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엽전 꾸러미’는 갖고 다니기 힘들다

엄민용 기자 2022. 10. 3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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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15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화폐는 대부분 ‘엽전’이었다. 그런 까닭에 사극에서 자주 엽전이 등장하고,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도 엽전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안다. 하지만 엽전의 의미를 아는 이들은 드물고, 엽전과 관련해 잘못 쓰는 말은 많다.

엽전은 ‘잎 엽(葉)’과 ‘돈 전(錢)’으로 이뤄진 말로, 한자의 의미만 놓고 보면 ‘잎사귀 돈’이다. 유용하게 쓰이는 잎사귀도 있지만, 대개의 잎사귀는 쓸모없이 버려진다는 점에서 ‘잎사귀 돈’은 좀 생뚱맞다. 그다지 가치가 있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엽전은 어떤 의미를 담은 말이 아니라 그것을 제작하는 과정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엽전은 금속활자를 만드는 방식과 마찬가지로 여러 개의 동전 모양이 있는 틀에 쇳물을 부은 후 이것이 식으면 하나씩 떼어내고 연마해서 완성했다. 이때의 모양이 마치 나뭇가지에 매달린 잎사귀처럼 보여 ‘엽전’이란 이름이 생겼다. 과거의 엽전이나 지금의 동전을 세는 단위가 ‘닙’이 아니라 ‘닢’인 것도 이 때문이다. ‘닢’은 ‘잎’의 옛 표기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닢사귀’가 ‘잎사귀’의 북한 지역 사투리로 올라 있기도 하다.

이런 엽전에는 중앙에 구멍이 있다. 끈 같은 것으로 이 구멍을 꿰어 ‘뭉칫돈’을 만들어 가지고 다녔는데, 이를 가리켜 흔히 ‘엽전 꾸러미’라고 부른다. 하지만 ‘꾸러미’는 “짐이나 물건 따위를 (보자기 같은 것에) 싸서 묶다”를 뜻하는 말로, ‘달걀 꾸러미’나 ‘이불 꾸러미’처럼 쓰인다. 이와 달리 “끈 따위로 꿰어서 다루는 물건을 세는 단위”를 일컫는 말은 ‘꿰미’다. 즉 엽전을 보자기로 잔뜩 싸 놓은 것은 ‘엽전 꾸러미’가 될 수 있지만, 사극에 등장하는 것처럼 끈 따위로 꿰어 놓은 것은 ‘엽전 꿰미’다.

열쇠도 마찬가지다. 보통 주머니에 열쇠 몇 개를 꿰어 가지고 다니는 것은 ‘열쇠 꿰미’다. 다만 열쇠들을 꿰지 않고 하나씩 매달기도 하고 ‘열쇠 꾸러미’가 널리 쓰이는 만큼 ‘열쇠 뭉치’나 ‘열쇠 꾸러미’를 쓸 수도 있다는 것이 국립국어원의 견해다.

엄민용 기자 margeu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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