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국 아닌데 대형 압사사고?…외신 "한국, 세월호 이후 안전 개선됐나"
외신 "인파 몰릴 것 예상했어야" 대비 부족 지적
이상민 "경찰 배치했다고 해결될 문제 아냐" 반박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발생한 대규모 참사와 관련해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은 일제히 현장의 안전 관리 부족을 원인으로 짚었다. "경찰 인력을 배치해 해결할 문제는 아니었다"는 우리 정부 시각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분석이다.
특히 대부분의 대형 압사 사고는 공공 안전 체계가 부족한 개발도상국에서 발생해왔기에, 주요 외신들은 한국 정부가 안전 체계를 충분히 갖췄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과거 세월호 참사를 언급하며 현 정부의 정치적 난제가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었다.
종교·문화 행사서 주로 발생…인도·사우디서 빈발
로이터통신 등 외신을 종합하면 이번 세기 발생한 대형 압사 사고의 특징은 두 가지로 정리된다. 먼저 대부분 사고는 ①종교적 장소와 스포츠·문화 행사에서 벌어졌다. 이달 1일 인도네시아에서 132명이 숨진 압사 사고는 축구장에서 발생했고, 2015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2,000명 넘게 숨진 사고는 이슬람 성지 메카인 카바 신전 근처에서 일어났다. 2013년 브라질 남부 산타마리아에선 나이트클럽 방문객들이 화재를 피해 탈출하는 과정에서 230명 넘게 압사·질식사했다.
또 다른 특징은 사고가 주로 ②공공 안전 체계가 부족한 개발도상국에서 일어났다는 점이다. 이번 세기 일어난 사망자 100명 이상의 대형 압사 사고는 총 16건으로 인도 5건, 사우디 3건, 이라크·캄보디아·에티오피아·브라질·인도네시아·가나·미국·한국 각 1건씩이었다. 이태원 참사의 사망자 규모는 10번째로 높았다. 선진국 수준의 경제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받는 한국에서 100명 이상이 사망하는 대형 참사가 발생하자, 주요 외신들이 이 사건을 주요 뉴스로 자세히 다룬 이유다.
"현장에 충분한 관리 인원 부족 확실해 보여"
외신들은 이번 참사의 주요 원인으로 안전 관리 소홀과 방문객 규모 예상 실패를 꼽았다. 이는 개발도상국에서 벌어지는 대형 압사 사고에도 단골처럼 지적되는 원인이다. 특히 경찰·소방력 배치가 부족했다는 점을 공통으로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WP) 등은 행사에 참여했던 외국인들을 인용해 "사고가 난 밤에 본 경찰은 이태원역과 녹사평역 근처에 있던 몇 명이 다였다"고 전했다.
줄리엣 카이엠 미 재난관리 전문가는 "당국이 토요일 밤에 사람이 많이 몰릴 건 예상해야 했다"며 "사람들을 구출해야 할 시점을 알 수 있도록 실시간으로 군중 규모를 확인할 의무가 있었다"고 CNN방송에 말했다. 브라이언 히긴스 범죄학 전문 존제이대학교 비상대응 강사도 "현장에 충분한 관리 요원이나 (관리) 계획이 없었던 건 확실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외신들은 한국 정부가 이미 여러 행사에서 대규모 인파를 관리해본 경험이 있음에도 사고 방지에 실패한 데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NYT는 "최근 한국에서 벌어진 정치 집회들은 시위자보다 출동한 경찰이 더 많은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어제의 사고 현장은 대조적이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시각은 달랐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날 "경찰·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해서 해결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한다"며 국내외 언론에서 지적하는 사고원인과 안전 인력 배치와의 연관성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여러 외신은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에서 공공 안전 관리 부족 문제가 불거졌었다는 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동시에 이번 사고를 계기로 안전 체계가 충분히 개선됐는지 의문이 제기될 것으로 내다봤다.
AP통신은 "(세월호) 침몰은 (한국의) 느슨한 안전 기준과 규제 실패를 드러냈었다"고 설명하며 "(어제의 사고로) 정부가 안전 기준 개선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대중의 철저한 검토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NYT는 세월호 참사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언급하며 "집권 후 끝없이 정치적 문제를 겪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번 사고는 최대의 정치 난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장수현 기자 jangsu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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