉 공감력에 있다. 문학은 공감력을 키우는 데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다.
정부는 문해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교육부는 사회·경제적 요인으로 교육의 기회를 갖지 못 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문해 교육을 확대할 방침이다. 지난 9월에는 ‘2022년 대한민국 문해의 달 선포식’을 개최하여 문해 교육의 필요성을 중요시하고 있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는 독서동아리 활성화를 비롯해 사회적 독서를 강화함으로써 독서문화를 증진시키려 노력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에 기반 되어야 할 한 가지는 기성세대가 문해를 대하는 태도다. 최근 세계 경제 위기가 본격화되면서 개인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밥벌이만으로도 쉽지 않은 현실에 문해력을 위해 별도의 시간을 내기란 어쩌면 사치에 가깝다고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문해력은 단순히 ‘읽고 쓰기’에 한정되지 않는다. 문해력은 타인과 소통한 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삶에서 중요한 부분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일수록 문해력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김성환 작가·김성환 독서교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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