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태원 핼러윈 참사, 안전대책 부실이 낳은 ‘예고된 재난’

기자 2022. 10. 30.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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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30일부터 11월 5일까지 1주일간을 국가애도기간으로 정해 ‘이태원 핼러윈 참사’ 희생자에 대한 조의를 표하기로 했다. 사진은 정부서울청사에 조기가 게양된 모습이다. 강윤중 기자

지난 29일 밤 핼러윈 축제가 한창이던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154명이 숨지고 132명이 다치는(30일 오후 11시 기준) 최악의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2014년 304명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인명피해를 낸 참사다. 사망자 대부분은 10~30대이고, 외국인도 26명이 목숨을 잃었다. 서울 도심에서 이런 대형 사고가 일어났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안타깝고 참담하기 그지없다. 희생자들의 명복과 부상자들의 쾌유를 빌며,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한다.

경찰과 목격자 증언을 종합하면, 이번 사고는 이태원 해밀톤호텔 인근 폭 4m, 길이 40m의 좁고 가파른 골목에 인파가 몰린 것이 직접적 원인으로 보인다. 비극은 29일 오후 10시15분쯤 골목에 몰려든 사람들이 서로에게 밀려 도미노처럼 쓰러지면서 시작됐다. 소방과 경찰이 신고를 접수하고 출동했지만, 워낙 사람이 많은 탓에 실제 인파에 접근하기는 어려웠다. 쓰러진 시민들은 의식을 잃어갔고, 생존자들은 동료나 친구의 목숨이 사그라지는 것을 공포와 불안 속에서 지켜봐야 했다. 한 20대 남성은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가장 아래에 깔린 사람부터 차례로 빼냈지만 최소 10분간은 그곳에 깔려 있었다”고 전했다. 의료진과 주변 시민들이 의식을 잃은 부상자들에게 심폐소생술을 하고, 비보를 접한 국민들이 큰 피해가 없기를 기원했지만 참사를 막을 수는 없었다.

대규모 압사 사고는 주로 종교 행사장이나 스포츠 경기장처럼 출입구가 제한된 공간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이번 참사는 서울 한복판 열린 공간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안전대책 부실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3년 만에 ‘노 마스크’ 핼러윈 축제가 열리는 만큼, 이태원에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은 예상된 일이었다. 실제 사고 당일은 오전부터 인파가 몰리기 시작해 밤 10시쯤에는 사고 현장인 해밀톤호텔 골목은 물론 이태원 전역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사고가 난 지역은 과거 핼러윈 때도 극심한 혼잡이 빚어졌던 곳으로, 전날인 28일 밤에도 사람들이 떠밀려 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참사가 발생한 골목 앞 이태원로의 차량 통행을 막고 보행자 전용도로로 만들어 공간에 여유를 두었더라면 미연에 사고를 막거나,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29일 이태원에는 1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지만 이들의 통행을 관리하는 경찰·지자체 인력은 소수였다. 정부나 지자체 행사가 아니고, 특정 주관 단체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참사 현장으로부터 2㎞ 떨어진 대통령실 청사 인근 삼각지역에선 그날 오후 늦은 시각까지 집회가 열렸는데, 수많은 경찰이 통제·관리를 담당했다. 반면 집회 못지않게 많은 인원이 모인 이태원 행사는 밤 10시가 넘도록 사실상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가 참변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고 책임회피성 발언을 했다. 이것이 국민 안전과 재난 대책을 총괄하는 행안부 장관이 할 말인가.

결국 이번 사고도 ‘예고된 인재’와 다름이 없다. 일부 축제 참가자들의 무질서 탓으로 사고 원인을 돌리는 것은 옳지도 타당하지도 않다. 사고 시점과 비슷한 시각, 인파가 몰린 서울지하철 이태원역에서는 안전사고가 한 건도 없었다. 역무원들이 적극적으로 승하차를 안내하고 시민들도 잘 따랐기 때문이다.

세월호 침몰과 삼풍백화점 붕괴 등 그 많은 ‘사회적 재난’을 겪고도 유사한 참사가 되풀이되니 비통하고 기막힐 따름이다. 지금 당장은 희생자 신원 확인과 부상자 의료지원 등 신속한 사고 수습이 우선이다. 이후엔 사고 원인을 철저히 규명해 관련자들의 책임을 낱낱이 묻고, 실효성 있는 재발 방지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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