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시민의식, 빛과 그림자
119신고 후 2분 만에 구조대원들이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초동 구조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비좁은 골목길에 옴짝달싹할 틈도 없이 들어찬 인파를 헤쳐나갈 수 없었다. 사방에서 구해달라, 살려달라는 비명과 울음이 터져나왔다. 목격자들은 사람들이 계속 밀리고 버티고 깔리는 상황이 1시간 넘게 이어졌다고 했다. 결국, 지난 29일 밤 이태원은 축제를 즐기러 나온 수많은 시민이 목숨을 잃고 다친 참사의 현장이 됐다.
시민 다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서로를 도왔다. 자발적으로 손을 뻗고 팔을 걷어붙여 인명 구조에 나섰다. 구조대가 오기 전부터 길에 떠밀려가던 사람들의 손을 잡아 난간 위로 끌어올린 시민, 가게 안으로 들여 대피시킨 상인들이 많았다. 정신을 잃은 사람이 보이면 인공호흡이나 심폐소생술을 하러 나서는 이도 적지 않았다. 현장에 있던 한 시민은 “나도 휩쓸려 내려가다 누군가 손을 잡아준 덕에 살았다. 아프고 다친 사람이 있으면 물을 줬고, 기운 내라고 말해줬다”고 전했다.
소수지만 몰지각한 행태를 보인 이들도 눈에 띄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사고 현장이 내려다보이는 건물 테라스에서 웃으며 사진·영상을 찍는 이들이 목격됐고, 참사 직후 현장을 수습하는 경찰의 귀가·해산 요청에 항의하며 음주·파티를 계속한 취객도 상당수였다고 한다. 심지어 출동한 구급차 부근에 몰려들어 손에 휴대전화를 든 채 클럽 음악에 맞춰 ‘떼창’을 하고 춤을 춘 이들도 있었다. 이들을 찍은 영상은 다수 소셜미디어를 통해 급속도로 퍼졌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비난이 쇄도했다. 최악의 사례는 소셜미디어에 참사 현장을 여과 없이 생중계하거나 사상자들의 사진·영상을 무차별적으로 퍼뜨린 이들이다. 시민정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행태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30일 긴급성명을 내고, 사고 당시 현장 사진·영상을 유포하는 일과 온라인상 혐오표현을 멈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피해자 명예훼손과 2차·3차 피해를 방지하고 국민 다수의 심리적 트라우마 발생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누구든 참사 현장 촬영물을 퍼뜨리는 행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지금은 모두가 차분히 힘을 합쳐 슬픔을 헤쳐나가야 할 때이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공군 대령, ‘딸뻘’ 소위 강간미수···“유혹당했다” 2차 가해
- 김재섭, 윤 대통령-명태균 통화 “부끄럽고 참담···해명 누가 믿냐”
- [스경X이슈] ‘나는 솔로’ 23기 정숙, 하다하다 범죄전과자까지 출연…검증 하긴 하나?
- 친윤 강명구 “윤 대통령, 박절하지 못한 분···사적 얘기”
- 70대 아버지 살해한 30대 아들, 경찰에 자수…“어머니 괴롭혀와서” 진술
- [한국갤럽]윤 대통령, 역대 최저 19% 지지율…TK선 18% ‘지지층 붕괴’
- [단독] ‘김건희 일가 특혜 의혹’ 일었던 양평고속도로 용역 업체도 관급 공사 수주↑
- 김용민 “임기 단축 개헌하면 내년 5월 끝···탄핵보다 더 빨라”
- 미 “북한군 8000명 러시아서 훈련 받아…곧 전투 투입 예상”
- “선수들 생각, 다르지 않았다”···안세영 손 100% 들어준 문체부, 협회엔 김택규 회장 해임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