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 많은 대통령실 앞 시민들…갖가지 사연 들어보니
"홍천군 철도설치",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 전환" 등
[더팩트ㅣ주현웅 기자·조소현 인턴기자] 대통령 집무실 앞은 전국의 민원이 모여드는 곳이다. 시민단체나 노조 등의 집회 및 기자회견이 많지만, 먼 데서 버스나 기차를 타고 온 평범한 시민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들은 대통령에 무엇을 기대할까.
<더팩트>는 지난 27일 직접 이야기를 들어봤다.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요구도 일부 있었으나 그들은 대통령은 물론 우리 사회가 자신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길 바랐다.
오전 9시에는 수도권 모 지역에서 혼자 왔다는 강모 씨를 만났다. 벌써 나흘째 대통령실 앞으로 출근 중이라고 한다.
그는 자신의 집을 강제로 헐값에 수용당했다고 주장했다. 동네에서 추진 중인 재개발 구역에 본인 집은 포함되지 않는데도 기부채납할 땅이란 명목으로 빼앗겼단다. 강 씨는 "재개발조합과 지자체가 전부 짜고 내 집을 빼앗으려 한다"며 "강제 수용으로 국민을 거리로 내모는 곳을 법치국가라고 할 수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1시간쯤 지나 대통령실 맞은편 전쟁기념관 앞을 보니 강원 홍천군에서 온 시민 약 500명이 모여 있었다. '홍천철도 범군민추진위원회'라는 곳인데 이른 아침 대절버스 13대에 올라 서울까지 왔다고 했다.
이들은 "윤석열 대통령은 공약을 이행하라"며 지역에 철도를 놔달라고 요구했다.
유한성 홍천군문화원 이사는 "아침 6시에 일어났지만 하나도 안 힘들다"며 "홍천 군민이 서울까지 와서 대규모 집회를 하는 건 역사상 처음"이라고 비장함을 드러냈다. 군민 박제근 씨도 "홍천이 대단히 넓은 곳인데 열차가 없는 게 말이 되냐"며 "열차가 없으니 물류 유통에도 제약이 있고, 아름다운 동네인데 젊은이들이 빠져 나간다"고 항의했다.
참가자들은 '이번 역은 홍천역입니다'가 적힌 기차 모양 입간판을 통과하며 가수 남진의 둥지 등 노래를 불렀다. 표정도 어둡진 않아 보였다. 오히려 가을 소풍을 온 듯 셀카를 찍기도 했다. 유 이사는 "다들 억지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왔다"며 "화창한 오늘 날씨처럼 우리도 희망을 품고 있다"고 강조했다.
비슷한 시각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12번 출구 앞. 대통령 집무실로부터 약 200m 떨어진 곳에선 1인 시위를 하러 나온 시민 2명이 각자 구호를 외쳤다. "검언유착 비리 고발한다", "낙태죄 위헌 반대" 등이었다.
다만 이들은 시위 이유 등을 묻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오후 2시에는 자신을 '도공스님'으로 소개한 남성과 마주했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나무에 내건 현수막에는 '부패공무원을 보호하고 국민의 주권을 짓밟는 국민신문고를 개혁하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지자체나 경찰에게 부당한 일을 당해 법무부에 진정서를 넣으면 국민신문고로 사건을 이첩하는데, 국민신문고에선 다시 지자체나 경찰에 보낸다"며 "이런 탓에 억울한 국민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인근의 이태화 공공운수노조 발전HPS 지회장은 1인 시위를 접고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이 지회장은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채용 등을 요구하며 오랜 기간 자리를 지켜 왔다고 한다. 그는 "오랫동안 시위를 하며 낙담하는 경우가 많다"면서도 "그래도 꾸준히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30분쯤 지나 전쟁기념관 앞에선 국가바로세우기연합이 '4.15 부정선거 특검하라'고 소리쳤다. 이들은 "선관위가 202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59명의 의원을 더 당선시켰다"고 했다.
오후 3시 지하철 삼각지역 11번 출구는 시끄러웠다. 인근 도로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들이 "밥 한 공기 300원 쌀값 보장하라"며 "농민생존권을 보장을 위해 양곡관리법을 전면개정해야 한다"고 외쳤다.
이들이 요구하는 개정안의 핵심은 쌀값 폭락 방지 차원에서 정부가 남은 쌀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라는 것이다. 지난 19일 더불어민주당 단독 처리로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통과했으나, 윤 대통령이 농업재정 낭비 등을 이유로 반대 의사를 밝힌 바 있어 갈등이 예상된다.
격앙된 농민들은 화물 차량에서 꺼낸 톤백 등을 경찰에 던지며 "정당한 집회를 왜 막냐"고 거세게 항의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작은 충돌이 빚어졌다.
오후 6시, 해가 뉘엿뉘엿 저물 때쯤 다시 전쟁기념관 앞으로 향했다. 1인 시위를 하는 김모 씨가 홀로 서 있었다. 그는 "국가기관이 나를 감시하고, 방안에 가스를 살포하고 있다"며 "저의 통신과 행동을 통제하지 말라"고 했다.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그는 모처럼 기분이 나아졌다고 했다. 자신의 얘기를 누군가 들어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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