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식의 온차이나] 날개 없이 추락하는 화웨이

최유식 동북아연구소장 2022. 10. 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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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매출액 급감에 이어 올해는 순이익 40%나 폭락
런정페이 창업주 “지금부터 3년이 생존 고비,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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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잠잠했던 중국 기술기업 화웨이가 다시 뉴스 무대에 등장했습니다.

미국 하드디스크 업체 시게이트(Seagate)가 10월26일 제재 규정을 어기고 화웨이에 제품을 공급한 혐의로 미국 상무부의 조사를 받고 있다고 공시했죠.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2020년8월부터 2021년9월까지 중국과 태국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을 화웨이에 판매했다고 합니다. 미국은 2020년5월 외국기업들이 생산한 제품도 미국 장비와 소프트웨어 등을 사용했으면 화웨이에 제품을 팔 때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제재 범위를 확대했죠. 시게이트는 이번 조사로 경영에 적잖은 타격을 입을 전망입니다.

사흘 전인 23일에는 미국 법무부가 화웨이에 관한 검찰 수사 정보를 빼내려 한 혐의로 중국 스파이 2명을 기소했다고 발표했죠. 시진핑 주석 집권 3기 최고지도부가 확정된 바로 그 날 이런 발표를 한 걸 보면, 앞으로 5년간 미중관계의 험난한 앞날을 예고하는 듯합니다.

메릭 갈랜드 미 법무부 장관(가운데)이 10월23일 워싱턴 법무부 청사에서 화웨이 수사 기밀을 캐내려한 혐의로 중국인 스파이 2명을 기소한 사건을 발표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은 크리스토퍼 레이 연방수사국(FBI) 국장, 왼쪽은 리사 모나코 법무부 부장관. /AP 연합뉴스

◇올해 3분기까지 순이익 40% 폭락

지난 2년여 동안 진행된 미국의 제재로 화웨이는 생존 위기에 몰려 있어요. 화웨이는 10월27일 올해 3분기까지 9개월간의 경영 실적을 발표했는데, 매출은 작년보다 2.2% 떨어진 4458억 위안(약 87조원)으로 그나마 선방을 했습니다.

하지만 순이익은 272억 위안(5조3300억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40%나 폭락했어요. 순이익률이 6.1%에 불과합니다.

자료=화웨이

미국 제재가 본격화된 2020년만 해도 화웨이의 매출액은 전년 대비 3.8% 성장한 8914억 위안을 기록했죠. 미리 확보해둔 반도체 물량으로 스마트폰 생산과 판매를 계속할 수 있었던 덕분입니다.

그러나 작년에는 매출액이 6368억 위안으로 전년보다 28.6%나 급감했어요. 사상 처음으로 매출액이 줄어든 겁니다. 그래도 순이익은 1137억원으로 순이익률이 17.9%나 됐죠. 그런데 이 순이익률마저 올해는 큰 폭으로 하락한 겁니다.

순이익은 기업 연구개발비 투자 재원으로, 기업의 활력과 잠재력을 유지하는 원천이에요. 순이익이 감소했다는 건 더 큰 위기의 징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 내 경쟁에서도 밀려

화웨이 실적 하락의 주요인은 역시 스마트폰을 비롯한 소비자 제품 판매 부진이에요. 한때 스마트폰은 화웨이 전체 매출의 54%를 차지했는데 올해는 전체 매출액의 23%에 그쳤습니다. 독자적인 스마트폰 운영시스템을 개발하는 등 안간힘을 썼지만, 미국 제재의 벽을 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죠.

10월 중순엔 화웨이가 2020년 중반 시작한 화상회의 시스템 ‘링크 나우(Link Now)’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링크 나우’는 줌, 구글 미트 같은 온라인 화상회의 프로그램이죠. 미국의 제재로 스마트폰 사업 부문이 큰 타격을 입자 신규 사업 개발 차원에서 이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알리바바의 딩톡과 텐센트의 위컴 같은 국내 다른 경쟁 업체에 밀려 적자가 누적되자 결국 2년 만에 사업을 접은 겁니다.

화웨이가 2년 만에 사업 포기를 발표한 온라인 화상회의 시스템 '링크 나우' /화웨이

화웨이는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세계 통신장비시장을 석권했고, 2020년 한때 삼성전자를 넘어 세계 1위 스마트폰 제조업체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죠. 중국 내에서는 화웨이를 상대할 업체는 없었습니다. 이런 회사가 그에 비해 규모를 비교할 수조차 없는 온라인 화상회의 시장에서 중국 업체에 밀려 사업을 접는 굴욕을 당한 거예요.

그나마 통신장비 시장에서는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기업을 상대로 한 클라우드 서비스 등은 호조를 보여 지금 정도의 실적을 내고 있습니다. 화웨이는 5.5G(세대) 통신망 개발 등을 미래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미국의 제재로 첨단 통신 반도체 공급이 막혀 있는 상황에서 제대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에요.

◇“살아남자, 품위있게 살아남자”

화웨이 창업자인 런정페이(78) 회장은 지난 8월말 사내 논단에 올린 글에서 “생존을 가장 주요한 강령으로 삼아라”고 주문했습니다. 그러면서 “살아남자, 품위있게 살아남자”는 구호도 제시했더군요.

그는 2025년까지 3년간이 화웨이에 가장 어려운 시기가 될 것으로 봤습니다. 가뜩이나 미국의 제재로 큰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 세계 경제와 중국 경제가 침체의 늪에 빠져드는 등 시장 상황도 좋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에요. 따라서 현금 흐름과 제대로 된 이윤을 경영의 중심으로 삼고, 더는 매출액 늘리기에 매달리지 말라고 했어요. 2023년 예산 절감, 맹목적인 확장과 투자를 요하는 부문 축소, 현금 유동성 확보, 실적에 기반한 승진과 상여금 책정, 비핵심 분야 연구개발 자제 등 구체적인 지시사항도 내놨습니다. 내부 강연에서는 “매출액 숫자에 매달리지 말고 이윤을 좇고 피를 만들라”는 얘기도 했다고 해요.

2020년1월 다보스포럼에 참가한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 /화웨이센트럴

가장 섬뜩한 대목은 “한기가 모든 직원에게 전달되도록 하라”는 말이었습니다. 상황이 호전될 때까지 어떻게든 화웨이의 생존을 지켜내겠다는 절박한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보이지만 갈수록 격화되는 미중 경쟁 속에 화웨이가 지금 정도의 연구개발 수준과 수익 창출 능력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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