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영국 금융시장 혼란의 교훈
재정 지속성 없는 '돈풀기' 위험
통화정책 기조 바꿔 신뢰 훼손돼
정부·중앙은행 정책 공조해야
효과적인 인플레이션 대응 가능
신관호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최근 영국 감세안에 의해 촉발된 금융시장의 혼란은 세계 경제가 얼마나 살얼음 위를 걷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이뿐만 아니라 중앙은행이 처한 어려움을 극명하게 나타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가.
첫째, 정부 재정의 중요성이다. 영국 감세안은 감세에만 초점을 맞췄을 뿐 늘어나는 재정적자를 감당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지 않음으로써 재정의 지속성에 타격을 가했다.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예민해진 금융시장은 이런 소식에 발작했다. 파운드 가치는 최저로 하락했고 국채 가격은 급락했다.
여기엔 LDI(부채연계투자)로 레버리지 투자를 늘렸던 연기금에 대한 마진콜이 가세해 이들이 영국 국채를 투매한 것도 한몫했다. 한동안 낮은 금리로 수익성이 저하된 이들은 부채를 담보로 레버리지를 늘려 추가적으로 위험자산에 투자하는 LDI를 광범위하게 활용하고 있었는데, 이는 평소 큰 수익을 올릴 기회를 제공하지만 지금과 같이 담보로 잡혀 있는 장기채권 가격이 하락하는 경우 문제를 악화시킨다.
결국 재정의 지속성을 고려하지 않는 무리한 재정 정책은 언제든지 금융시장의 반격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코로나 팬데믹으로 너나 할 것 없이 정부 재정 지출을 늘린 국가들은 더욱 조심하면서 중장기적으로 정부 재정 문제를 적절히 해소할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둘째, 금리 인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금융시장 안정에 유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 주요국들의 중앙은행이 취하고 있는 급격한 정책금리 인상은 물가 안정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중앙은행으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물가 안정은 장기적인 경제 발전에 필수적이므로 단기적인 경기 악화를 감수하더라도 인플레이션이 고질화되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다. 중앙은행은 충분히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이를 알려 일시적인 고통에 대한 이해를 구할 필요가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금융 안정이 저해될 가능성도 있음을 인식하고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을 금융감독당국과 긴밀히 협의해 마련해야 한다. 특히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해 자본 충당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금융회사에 적절한 조치를 미리 주문해야 한다. 유동성 부족이 생길 경우 대상 기관에 국한해 신속히 공급할 방안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경기 악화나 금융 불안정에 대응해 섣불리 통화정책 기조 자체를 바꾸는 것은 통화정책당국의 신뢰를 훼손해 오히려 물가 안정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다.
특히 한국은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고 있어 우려스럽다. 뒤늦게 부동산 매입에 나선 영끌족은 부동산 가격 하락뿐 아니라 늘어난 이자 부담 때문에 큰 고생을 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부동산 호황과 함께 급증했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도 이미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데, 광범위한 금융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상당수 가계의 고통과 저축은행을 중심으로 한 부분적인 금융 부실이 초래될 가능성이 많아 이에 대한 대처가 필요하다.
셋째, 이번 사건은 중앙은행의 스탠스에 큰 고민을 안겨줬다. 영국중앙은행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국채 매입에 나섰는데 이는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금리를 인상하고 있었던 기존의 정책 기조를 180도 바꾸는 것이었다. 만약 국채 매입을 지속해 유동성을 확대한다면 인플레이션은 걷잡을 수 없이 올라갈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앤드루 베일리 영국중앙은행 총재는 연기금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국채 매입을 종료함으로써 물가 안정과 배치되는 금융시장 개입은 일시적일 수밖에 없음을 확실히 했다. 이에 따라 진정되는 것 같아 보이던 금융시장은 다시 혼란에 빠졌으며 결국 리즈 트러스 총리가 쿼지 콰텡 재무장관을 사임시키고 기존의 감세기조를 철회한 뒤에야 진정됐다.
이런 과정은 정부 정책의 협조 없이 물가 안정이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또 경우에 따라 정부 재정 정책이 헛발을 내디뎠을 때 중앙은행이 과감하게 중심을 잡을 필요가 있다는 점도 보여줬다. 만약 베일리 총재가 당장의 금융시장 혼란에 굴복해 지속적인 국채 매입에 나섰다면 잘못된 정부 재정 정책을 되돌리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인플레이션도 영영 잡기 어려웠을 것이다. 혼란의 시대에 정책의 오류를 줄이기 위해 정책당국자들의 현명한 판단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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