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운신의 폭 넓혀야 하는 한국 외교

이귀전 2022. 10. 30.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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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새 지도부 시진핑 측근 배치
자국 우선 미·중 갈등 격화 예고
최악 상황 북·중·러도 한국 겨냥
관계 기준 정립… ‘묘안’ 잘 짜야

중국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의 하이라이트는 폐막식에서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의 퇴장이다.

후 전 주석이 책상에 놓인 붉은 표지의 서류에 손을 대자 오른편에 앉아 있던 리잔수(栗戰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이 제지하며 서류를 가져갔다. 후 전 주석 왼쪽에 앉아 있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이 상황을 물끄러미 지켜보다 보좌관을 불러 어떤 지시를 내렸다. 후 전 주석 뒤로 이동한 보좌관은 그에게 나갈 것을 권유했다. 후 전 주석이 나가려 하지 않자 보좌관은 강제로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나가길 거부하던 후 전 주석은 보좌관들의 반복적인 권유에 결국 폐막식장에서 퇴장했다.
이귀전 베이징 특파원
관영 신화통신은 “건강이 좋지 않아 쉬게 했다”고 설명했지만 영상에서 그가 몸이 불편한 듯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단순 해프닝으로 보기엔 시 주석 측근으로만 새 지도부가 구성된 상황과 오버랩될 수밖에 없다.

리창(李强), 자오러지(趙樂際), 왕후닝(王滬寧), 차이치(蔡奇), 딩쉐샹(丁薛祥), 리시(李希). 20기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들은 모두 시진핑 계파로 채워졌다.

리커창(李克强) 총리, 왕양(汪洋)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후춘화(胡春華) 부총리 등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이나 다른 계파는 권좌에서 물러났다.

3연임을 확정한 시 주석이 권력을 독점했다는 것을 ‘후진타오의 퇴장’ 한 장면으로 국제사회에 보여준 것이다.

폐막식 시작 후 한 시간 넘게 대기를 하던 기자들이 입장할 때 이 상황이 벌어진 것도 의뭉스럽다. 권력 내부의 일을 철저히 숨기는 중국공산당의 생리와 맞지 않다.

공청단을 대표하는 후 전 주석이 시진핑 계파 일색인 권력 구도가 적힌 서류를 보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로도 보인다.

반면 중국 내에선 이 장면을 철저히 숨기고 있다. 당 대회 개막식은 중국 내 생중계됐지만, 폐막식은 생중계되지 않았다.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등에는 개막식에서 시 주석이 자리에 앉은 후 전 주석을 부축하는 모습만 올라와 있다.

시 주석은 지도부 구성에 있어 계파 안배, ‘칠상팔하(七上八下·67세 이하 승진, 68세부터 퇴진)’, ‘격대지정(隔代指定·차차기 최고지도자 미리 지명)’ 등의 관례를 깡그리 무시했다. 자신을 따르는 측근만 승진시켜 권력을 독점했다.

이 모습을 ‘중국이니 그렇지’라며 치부해선 안 된다.

국제사회에서도 중국은 같은 행보를 보일 것이다. 당 대회를 통해 장기집권의 발판을 닦은 시 주석은 서구식 발전 경로와 다른 ‘중국식 현대화’를 내세웠다. 권위주의 정부가 들어선 개발도상국 등에 민주주의 체제가 아니어도 경제 발전이 가능하다는 길을 던져줬다. 그들의 우두머리가 돼 중국 압박에 나선 미국 등 서방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유지돼온 암묵적인 외교적 관례와 원칙 대신 공격적인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와 중국 중심적 세계관인 ‘중화주의’를 바탕으로 자국의 이익을 우선으로 챙겨오고 있다.

문제는 갈등의 중심에 한국이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탄도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가능성 등으로 한반도 긴장을 높이고 있다. 러시아는 갑자기 한국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경고했다. 중국과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부터 미국의 반도체 등 첨단기술 규제에 따른 무역 갈등 등 복합적이다.

미국 등 서방과 대립하고 있는 북·중·러가 한국을 겨냥하는 모양새다. 한국이 ‘약한 고리’라는 모종의 합의가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결코 물러서지 않을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한국의 외교·안보 상황이 6·25전쟁 이후 제일 어렵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윤석열정부는 미국과 동맹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이와 맞물려 최악의 상황으로 흐르고 있는 북·중·러와 관계 정립을 위한 기준도 정해야만 한다. 박근혜정부를 보면 보수정권 때 외교적 ‘운신의 폭’이 진보정권보다 더 넓었다. 기준 없이 오락가락하는 모습은 그 폭을 좁힐 뿐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가진 한국이 ‘모 아니면 도’로 가기엔 70년 전과 비교해 잃을 게 너무 많아졌다.

이귀전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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