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석] 국회 윤리위 제소, 어쩌다 '정쟁도구'로 전락했나
국감 기간 윤리특위 제소 8건, 특위 구성은 미룬 여야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는 비디오 판독 시스템이 있다. 심판 판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팀의 감독은 경기 중 최대 2회 판독을 요청할 수 있다. 판독 결과 판정이 뒤집어지지 않으면 이후 판독을 신청할 수 없고, 오심으로 드러나면 한 번 더 판독 기회를 갖게 된다. 그러다 보니 구단에서 자체적으로 리플레이를 보고 확신이 설 때만 비디오 판정을 요청한다.
서로의 생각이 다를 경우 비디오 판독을 통해 정확한 사실을 가리고,, 또 그 기회를 신중히 사용하는 것인데 논란이 발생할 경우 어떻게 처리되는지 대한민국 국회로 한번 시선을 돌려보자. 낯 뜨거운 윤리위 제소전이 한창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28일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법에서 명시한 품위 유지 의무, 모욕 발언 금지 규정을 위반했다며 국회 윤리특위에 제소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종합국감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뚜렷한 근거 없이 제기했다는 점이 사유다. 이에 따라 올해 국정감사 기간 윤리특위에 징계안이 제출된 의원은 거대 양당 지도부를 포함해 총 8명이 됐다. 올해로 기간을 넓히면 총 13명이다.
그러나 정작 징계를 심사할 윤리특위는 아직 구성조차 되지 않았다. 지난 6월 30일로 활동 기간이 만료되면서 4개월째 공백 상태다. 프로스포츠에서 바로바로 결과를 알려주는 것과는 반대로 윤리특위가 없다 보니 논란만 증폭되고 있다. 제출된 징계안은 윤리특위에서 징계 여부와 징계 수위를 심사한 후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해야 하지만, 윤리특위가 구성되지 않아 징계 처리 절차를 개시할 수 없다. 여야는 이를 알면서도 경쟁적으로 의안과로 달려가 징계안을 들고 카메라 앞에서 제법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21대 국회 전반기 윤리특위 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김진표 국회의장은 조만간 윤리특위 제도 개선 방안을 여야 원내대표에게 제안할 예정이라고 한다. 20대 국회에서 교육문화체육관광위가 교육위와 문화체육관광위로 분리돼 상설위가 늘어나면서 밀려났던 윤리특위를 다시 상설화하고, 특위 내 외부위원이 참여하는 자문단을 설치해 독립성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특위 구성이 우선이겠지만, '제 식구 감싸기' 오명을 벗기 위한 바람직한 방향으로 보인다. 실제 1991년 국회의원 윤리강령에 따라 윤리특위가 설치된 후 현재까지 특위에서 가결된 징계안은 단 2건이다. 본회의에서 표결된 징계안은 2건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1건은 상임위 위원장석을 점거한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에게 내린 '30일 출석정지'로, 윤리특위를 거치지 않고 바로 본회의에서 의결한 것이다.
징계 심사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기준과 기한을 명시하는 것도 방법이다. 윤리특위에 의원 징계안이 접수되면 한 달 이내 처리하도록 강제하거나, 의원의 '갑질'이나 '막말'이 분명한 징계 사유라는 점을 정해주는 것이다. 또 현재 징계 종류가 경고, 사과, 출석 정지, 제명 등 네 가지만 있는데 의원들의 최대 관심사인 '공천 심사'에 반영하는 것도 실질적인 조치가 될 수 있다. '셀프 심사'로 인해 징계 수위가 솜방망이라는 지적이 있는 만큼 윤리특위에 국민 의견을 청취할 수 있도록 하는 국민배심원단 설치도 고려해볼 만하다.
어느 순간부터 정치권은 윤리특위 제소를 정치공세 수단으로 삼고 있다. 말 한마디로 꼬투리를 잡고, 카메라 앞에서 징계안을 제출해 망신 주기를 한다. 의안과에 징계안을 제출하고 언론에 보이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됐다. 징계가 어떻게 처리될지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야말로 '징계 남발'이다. 서로를 할퀴는 '마이너스 정치'가 만연하다. 야구에서 비디오 판독 요청에 제한을 두고, 판정이 바뀌지 않으면 페널티를 주는 이유는 그만큼 신중하라는 취지다. 경기 도중 판독 요청 남발로 흐름이 끊기고, 경기 시간이 길어지는 점을 막기 위해서다. 걸핏하면 윤리위에 제소하느라 당력과 시간을 허비하는 정치권이 새겨들을 부분이다.
본래 윤리특위는 국회 차원에서 국회의원의 의무와 윤리의식을 감시하고 어길 경우 벌하는 엄중한 곳이다. 당에서 제명돼 당 차원의 조사와 징계를 편법으로 피하더라도 윤리특위가 국회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킨다. 지금처럼 특위 구성도 미루고 정쟁 도구로만 활용하려 한다면 차라리 없애는 게 낫겠다.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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