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청색의 권리

2022. 10. 3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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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크롬 회화의 창시자인 프랑스 예술가 이브 클랭은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중 올려다본 아시시의 하늘에 풍덩 빠졌다. 울트라마린(ultramarine)이라 불리는 바로 그 청색 하늘에. '바다 너머' 먼 곳에서 왔다 해서 붙여진 그 청색에.

울트라마린의 원료는 청금석 덩어리다. 그 옛날 아프가니스탄에서 채굴되어 실크로드를 따라 유럽으로 전해졌다

.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화가 첸니노 첸니니는 "걸출하고 아름다우며 가장 완벽한, 모든 색을 능가하는 가장 신비한 색"이라고 표현했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너무 귀한 나머지 마음껏 사용할 수 없었다. 황금보다 비싼 이 천연 안료는 주로 성모 마리아 의상에 칠해졌다. 혹여 예술가들이 안료를 많이 쓸까 봐 작품 의뢰인은 계약서를 작성할 때 울트라마린을 칠할 부분, 정확한 양, 금액까지 명시할 정도였다. 1482년 밀라노의 '원죄 없는 잉태 신심회'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암굴의 성모'를 의뢰할 때에도 계약서에 울트라마린을 사용해야 할 부분을 세세하게 명시했다.

가장 순수하고 무한하며 '사물의 무'에 근접한 색. 클랭은 이탈리아 아시시의 하늘에서 찾아낸, 바로 그 청색을 구현하고 싶은 열망에 휩싸였다. 합성 울트라마린(프렌치 울트라마린)도 있었지만 천연 안료와 같은 깊이가 없었다. 그는 화학자이자 미술재료상인 에두아르 아당의 도움을 받아 천연에 가까운 안료 개발에 착수했다. 가루일때는 그럴 듯했다. 하지만 물감으로 만들면 칙칙해지곤 했다. 젖은 상태든 마른 상태든 동일한 명도와 채도를 지닌 청색을 만들고 싶었다. 수많은 실패 끝에 푸른색 안료 로도파엠에이(RhodopasMA)에 고착액인 에틸알코올과 에틸아세테이트를 합성 울트라마린에 섞어 보았다. 비로소 천연 안료와 같은 명료함과 광채가 드러났다. 1957년, 마침내 클랭은 아시시 하늘 재현에 성공했다.

그는 "모든 기능적 정당화로부터 해방된, 청색 그 자체"라며 안료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 IKB(International Klein Blue)를 프랑스 특허청에 등록했다. 1960년 5월 19일 역사상 처음으로 색채(사실은 안료, 더 정밀히 표현하자면 색깔을 만들기 위한 화학물질의 조합)에 법적 권리가 부여됐다. 서른넷의 짧은 인생 동안 그는 200여 점에 달하는 IKB 회화를 완성했다. 오로지 단 하나의 색, 청색만을 이용하며 현대추상예술의 새 장을 열어젖혔다.

클랭은 "파랑은 볼 수 없는 것을 보이게 하는 색"이라고 했다. 물은 투명하지만 바다에 모이면 파랑이 된다. 우주에서 본 지구 바깥은 암흑이지만 올려다보는 하늘은 파랑이다. 과학적으로야 빛의 산란 현상일 뿐이지만 예술가들은 이토록 그 하늘빛을 재현하고 싶어 했고 독점하고 싶어 했다. 그 하늘 빛깔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건만 오늘은 깊은 슬픔으로 가득하다.

[캐슬린 김 변호사·홍익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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