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 잃은 부상자, 심폐소생 나선 시민, 자녀 찾는 가족 ‘혼돈’
“사람이 깔렸다” 밤 10시15분 첫 신고…새벽까지 119 출동
신분증 분실로 신원 확인 시간 걸리고 시신 수습 과정 ‘혼란’
지난 29일 밤 200명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핼러윈 압사 사고 현장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오후 10시15분 “압사해서 죽을 것 같다. 사람들이 10명 정도 깔려 있다”는 119 신고를 시작으로 구조 요청이 쇄도했다. 신고자들은 “사람들이 무질서하게 있어서 다칠 것 같다” “질서 유지와 통제를 부탁한다”고 호소했지만 이미 수습하기에는 너무 늦은 상태였다.
29일 밤부터 30일 새벽까지 119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관들은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도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에게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했다. 소방관과 경찰관뿐 아니라 시민들까지 의식을 잃은 사람들의 가슴을 압박하고 팔다리를 주무르며 멎은 숨을 돌아오게 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구급차가 차례로 주차됐고 정신을 잃은 이송자들이 차량에 실렸다. 심폐소생술로도 살리지 못한 사람들의 시신은 주변 건물로 옮겨졌다가 30일 오전 2시 무렵부터 인근 병원과 체육관 등에 임시로 안치됐다.
동행한 지인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해 길거리에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시민도 보였다. 현장에서 만난 한 남성은 “한 시간 정도 기절해 있다가 구출돼 기억이 없다. 일어나니 친구들이 없다. (친구) 3명이 연락이 안 된다”고 했다. 뉴스를 보고 연락이 두절된 가족을 찾아 심야에 이태원으로 달려온 이도 보였다. 이모씨(67)는 “서른다섯 살 된 아들이 연락이 안 돼 뉴스를 보고 왔다”며 “전화를 8통 했는데 연락이 안 된다”고 했다.
이태원은 새벽 내내 신음하는 부상자들로 가득했다. 아수라장이 된 현장을 간신히 빠져나온 부상자들은 대부분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 상태였다. 한 여성 생존자는 “수많은 사람들이 밀려 눌리는 와중에 바로 옆에서 어깨를 기대고 있던 여성이 숨을 거뒀다”고 했다.
이태원역 삼거리가 압사 사고로 순식간에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변한 와중에도 반대편 골목길에선 핼러윈 의상 차림으로 남은 유흥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보였다.이들을 제지하려는 경찰관들 사이에 마찰이 빚어지기도 했다.
시신 수습 과정에서도 극심한 혼란이 빚어졌다. 30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주민센터에 마련된 실종신고센터에서는 “친구들이 (자녀를) 봤다고 하는데 그 이후로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면서 “검은색 부츠를 신었을 텐데 좀 찾아달라”며 오열하는 소리가 들렸다. 인파가 뒤엉키며 발생한 사고로 신분증이나 휴대전화가 유실된 사례가 많아 사상자 신분 확인에 시간이 걸린 탓이다. 방문객들은 주민센터 3층에서 실종자 이름과 연락처, 인상착의 등을 적어 건넨 뒤 지하 1층에 마련된 대기실에서 경찰과 병원의 연락을 기다렸다. 자녀의 사망 소식을 전해들은 부모는 대성통곡을 했다.
시신 안치 현장에 왔지만 생사 확인을 못해 분통을 터뜨리는 이들도 있었다. 용산구 한남동 순천향대 서울병원을 찾은 한 남성은 “지인의 딸이 사망해서 같이 왔는데 (고인의) 남자친구가 직접 사망한 걸 봤다는데도 아직까지 확인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사상자 79명이 실려온 순천향대 서울병원 장례식장에는 사망자의 인적 사항을 확인하려는 전화문의가 쏟아졌다.
사고 당일 이태원은 3년 만에 ‘마스크 없는’ 핼러윈을 즐기려는 인파로 넘쳐났다. 경찰은 당일 오후 8시쯤부터 현장에서 계도를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30일 오전 9시10분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참사 현장에서 한 블록 떨어진 카페 골목에도 전날의 상흔이 남아 있었다. 김태헌씨(26)는 사고 소식을 접한 뒤 망연자실해 귀가하지 못했다. 그는 “주변이 소란스러워 소방차와 순찰차가 출동하는 것을 봤지만 대형 사고가 났다는 것은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말했다.
일부 상인들은 한꺼번에 많은 인파가 몰린 탓에 사고가 발생하기 전부터 매우 위험해 보였다고 했다. 한 상인은 “이태원에서 40년쯤 장사를 했는데 (이번 인파는 규모가) 예사롭지 않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지역 상인들은 이번 사고를 무겁게 받아들였다. 의류업자 윤모씨(55)는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애도하는 마음으로 금일 휴점합니다”라는 글을 붙이고 퇴근했다. 그는 “돈이야 나중에 벌어도 되지만 이런 일이 있으면 (지역 상인 간) 마음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휴점 공고를 붙였다”고 말했다.
유경선·이홍근·김세훈·신주영·권정혁 기자 lights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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