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송희일의 견문발검] 평등의 빵과 '파리의 바게뜨'

이송희일 영화감독 2022. 10. 3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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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게 빵 공장인가, 노동자들의 무덤인가. 평등의 빵 바게뜨는 어쩌다 고통과 죽음의 빵, 지독한 불평등의 빵이 된 걸까.

[미디어오늘 이송희일 영화감독]

레스토랑의 시작은 1789년 프랑스 혁명이었다, 이런 가설로 제작된 최근의 영화 한 편이 있다, '딜리셔스'(2022). 부유한 귀족의 요리사가 부당하게 쫓겨난 후 지역 역참에 행인과 마을 사람들을 위해 개설한 음식점이 최초의 레스토랑이라는 것이다. 앙시앵 레짐으로부터 신분의 자유뿐 아니라 왕과 귀족의 소유물이었던 맛있는 요리도 해방됐다는 전제가 영화의 배경이다.

프렌치 레스토랑이 대체적으로 18세기 중후반에 생겼다는 사료들에 견줘 봤을 때 딱히 섣부른 가정은 아닐 것이다.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등장한 '평등의 빵'을 봐도 그렇다. 당시 혁명을 추동한 원인 중 하나가 빵 부족이었다. 극심한 가뭄과 흉작으로 가격이 폭등했고 시민들은 배를 주렸다. 그 와중에 귀족들은 새하얀 밀 빵을, 가난한 시민은 밀기울과 호밀 따위를 섞어 만든 갈색 빵을 먹었다. 분노한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점거했을 때 가장 많이 외친 구호가 '빵을 달라'였다. 이에 1793년 혁명정부는 '평등의 빵'을 법으로 규정한다.

▲영화 '딜리셔스: 프렌치 레스토랑의 시작'(2022).

“더 이상 부자를 위한 밀 빵과 가난한 자를 위한 밀기울 빵을 만들지 않게 될 것입니다. 모든 제빵사들은 단 하나의 빵만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밀과 호밀의 비율이 정확히 동일해야 했고, 가격도 정부에 의해 통제됐다. 법을 어긴 제빵사는 처벌 받았다. 1794년에는 밀과 보리 3:1 비율로 규칙이 변경됐다. 이게 바로 우리가 '바게뜨'라 부르는 빵의 시초적 기원이다. 물론 바게뜨라는 명칭이 상용화된 건1920년대다. 이후에는 다시 흰 빵이 제조되고 혼합 비율이 다양해졌지만, 평등의 빵이 바게뜨의 전신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또 80cm의 길이와 250g의 무게로 바게뜨가 규격화된 데에도 군인들이 휴대에 용이하도록 길게 만들었다는 등 여러 기원이 존재하는데, 지하철 신축 현장을 비롯한 다양한 공사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빵을 썰 칼을 지참하기 어렵고 또 칼을 구하는 불편을 줄이기 위해 손으로 찢어 먹기 쉽게끔 고안됐다는 주장이 꽤 유력해 보인다.

▲바게뜨. 사진=Unsplash

오늘날 우리가 먹는 바게뜨는 그렇게 평등의 이념을 원료 삼아 구워진 것이다. 빵에 진심인 나라인지라 친구와 동지를 의미하는 Conpagnon이라는 단어의 어원도 '빵을 나눠먹는 사람'이다. 심지어 회사Company의 어원은 '빵을 함께 먹는 식탁'이다. 비유하자면, 바게뜨 광주리에는 빵과 함께 나눔과 평등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랬던 바게뜨가 한국에 들어와 '파리바게뜨'라는 상호로 전유되며 노동자의 피 묻은 빵으로 둔갑되고 있다. 황당한 일이다. 지난 며칠 동안 수많은 시민들이 피 묻은 빵을 먹지 않겠다며 파리바게뜨와 SPC 불매에 나선 형국이다.

▲서울시내 한 파리바게뜨 매장 앞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사실 전국 어디를 둘러봐도 온통 파리바게뜨다. 1988년 1호점을 시작으로 현재 전국에 3366개의 파리바게뜨 점포가 깔려 있다. 가맹점 3000 개를 넘긴 시점이 2011년, 대략 20년 만에 전국 빵집 상권을 장악했다. 공격적인 대기업 프랜차이즈 사업을 벌였고, 수많은 동네 빵집이 곡소리를 내며 문을 닫아야 했다. 그 사이 SPC 그룹은 5개의 계열사로 몸집을 부풀이며 전국의 빵 시장을 싹쓸이했다.

SPC 그룹 계열사 5곳이 국내 빵류 제조업 시장 점유율이 83%, 이 중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파리크라상이 41%를 점유한다. 지난 해 파리크라상의 영업 이익은 전체 평균의 14.6배, 삼립의 경우 무려 28.3배다. 명실상부 한국의 빵류 제조업과 양산빵 시장을 한 손에 거머쥔 거대 식품자본이 된 것이다.

시장이 독점되니 빵 가격에 대한 담합과 교란은 정해진 수순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빵을 먹는다. 아무리 밀 자급률이 1%밖에 안 되지만, 이렇게 비싼 빵을 먹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무소불위의 독점 체제는 시장과 가격의 교란뿐 아니라, 생산 과정에서도 무한한 수탈을 가능하게 한다.

▲민주노총 파리바게뜨지회 임종린 지회장과 최유경 수석부지회장이 지난 9월27일 서울 양재동 SPC 본사 앞 천막 농성을 찾은 프랑스노총과 만났다. 프랑스노총은 지난 6월 파리에 있는 파리바게뜨 매장에서 SPC 파리바게뜨를 규탄하고, 파리바게뜨지회의 투쟁을 지지하는 시위를 진행한 바 있다. 사진=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파리크라상을 비롯 SPC 4개 계열사의 산재는 5년 사이 37배 증가했다. 승인된 산재만 759건이고, 이 기간에 사망한 노동자는 17명에 이른다.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산재가 터진다. 사고 발생률이 일반 제조업 평균의 1.4배. 365일 쉬지 않고 가동되는 공장에서, 인력 충원도 없이 노동자들은 고강도 노동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 생산성 제고를 위해 배합기 뚜껑 같은 안전 장치도 모두 걷어냈다. 또 안전과 노동권을 요구하는 노조를 무력하기 위해 온갖 파괴공작과 대형로펌을 대동한 소송을 불사했다.

SPC 그룹이 아무 제재도 받지 않고 구축한 이 진공의 무법지대에서 당연히 손가락들이 절단되고, 생살이 찢겨지고, 노동자들이 배합기에 끼여 사망할 수밖에 없다. 과연 이게 빵 공장인가, 노동자들의 무덤인가. 평등의 빵 바게뜨는 어쩌다 고통과 죽음의 빵, 지독한 불평등의 빵이 된 걸까. 배고픔을 호소하며 간식을 달라는 노동자들에게 말라 비틀어진 샘플 빵을 던져줄 정도로 노동자를 기계 대하듯 허투루 부려왔다. 심지어 23살 노동자가 사망한 다음 날, 사고가 난 배합기에 흰 천을 두르고 생산한 샌드위치 4만개를 전량 시중에 유통시킨 저 파렴치야말로 이윤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지옥도 마다하지 않을 자본의 본색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면일 것이다.

▲10월20일 오후 서울 양재동 SPC 본사 앞에서 열린 평택 SPC 계열사 SPL의 제빵공장 사망 사고 희생자 서울 추모행사에서 참가자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 연합뉴스

상황이 이럴진대 중대재해처벌법 강화는커녕 되레 기업의 편익만 돌보느라 작은 사업장의 60시간 근무 허용을 연장하는 대통령과 여당도 이 연쇄 타살의 공범들일 것이다. 또 편리와 성장을 핑계로 그 동안 노동자의 권리와 안전을 도외시하고 독과점 체제에 눈 감아온 한국 사회에도 당연히 책임이 있다.

사람이 죽어가는 곳에서 만들어진, 세상에서 가장 비싼 빵을 먹는 우리는 도대체 누구인가? 빵 만들다 손가락들이 잘려나가는 이 세계가 과연 정상인가. 괴물들이 지배하지 않는 사회가 되려면 노동자의 피로 반죽되지 않는, 시민들의 연대와 나눔이 담긴 '평등의 빵'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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