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빛 6주기 추모제 '그래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죽음 뒤 싸움 이어온 동생들의 이야기 나눠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CJ ENM에서 방송산업 현장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숨진 이한빛 PD의 6주기 추모제가 26일 저녁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주최로 열렸다. 고 이한빛 PD의 동생 이한솔씨, 이재학 CJB청주방송 PD의 동생 이대로씨, 이힘찬 스튜디오S 프로듀서의 동생 이희씨가 이날 방송노동 현장의 부당함을 겪다 세상을 뜬 세 PD를 추억하고, 방송사 책임을 묻는 싸움의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희씨는 형인 이힘찬 프로듀서의 사망을 알게 된 당시를 떠올리며 “사실 매일 매일이 그날 아침 같다”고 말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니 가족의 전화가 수십 통 와 있었다. 할머니께서 위독해지셨나 생각했는데, 전화를 받아보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형이었다. 그 순간 일단 숨을 쉴 수가 없었다”며 “사실 지금도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이다. 받아들이는 과정이기에 사실 매일매일이 그날 아침”이라고 했다.
이대로씨는 “형이 청주방송에서 14년 동안 PD를 하다 쫓겨나 부당해고를 당했다는 것을 뒤늦게,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알았다. 명절이었다. 그 며칠 전은 형이 패소 판결을 받은 날이었는데 형의 생일이었다”고 했다. 그는 “원래 겨울을 좋아했다. 그날 이후로는 (가족들은) 겨울에는 아예 활동을 안 하고 눈 오는 것조차도 싫어한다. 아직까지 그 날의 냄새나 눈 오는 소리가 생생하다”며 “그날 이후 며칠 간 기억은 정확히 나지 않는다. CJB청주방송에 대한 분노 등으로 가득 차 며칠을 보냈던 것 같다”고 했다.
이한솔씨(한빛센터 운영위원)는 “형이 세상을 떠났을 때 장기간 훈련 중이었다. 군대에서 외부와 연락이 모두 차단된 상태로 훈련하는 중 전화를 받았다”며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그것이 가족이든 사랑하는 사람이든 보통은 나에게 원인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이들은 방송사가 형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부인하는 상황에 앞장서 싸움을 이어왔다. 이대로씨는 “끝까지 오고 싶었다. '청주방송도 죽고, 다 같이 죽자'라는 심정으로 투쟁을 시작했었다”며 “또 다음 회의가 잡히고 다음 투쟁, 다음 모임이 잡히면 저를 도와주신 많은 분들을 보면서 '끝내면 안 되겠다, 형이 원한 대로 정상적으로 싸움을 끝내고 이 결과를 사회에 알려서 영향을 미쳐야겠다'는 생각이 마지막까지 저를 끌고 왔다”고 했다.
이대로씨는 이어 “아쉬운 점은 투쟁을 하는 조직에 대한, 청주방송 안에 있는 정규직 노조인 언론노조 CJB청주방송지부에 대한 불신이나 실망감이 워낙 컸다”며 “형에 대한 죽음의 책임을 인정을 하지 않는 조합원도 꽤 있다”고 했다. 이어 “동생으로서, 또 회사와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용자, 노동자의 입장에서 여러 방면에서 아쉬움도 많고 아직 고쳐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솔직히 투쟁이 그렇게 끝난 것이 한편으로는 아쉽고, 다행이고 그렇다”고 했다.
이한솔씨는 “대책위나, 같이 싸웠던 분들이 같이 신뢰해야 할 지점은 이것이 사회적 죽음이라는 점”이라며 “이 사람을 넘어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그 죽음이 왜 발생했느냐는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죽음에 집중해 끝까지 왔던 대책위 분들을 만났기 때문에 운이 좋지 않았나 생각을 한다”했다.
이한솔씨는 싸움에 대한 기억이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달라져간다고 말했다. “3년 정도까지는 슬픔 자체로 와닿았다면, 어떤 시기 이후로는 바뀌었다. 죽음은 누구나에게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나도 (형에게) 떳떳할 수 있고, 형도 잘 기억되길 바랐던 것도 있었는데, '바랐던 것을 꼭 80년이 아닌 30년을 살아서 할 수도 있다. 그걸 같이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좋다'고 생각하게 된 시점은 있었다”고 했다.
이대로씨는 “(저는) 3년이 아직 안 됐다”며 “형의 죽음으로 인해서 조금이라도 바뀌는 모습들이 이제 보이기 시작했을 때 그것으로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그것과 관련된 기사이든 결과들이든, 그런 노동자의 힘이 연대해 뭔가를 계속 이뤄내는 것을 봤을 때 그런 식으로 (형의 죽음과) 끼워맞추기를 좀 하는 것 같다”고 했다. “형의 죽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이한빛 PD, 또 그 다음의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아직 너무 부족한데 조금씩 바뀜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이대로씨는 이어 “그냥 (대책위 활동과 청주방송 움직임을) 미친 듯이 따라다녔던 것 같다. 하나라도 놓치면 제가 모르는 사이 제가 아는 그 방송사들의 짓거리가 시작될까봐서다. 그때는 피곤했다.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저 나름대로 그 피로감들이 위로였던 것 같다”고 했다.
이대로씨는 “신기한 게 아기를 육아하며 위로를 받는다”고도 했다. 그는 “형이 아기를 본 게 돌아가시기 며칠 전 명절에 딱 한번이다. 전혀 그럴 성격이 아닌 형이 갓 낳은 돌도 안 된 애를 목욕을 하면서 직접 씻겨줬다. 그 때는 눈치를 못 챘는데, 아기를 ��기는 그게 나름 의미가 컸고 지금도 위로가 되고 있다”고 했다.
이희씨는 “아직 사실 정리가 되지 않은 기분이 든다. 언제부턴가 조금씩 정리되는 날이 올까, 정리하는 게 맞는 걸까 생각이 들고 있다. 사실 이제 막 지옥 속에 제가 들어가다가 꺼내져 나온 느낌”이라며 “그 과정 속에서는 같이 조사 활동해 주신 대책위 분들이 계셨고, 이제 막 조금씩 숨을 쉬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고 있다”고 했다.
이한솔씨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방송신문고 같은 오픈 카톡방에서 '좋아졌다'고들 할 때 그 이유를 '자연스럽게 좋아진 것'이라고 말하면 약간 기분이 나쁘다. 자연스럽게 좋아진 게 아닌데”라며 “좀더 노력하다보면 그래도 (위로받는 지점이) 전환되는 순간이 있지 않을까. 이한빛 PD가 바랐던 모습이 되어가는 것을 들을 때마다 꼭 원인에 대해 탐구하지 않아도 위로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올해는 대선과 중대재해처벌법, SPC 노동자 사망사건 등 방송노동 안팎의 산재사고와 노동권에 변곡점이 이어진 해이다. 이대로씨는 “열 받는다. 답답하고, '이게 나라냐'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며 “이상적으로는 한빛센터와 시민단체들, 활동가분들의 일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그런 세상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한다”고 했다.
그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근데 언젠가는 저희처럼 목소리 내고 계속 힘들더라도 꾸준히 연대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싸우고 있으면, 이 생각만 잃지 않으면 언젠가 많은 관계자분들이 실업자가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이날 제3회 한빛미디어노동인권상은 감사패 수여로 진행됐다. 김유경 노무사(돌꽃노동법률사무소)와 이은규 전 PD(전 MBC 드라마 국장), 정혜신 박사가 감사패를 받았다.
이한빛 PD는 tnN 드라마 '혼술남녀'에서 신입 조연출로 일하다 2016년 10월26일 숨졌다. 유가족과 청년유니온 등 시민사회노동단체가 싸워 2017년 6월 CJ ENM의 공식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약속받았고, 2018년에는 유가족이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를 세웠다.
이재학 PD는 청주방송에서 14년 간 '무늬만 프리랜서' PD로 일하다 사측의 말 한 마디로 부당해고 됐다. 이 PD는 근로자지위소송을 제기했고, 청주지방법원이 회사 손을 들어준 뒤 '억울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떴다. 이후 시민사회노동단체가 대책위원회를 꾸려 투쟁에 나섰고, 이 PD 사망 진상조사위원회는 2020년 6월 그의 사망 경위와 청주방송 노동환경에 이행과제를 내놨다. 2심 법원은 그가 숨진 지 1년 3개월 만에 이 PD 승소 판결했다.
이힘찬 프로듀서는 10년차 드라마 프로듀서로 SBS 드라마 담당 자회사 스튜디오S에서 일했다. 그는 최근 방영을 앞둔 '소방서 옆 경찰서' 총괄을 맡은 뒤 “모든 게 버겁다”는 말과 업무 기록 문서를 남기고 세상을 떴다. SBS·스튜디오S는 이 PD 죽음에 대한 '노사공동 조사'를 거부해 비판을 낳았고 지난 3월 노사공동조사위원회가 출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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