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영상 자꾸 생각나요” 괴로운 사람들… 전문가 당부는

문지연 기자 2022. 10. 30.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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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압사 사고 희생자 추모 공간에 시민들이 헌화한 국화꽃과 추모 메시지가 놓여 있다. /연합뉴스

서울 사는 직장인 김모(28)씨는 지난밤 잠이 오지 않아 새벽을 뜬 눈으로 보내고 아침을 맞았다. 자기 전 인스타그램을 살펴보다 이태원 참사 현장 영상을 접한 탓이었다. 김씨는 “모자이크 없이 적나라하게 퍼진 장면을 보고 나니 어느샌가 다른 영상들까지 다 찾아보고 있더라”며 “내가 간 것도 아니고 지인이 피해를 본 것도 아니었는데 괜히 멍해지고 자꾸 상상돼 힘들었다”고 했다.

고충을 토로한 건 김씨뿐만이 아니었다. 29일 밤 사고 발생 직후부터 30일 새벽 내내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에는 이태원 일대서 촬영된 영상과 사진들이 무차별적으로 퍼져나갔다. 심지어 심폐소생술(CPR)을 받는 피해자들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도 있었다. 이를 본 네티즌들은 결국 “기괴하고 무섭다” “사람들이 거리에 누워있는 모습이 계속 생각난다”며 괴로움을 호소했다.

◇ “현장 영상·사진 최대한 접촉 피해야”

이처럼 일반적이지 않은 대규모 압사 현장이 실시간 생중계되다시피 공개되자, 전 국민에게 트라우마를 안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미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30일 현장 영상 유포와 혐오 표현 자제를 당부하는 성명을 냈고, 전문가들 역시 2·3차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총무위원장인 백명재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날 조선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관련 영상이나 사진을 최대한 접촉하지 않는 것”이라며 “자극적이기 때문에 반복해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영상을 전달받더라도 확인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사고 현장 인근이 통제되고 있다. /뉴시스

더불어 “일반인들은 관련 준칙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포털이나 웹사이트 운영진들이 관련 게시물을 적절하게 관리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했다. 앞서 카카오와 트위터 등 일부 포털과 소셜미디어는 사고 관련 글 작성에 주의를 당부하는 공지문을 올리고 부적절한 게시물을 발견할 시 신고해줄 것을 사용자들에게 요청한 상태다.

◇ “불안함 호소는 정상 반응… 상담전화 적극 이용해야”

앞선 사례의 김씨처럼 사고 당사자가 아님에도 단시간 내 후유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에 대해 백 교수는 “스스로 이상하다고 생각할 필요 없는 자연스러운 심리적 반응”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디어를 통해 사고를 접한 경우 그 충격이 불안함으로 나타날 수 있다”며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기준에 해당하거나 특정 정신 증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멍해지고 계속 (사고 장면이) 생각나는 현상이 개인에게 오래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백 교수는 “가장 위험한 건 유족들과 부상자들이다. 그 명단을 입수해 치료 관련 선제적 조치를 취하겠지만, 현장에 누가 있었는지 정확한 파악은 사실 어렵다”며 “때문에 이태원 방문자나 일반 국민들의 경우 정신건강 상담전화(1577-0199)를 적극 이용하셔야 한다. 각 지자체에서 24시간 운영되며 전문요원이 현재 상태를 평가하고 상담을 제공한다”고 전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30일 오후 이태원 압사 참사 사망자들이 안치된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학교서울병원을 방문,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이날 사고 관련 심리 치료를 위한 국가트라우마센터와 광역·기초 정신건강복지센터를 포함한 100명 규모의 통합심리지원단을 구성하기로 했다. 대상자는 유가족과 부상자, 목격자 등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부상자의 경우 공무원과 지자체, 의사협회 등과 협력해 밀착 지원할 예정”이라며 “사망자에 대해서는 서울시에서 2인1조로 팀을 구성해 지원 중”이라고 밝혔다.

◇ “정신과 진료 거부감 갖지 말아야”

백 교수는 앞으로 이어질 트라우마 당사자들의 치료 과정과 2차 피해 확산과 관련한 당부도 덧붙였다. 그는 “보통 사고를 경험한 트라우마보다 2차적으로 받는 스트레스의 영향이 더 크다”며 “서로를 비난하거나 책임공방과 관련된 부분들로 인해 누군가를 죄인으로 만들고 피해자에게 스스로를 위험에 노출시켰다는 낙인을 찍기도 하는데, 이런 것들에 대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이어 “심리 상태가 심각한 분들 중 진료나 상담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럴 여력이 없다던지, 상담을 받아도 도움이 안 될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라며 “전문 상담이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아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사고 현장 인근에 한 시민이 두고 간 꽃이 놓여져 있다. /뉴스1

또 “여전히 정신과 진료에 대한 편견을 가진 분들이 많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한 인원이 폭증하고 있다. 20대의 경우 2017년부터 지난해 수치를 보면 무려 2.4배가 늘었다”며 “편견과 오해들이 많이 사라지는 추세고 주변 친구들이 많이 가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힘들면 누구나 갈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편 이번 사고는 29일 밤 이태원 해밀톤호텔 인근 골목에 대규모 인파가 몰려들며 발생했다. 30일 오후 확인된 사망자는 154명이다. 이중 외국인 사망자는 26명으로 중국, 이란,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등의 국적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부상자는 중상 36명, 경상 96명 등 총 132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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