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의 경제수다방]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치킨 500개를 까야 한다. 난 죽었다.” 이틀 후에 남자친구와 부산에 놀러가기로 되어 있던 어느 20대 여성이 너무 힘들다고 남긴 메시지를 읽고 나서 나는 가슴이 너무 아팠다. 올해 돌아가신 아버님에게는 죄송한 얘기지만, 아버님의 장례식장에서도 나는 이렇게 가슴이 아프지 않았다. 상주로서 행정적 일들을 처리하는 데 정신이 없어서, 감정이 생길 겨를이 없었다. 그렇지만 빵을 만들다가 사망한 어느 여성의 얘기는 경제학자로 살아온 나의 감정선에 ‘훅’ 들어왔다. 이게 뭐란 말인가? 그 사망 현장에서 다음날도 빵을 만들었다는 사실도 놀랐고, 빵 만들다가 죽은 노동자에게 빵을 가져다준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무신경함에도 놀랐다. ‘어이 상실’이 아니라 ‘예의 상실’이다.
나는 우리 집 초등학교 두 어린이에게 어떤 누나가 빵을 만들다가 반죽기에 끼여 죽었다는 설명을 했고, 문제가 풀리기 전까지 포켓몬빵을 사줄 수 없는 이유와 파리바게뜨에 못 가는 얘기를 해주었다. 어린이들도 쉽게 동의했다. 그들에게 특별한 사교육을 시키는 것도 아니고, 내가 엄청난 권력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들이 커서 어른이 되면 일터에서 꼬박 일해야 하는 노동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작업장 재해와 과로로부터 이 아이들을 내가 평생 지켜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죽음은 내 자녀의 미래 일이기도 하다.
그날 간만에 제빵기를 꺼내 식빵을 구웠다. 당분간 어린이들 간식으로 빵을 구울 생각이다. 그러면서 식빵 믹스를 보니까, 이건 또 CJ 제품이다. 여기도 독점, 저기도 독점, 대기업이 한국 경제를 가지고 논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자본주의가 원래 이런 것인가, 독점이라서 이런 것인가, 그 질문을 잠시 해봤다.
검사시대, 동반성장은 옛이야기
1914년 콜로라도 연료철강회사가 운영하는 광산에서 사택에서 쫓겨난 광산 노동자들이 가족과 함께 농성을 시작했다. 민병대와 주방위군이 이들에게 기관총 등 총기를 난사해 11명의 어린이가 죽었다. 사태가 격렬해지면서 결국 66명이 사망하게 되었고, 이것이 러들로 학살이다. 회사는 세계 최대의 석유 독점회사인 스탠더드 석유회사를 가지고 있던 록펠러 소유였다. 세계적으로 록펠러에게 맹비난이 쏟아졌다. 이 사건 이후 록펠러는 경영에서 손을 떼고, 록펠러 재단을 통한 공익 사업으로 전환한다. 자본주의가 야만스럽고도 잔인하던 시기였다. 스탠더드 석유회사를 비롯해 AT&T와 마이크로소프트 등 법원으로부터 독점 판결을 받고 회사를 분리한 사례가 이어진다.
‘SPC 사건’은 우리나라 경제계 전반에 걸친 안전의식 부재와 독점자본에 대한 제어 실패라는 두 가지가 동시에 작용하는 사건이다. 일하다 죽는 건 그만하자는 얘기가 지난 몇 년 동안 있었지만, 지하철과 석탄발전소 그리고 이제는 빵공장까지, 영역을 가리지 않고 계속해서 사망한다. 2019년 2020명, 2020년 2062명 그리고 2021년에는 2080명이다. 2018년에 2000명을 넘어선 이후로 계속 그 수준에 머물고 있다. 너무 많이 죽는다.
라면이나 우유를 비롯해 그간 비정규직 처우나 품질 문제 등으로 계속해서 소비자 운동이 있었고, 경쟁이 어느 정도 형성된 분야에서는 나름 효과가 있었다. 그렇지만 빵의 경우에는 워낙 독점이 심해서, 사실 별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2014년에 나온 와타나베 이타루의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를 재밌게 읽었다. 우리는 동네 빵집들이 너무 버티기가 힘들어서, 자본론 같은 것을 구울 시골 빵집 같은 것은 존재하기 어렵다. 아무리 호텔에서 날고 기던 제빵사라도 동네에서 대기업의 할인 포인트를 이겨내기가 어렵다고 한다. 도대체 SPC 빵이 얼마나 맛있길래 전국 대부분의 빵집이 초토화되었는가? 빵을 너무 많이 먹어 쌀 소비가 줄었다. 이젠 농업 안보의 근간을 법제화해야 할 정도로 우리는 밥 대신 빵을 먹었는데, 그 결과가 너무 참담하다. 정운찬 총리 시절에는 한국 보수들이 ‘동반성장’ 같은 얘기도 했는데, 검사들의 시대에는 그것도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얘기가 되었다.
한국 자본주의는 예의 못 갖춰
‘SPC 특별법’을 생각해보자. 빵 같은 소비재에서는 특정 업체가 예를 들면 3분의 1의 시장 점유율을 넘을 수 없도록 할 수는 없을까? 그 비율을 넘어서면 계열사나 회사의 일부를 미국 법원이 하는 것처럼 강제매각하도록 하면 된다. 지역별로도 특정 브랜드가 일정 비율을 넘어설 수 없게 정하면, 결국 동네 빵집과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균형을 찾을 수 있게 된다. 뒤늦은 일이지만, 겨우 빵 하나 먹으면서 사람이 죽어 나가고, 그걸 대통령이 “그 정도는 해줘야”, 이렇게 베푸는 시혜성 조치로 얘기하는 야만의 역사가 계속될 수는 없다. 한국 자본주의, 너무 급하게 달려오느라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를 못 갖추고 덜렁 21세기로 왔다. 지금의 불매운동이 빵 만들면서 목숨 걱정해야 하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극복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우석훈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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