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인근 주민·상인 탄식만…“내 자식들 같아서, 어른들이 미안”

2022. 10. 3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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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지난 ‘이태원 참사’ 현장 모습
새벽녘 행인들 “난 못봤다”…술 취한듯 흐느적
일부 상인, 슬픔 억누르며 조심스레 일상 준비
애도 분위기속 당분간 “문 안 열겠다”는 상인도
29일 밤 ‘압사 참사’가 발생한 장소 근처인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한 골목의 30일 오전 모습. 쓰레기가 남아 있긴 하지만 어느 정도 정돈이 돼 있다. 박혜원 기자

[헤럴드경제=신상윤·김영철·박혜원 기자] #1. 29일 늦은 밤, 자정이 다 됐을 때였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옆 클럽이 밀집한 좁은 오르막 골목, 1시간여 전만 해도 인산인해를 이뤘던 이 골목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도와주세요! CPR(심폐소생술)할 수 있는 분 안 계십니까?” CPR이 가능한 사람들이 인파에 깔려 심정지 상태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 속속 나섰다. CPR 끝에 일부는 숨을 다시 찾았지만 또 다른 일부는 “차도가 없다”는 말 속에 파란 모포에 덮여져야만 했다. 가족, 연인, 친구, 지인을 눈앞에서 잃은 사람들의 절규 속에서 술에 취한 듯 보이는 몇몇 행인이 사고를 모르는 듯 웃음마저 띤 채 그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2, 30일 오전 5시30분께 사고가 난 지 반나절, 약 6시간이 지났던 시각. 희생자들의 시신은 모두 옮겨져 있었다. 사고가 일어난지조차 모르는 듯 코스프레를 한 사람들, 술에 취해 집에 가는 사람들이 첫 열차를 타기 위해 용산구 이태원역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사고가 일어난 것은 알았지만 나는 못 봤다”면서 흐느적대던 그들의 모습에서 무심함이 느껴졌다. 쓰레기가 사고 현장 인근에 여전히 나뒹굴고 있었다.

사고가 난 지 하루가 지났지만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발생한 해밀톤호텔 인근은 주민과 상인의 안타까움과 탄식만이 가득 찼다. 상인들은 애도 분위기 속에 대부분 문을 닫았다. 그래도 일부 상인은 가게 문을 열고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이날 오전 헤럴드경제와 만난 김모(30) 씨는 29일 오후 11시께 사고 현장에 있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씨는 “도로는 통제되고 인도는 사람들로 가득 차 20분 정도 아예 움직이지 못했다”며 “사고가 난 줄도 몰랐다. 키 작은 여성분들이 숨쉬기 힘들어했다”고 했다.

이번 사고는 밀려드는 인파에 의해 사람들이 겹겹이 쌓이면서 끔찍한 인명 사고로 번졌다. 만원 지하철을 탔을 때 심장이 답답하고 숨쉬기 어려운 느낌과 비슷하다. 폐에 공기가 안 들어가게 되고 산소가 부족해지면서 질식으로 이어진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몸무게 65㎏의 100명이 밀었다고 가정하면 깔린 사람에게는 18t의 압력이 가해져 심정지를 초래할 수 있다. 목격자와 구조 참여자들은 “밑에 깔린 이들을 꺼내기도 어려웠지만 구조 뒤에는 대부분 사실상 심정지 상태였다”고 했다.

사고가 발생 후 한나절(12시간가량)이 지난 이날 낮 12시 무렵, 새벽까지 뒹굴던 거리의 쓰레기는 어느 정도 정돈돼 있어 폴리스라인만이 당시의 참상을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밤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인근 상인들이 속속 나와 일상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물론 문을 닫은 상인도 곳곳에 있었다.

인근 주민은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름도, 성(姓)조차도 밝히지 않은 A(64) 씨는 담요를 뒤집어쓴 채 사고 현장 인근인 이태원역 앞에서 오열했다. 그는 “내 자식들이 1990년대생인데 어제(29일) 놀러온 대다수 시민과 또래”라며 “다행히 가족 중에 참사에 휘말린 사람은 없었지만 다 내 자식들 같아서…. 술 안 먹고 여기 오지 않았으면 무사했을 텐데, 어른들이 너무 미안하다”고 울먹였다.

김일옥(78·여) 씨도 “이런 사고도, 이 정도 인파도 이 동네에서만 50년 살았는데 처음이었다”며 “(밤) 12시에 TV로 소식을 듣고 한동안 잠을 못 잤다. 아침이 돼서야 현장을 보러 나왔다”고 말했다.

용산구에 산다는 고성영(54) 씨도 “아침에 기사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피해자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왔다”며 “자녀가 3명 있는데 모두 20대라 남일 같지 않다. 누가 뚜렷이 잘못했다기보다 정말 사고 같아 더 안타까운 마음뿐”이라고 슬퍼했다.

29일 밤 ‘압사 참사’가 발생한 장소 근처인 서울 이태원동의 한 카페의 30일 오전 모습. ‘이날 하루 휴업한다’는 팻말이 붙어 있다. 박혜원 기자

반면 인근 가게는 애도 분위기 속에서도 문을 여는 곳과 닫는 곳으로 갈렸다. 한 스포츠매장 직원인 조모(46) 씨는 가게 앞 낙엽과 쓰레기를 치우며 영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조씨는 “젊은 사람이 많이 희생돼 안타깝다”면서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겨우 골목 일대가 활기를 띠고 있었는데 당분간 침체되지 않을까 싶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옷가게 사장 임모(62) 씨는 “문을 열려는 것이 아니다. 가게 앞이 너무 지저분해서 정리만 하려고 나왔다”며 “어수선하고 손님도 안 올 것 같다. 당분간 영업은 안 할 생각”이라고 했다.

이태원역 인근에서 휴대전화가게를 운영하는 파키스탄 국적의 가리크(48) 씨는 “오전까지만 하고 문을 닫으려 한다. 내일(핼러윈 당일·31일)은 (가게를) 열 수도 있지만 일찍 닫으려고 한다”고 털어놨다. 이어 “지인 중 안부차 오늘 아침에만 10여 통이나 전화가 왔을 정도인데 친구 중 다친 사람이 있을까 봐 초조하다.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며 “모두에게 생명은 소중한데 젊은 친구들이 이런 사고를 당해서 가슴이 찢어진다”고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양복점 사장 나모(76) 씨는 “손주가 5명 있는데 모두 10대다. 핼러윈이기도 하니 놀러오라고 하려다가 그만뒀는데 사망자 중 10대도 많다고 하니 아찔하다”고 했다. 이어 “(코로나 사태 전인) 3년 전 핼러윈 때에는 차도에도 사람들이 다닐 수 있게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올해에는 차량만 다니게 해 인도에 사람이 몰렸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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