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계·폭력에 얼룩진 사회… ‘연대와 동행’ 외치고파”

이강은 2022. 10. 30.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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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C 아티스트’ 선정 극작가 진주
신작 ‘클래스’ 11월 12일까지 공연
폭력·노동력 착취 본질은 수직적 문화
정·학계 등 ‘다층적 위계’ 문제 꼬집어
“교수·대학원생 양쪽 입장 대변 노력
끝없는 갈등 겪지만 결국 진실 찾아
관객 스스로 결말 낼수 있도록 유도”
중견 극작가 겸 교수 A(이주영)와 대학원생 B(정새별)는 뜻하지 않게 일대일로 극작수업을 하게 된다. 평소 A의 열성팬인 B는 한 학기 동안 개인 지도를 받게 된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신념과 창작관 등이 부딪치면서 둘 사이에 불편한 기류가 흐른다. 자신이 쓴 희곡이 매번 심사에서 탈락하던 B가 어렸을 적 언니에게 당한 폭력과 그 아픔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들고 오자 A는 탐탁지 않아 하는 식이다. B는 존경하는 작가이자 스승인 A의 부정적 반응에 위축되다가도 제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대화는 갈수록 날이 선다. A가 결국 B의 작품을 지도해주는 과정도 순탄치 않다. 둘의 논쟁 속에 예술과 삶의 경계, 위계 서열과 폭력, 세대 갈등 등 우리 사회가 마주한 다양한 이슈가 튀어나오며 갈등과 긴장이 고조된다.
극작가 겸 교수 A와 극작가 지망생 B가 이끌어가는 2인극 ‘클래스’의 한 장면. 신진 예술가 활동을 지원하는 ‘DAC 아티스트(Artist)’ 프로그램을 지난해 공모로 바꾼 뒤 9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처음 선정된 극작가 진주의 신작이다. 두산아트센터 제공
지난 25일 서울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무대에 올라 다음달 12일까지 공연되는 연극 ‘클래스’ 얘기다. 2인극인 ‘클래스’는 두산아트센터가 40세 이하 젊은 예술가에게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DAC 아티스트(Artist)’ 프로그램을 지난해 공모로 바꾼 뒤 9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처음 선정된 극작가 진주(38)의 신작이다. 진 작가는 전작 ‘정동구락부: 손탁호텔의 사람들’, ‘배소고지 이야기: 기억의 연못’, ‘아낙(ANAK)’ 등에서 보듯 소외된 존재와 약자에 집중하면서 동시대 사회 문제를 치열하게 다뤄온 작가로 평가받는다. 등장인물이 많았던 전작들과 달리 장편 2인극이라 큰맘 먹고 도전했다는 그가 ‘클래스’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무엇일까.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대학 강사로 일하느라 바쁜 진 작가와 지난 27일 저녁 전화로 만났다.

―학교에서 ‘작가가 나오는 극을, 연극에 대한 극을, 예술에 대해 말하는 극을 쓰지 말라’고 배웠다면서 이런 희곡을 쓴 이유가 뭔가.

“(자의식 과잉에 빠질 위험 등을 우려해) 그런 극은 절대 쓰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렇게 됐다(웃음). 뭔가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시작한 건 아니다. ‘클래스’의 극중극(劇中劇)인 ‘고독한 케이크방’을 ‘미투 운동’ 소재로 (몇 년 전) 썼는데 단막극이라 관객을 만나기 어려웠다. 좀 더 확장할 수 있는 이야기를 고민하던 중 미투 운동이 정계는 물론, 예술계와 학계 등 다방면으로 확산하고 교수·학생 간 노동력 착취 문제까지 불거지는 것을 보면서 이러한 폭력의 본질이 위계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 교실(강의실)이라고 봤다.”

―‘극중극’도 그렇고 작품의 결말이 명확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A와 B처럼) 자기 위치에 따라 (사안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수밖에 없어 답을 내리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 극을 쓰는 내내 어떤 결정들을 명확하게 내리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관객들이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여러 질문을 던졌다.”

―A와 B 중 누구 손을 선뜻 들어주기 어렵더라. 본인 경험이 반영된 건가(진 작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학생 시절부터 지방의 한 대학을 오가며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그렇다. 하루는 (학생으로서) 숙제를 하고, 다른 하루는 (선생으로서) 숙제를 내고 검사하는 생활이 이상하더라. 나는 무척 소극적인 학생인데 막상 가르칠 때는 학생들에게 적극적인 태도를 요구하게 되더라. 선생님들에게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숙제를 다 소화하기 힘든 학생들 입장도 이해되고. 그래서 어느 한편에 기울어지지 않도록 신경 썼다. A와 B는 서로를 상처 주려 공격한 게 아니라 정말 대화하려 최선을 다한 것이다.”
―‘클래스’는 2인극이지만 ‘극중극’(B의 희곡)에 등장하는 ‘나나’와 ‘언니’에다 A의 스승인 ‘원로 교수’와 B의 룸메이트였던 ‘죽은 학생’ 이야기까지 세 쌍의 인물관계도가 그려진다.

“사실 2019년 처음 쓸 때는 A와 B, 극중극의 ‘나나’와 ‘언니’만 있었는데 (스토리) 진척이 잘 안됐다. ‘도대체 왜 이렇게 어려울까’를 고민하며 1년 가까이 보내다 원로 교수와 죽은 학생 이야기가 생각났다. 내용이 너무 방대해질까 봐 (한참) 주저하다 집어넣었는데 잘한 것 같다. (추가된 스토리 덕에 전체) 이야기가 더 진행되고, A와 B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 수 있게 돼서.”

―이 작품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었고, 극작가와 연출가로서 지향하는 작품 활동 방향은 뭔지 궁금하다.

“A와 B가 끊임없이 대립하는 것 같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 서로의 시선을 확장한다. 둘은 또 감춰진 것들을 찾으려 애쓰면서 진실을 찾아간다. 이처럼 우리가 서로 맹목적으로 지지하거나 가르쳐야만 하는 대상이 아니라 경청하면서 동등하게 함께 가야 한다는 ‘연대’와 ‘동행’을 요청하고 싶었다. 일부러 목표하진 않았지만 내가 비주류나 소외계층에 속해서인지 자꾸 그들에게 눈이 간다. 작품에서라도 그분들이 목소리 내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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