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스러운' 교육이 필요한 시대 [아침을 열며]

2022. 10. 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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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혹은 자녀들의 유치원 시절을 생각해 보자.

그런 의미에서 학교와 대학도 상상력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더욱 유치원스러운 교육으로의 변화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 문제에 공감한 교육학, 인지심리학, 미디어학 교수와 연구자들이 함께 모여 MIT 미디어랩에 '평생 유치원(Lifelong Kindergarten)' 연구그룹을 만들어 15년째 이끌어 오고 있다.

유치원이 다시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 학교와 대학이 유치원스러운 교육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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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여러분의, 혹은 자녀들의 유치원 시절을 생각해 보자. 유치원은 크레용과 물감, 색종이와 도화지, 블록과 장난감으로 꽉 찬 공간이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며 자유롭게 생각하고 상상력을 펼치는 재미의 공간, 여백의 공간이어야 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유치원 가는 것이 더없이 즐거운 일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의 유치원은 점점 더 학교를 닮아 간다고 한다. 많은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수학문제집 풀이, 단어카드 영어공부, 초등학교 선행 학습에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학부모들도 선행 학습에 비중을 많이 두는 '학교스러운' 유치원을 더 선호한다고 한다. 아이들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의성의 잠재력을 희생하면서라도, 학교에서 성적이 좋은 아이를 만드는 교육이 현실적으로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20세기 산업사회는 학교 교과과정을 충실히 공부하고 대학에서 하나의 전공을 깊이 공부해 국가 혹은 산업이 요구하는 특수한 과업을 실수 없이 수행하는 숙련된 인력이 필요한 시대였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배운 지식이 내일 바로 새로운 지식에 밀려 사라지는 '지식 파도(knowledge wave)' 시대에 살고 있다. 다음 세대에게 요구되는 실력은 교과서를 잘 외우고, 하나뿐인 정답을 잘 찾아내는 실력이 더 이상 아니다. 새로운 문제에 새로운 접근으로 도전하는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학교와 대학도 상상력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더욱 유치원스러운 교육으로의 변화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미국 MIT의 컴퓨터공학 교수 미첼 레스닉(Mitchel Resnick)은 초·중·고등학생뿐 아니라 모든 연령층과 계층이 평생 가장 '유치원스러운' 학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이 문제에 공감한 교육학, 인지심리학, 미디어학 교수와 연구자들이 함께 모여 MIT 미디어랩에 '평생 유치원(Lifelong Kindergarten)' 연구그룹을 만들어 15년째 이끌어 오고 있다. 2020년부터는 '스크래치(Scratch)'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온라인 무료 코딩학습 커뮤니티를 만들어 운영 중인데, 현재 국내에서도 이용이 가능하다.

스크래치는 프로젝트 중심, 몰입과 협업 중심, 놀이 중심의, 가장 유치원스러운 방법으로 쉽게 코딩을 배울 수 있도록 설계된 프로그램이다. 스크래치가 전 세계 무료 보급을 통해 기술의 차이에 의한 경제, 교육 기회 격차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원대한 비전을 펼치는 것은 또 다른 귀감이다. 이 연구그룹은 미래 교육의 비전에 동감하는 LEGO 등 글로벌 기업의 적극적 후원으로 연구와 후속 연구자 양성에 집중하고 있다.

또 한 번의 대학입학 수능시험과 대학입학 시즌이 눈앞이다. 공부는 원래 이렇게 힘든 것인가. 무한경쟁 시대의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것인가. 대학에서의 공부는 좀 달라질까. 새로운 시대의 하이테크, 하이터치 교육으로의 전환을 강조해 온 이주호 교육부 장관 후보자에게 거는 기대가 매우 크다. 학교와 대학을 '유치원스러운' 학습 공간으로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그 공간에서 다음 세대가 호기심과 상상력의 눈빛을 되찾게 해 주기를 부탁한다. 그 공간에서 미래사회의 산적한 문제를 해결해 낼 인재들이 양산되기를 기대한다.

유치원이 다시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 학교와 대학이 유치원스러운 교육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교육부와 학교, 대학에는 규제의 산을 넘고 관행의 강을 건너는 결기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국민적 합의를 만들어 내는 정치력이 필요하고, 차분하고 치밀한 기획력과 추진력이 또한 반드시 요구된다.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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