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살아주길 바랐는데” 오열…“비정상적 인파 방치” 분통

박하얀·김세훈·김나연·최서은 기자 2022. 10. 30.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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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눈으로 밤새운 가족들
어디에 있니 ‘이태원 핼러윈 참사’ 실종자 가족들이 30일 서울 용산 한남동주민센터에서 실종자 접수를 마친 뒤 대기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수도권 각지의 장례식장서
가족들 시신 확인하며 통곡
“행사 상황 뉴스로 나왔는데
현장 통제 왜 못했는지 의문”

30일 오후 2시50분 경기 의정부시 백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한 어머니는 식장에 들어서자마자 오열했다. “이건 아니잖아….” 딸의 친구를 만나자마자 터져나온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대답도 없고 상처도 없고 아무리 당겨도 안 되고 비벼도 안 되고 얼굴을 갖다대도 대답이 없고…어찌 나한테 이런 일이 있나.” 어머니는 황망함에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큰 사고 당해도 살아남았는데…제발 좀 이겨주고 살아주길 바랐는데.” 희생자와 친한 언니, 동생 사이인 50대 여성 A씨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어떡해요”라며 울었다.

이번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숨진 40대 여성은 서울에서 부모와 함께 식당을 운영해왔다. A씨는 “(고인이) 이태원에 간다는 이야기만 듣고 카톡이 안 돼서 어머니에게 연락을 했다”며 “다들 기다리고 있었는데 용산경찰서에서 (고인의) 전화기가 사고 현장에서 발견됐다고 연락이 왔다”고 했다. 그때부터 용산서, 원효로 다목적체육관, 한남동주민센터 등을 수소문한 끝에 결국 부고장을 받았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들의 시신이 옮겨진 수도권 각지의 장례식장에서는 가족을 잃은 유족의 통곡이 끊이지 않았다.

사고 초기 다수의 시신이 임시로 안치됐던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 서울병원에는 사고 이튿날인 30일 새벽 실종자 가족들이 몰렸다. “이태원에 함께 간 친구가 연락이 안 된다”는 딸 친구의 전화를 받고 오전 2시10분쯤 병원을 찾은 아버지 B씨는 “시신 3구가 실려오는 것을 봤다. 팔과 다리가 보였고 모두 여자였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30분 후 B씨는 시신 1구를 확인한 뒤 주저앉아 울었다.

중년 여성 C씨도 오전 3시40분쯤 이 병원 응급실을 찾아왔다. 그는 “신원 확인은 해야 한다. 왜 (응급실에) 안 들여보내주냐”며 현장을 지키던 경찰관을 향해 소리쳤다. 청년 D씨는 오전 4시20분쯤 전화에 대고 “누나가 실려갔다. 순천향대병원으로 와달라”며 흐느꼈다.

이태원 핼러윈 축제에 참가한 외국인들의 지인들도 안치실을 찾아 희생자 신원을 확인했다. 전날 밤 친구 3명과 이태원에 있었다던 호주인 네이슨은 “다음주가 생일인 호주인 친구가 현장에서 쓰러져 있던 것을 봤지만 이후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주한 이란대사관 관계자도 순천향대서울병원을 찾아 이란인 남성 유학생의 신원을 확인했다.

가장 많은 시신이 안치된 동국대일산병원에는 경찰에 의해 신원이 파악된 희생자 가족이 있었다. 30일 낮 12시42분쯤 40~5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은 울먹이며 “저기요, 우리 애기 찾으러 왔는데”라고 병원 관계자에게 말했다. 입관실에 들어가 비명을 지르거나 바닥에 멍하니 앉아 있는 유족도 보였다.

유족들은 대규모 행사임에도 현장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24세 딸을 잃은 한 아버지 E씨는 이날 오후 3시20분 의정부시 백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기자와 만나 “아쉬운 건 (저녁) 8시 뉴스를 볼 때 핼러윈 장면이 나왔고 사람들이 밀집해 있었다. 정상적인 인파 수준이 아니고 콩나물 시루였다”며 “사고가 나서가 아니라 행사 진행 중인 게 뉴스로 나온 상황이었다. 왜 방치했는지 아쉽다”고 했다.

지난해 회사에 입사한 딸은 서울에서 자취해 지방에 있는 아버지와 떨어져 살았다고 한다. 걱정되는 마음에 이날 새벽 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기 너머로 “휴대전화를 주웠다”는 낯선 사람의 음성이 들려왔다. E씨는 곧장 서울에 올라와 실종자 신고를 했다. E씨의 지인 김모씨(59)는 “친구 같은 아빠였다”고 했다. E씨는 “그렇다고 다시 살아오겠나. 대형 행사를 하려면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는데 아쉽다. 더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여성 4명과 남성 1명 등 20~40대 시신 5구가 임시 안치된 을지대 경기의정부병원 장례식장도 희생자 유족들의 울음소리로 가득찼다. 의정부성모병원 장례식장 의전 현황판에는 25세 여성과 27세 남성이 ‘이태원 사고’로 ‘안치’돼 있다고 붉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서울시청 관계자는 “유족들이 (주거지 인근으로) 빈소를 옮기고 싶어하는데, (필요한 서류 발급이) 이르면 오늘 저녁이나 내일 나온다”고 했다.

사망자들 시신이 임시로 옮겨졌던 용산구 원효로 다목적체육관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날 오전 5시40분쯤 원효로 다목적체육관에서 한 여성은 내부 출입이 제한되자 시신이 체육관 밖으로 나올 때마다 고개를 아래로 젖혀 구청 직원 다리 사이로 시신을 확인했다. 신원이 확인된 시신은 유족의 요청에 따라 다른 병원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 안치됐던 20대 남성 희생자의 시신은 유가족 요청에 따라 충남 아산시에 있는 장례식장으로 인계됐다.

박하얀·김세훈·김나연·최서은 기자 whit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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