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외신 "충분한 경찰 병력·안전대책 미비"(종합2보)
"인파 몰릴 것 예상됐지만 경찰 배치 등 예방·해산 조치 부족"
WSJ "어린이들 사탕 받는 핼러윈, 한국선 클럽 가는 이벤트 변질"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황철환 기자 =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압사 참사에 대해 외신들은 코로나19 방역규제가 풀린 뒤 맞이한 첫 핼러윈 축제에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됐지만, 사고 예방 조치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우선 외신들은 사고가 발생한 이태원의 지리적 특성에 주목했다. 이태원은 좁은 골목길이 많은데, 코로나19로 2년간 중단됐던 핼러윈 축제가 다시 열리자 평소보다 훨씬 많은 젊은이가 한꺼번에 몰렸다가 참변을 당했다는 것이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29일(현지시간) 한정된 공간에 지나치게 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사고가 초래됐다는 영국 잉글랜드 서퍽대 방문교수이자 군중 안전 문제 전문가인 G. 키스 스틸 교수의 분석을 소개했다.
스틸 교수는 "이른바 '집단 쏠림'(stampede)은 사람들이 달릴 공간이 있어야 발생하는데 이태원은 그런 사례가 아니다"라면서 "좁고 막힌 공간일 경우 군중 전체가 한 무더기로 무너지면 다시 일어날 수가 없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도미노 효과와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사고는 통상 인파를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밀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공황 상태에 빠져서 사람이 죽은 게 아니라 (깔린 채) 죽어가기 때문에 공황 상태에 빠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목격자들은 이태원 해밀톤 호텔 옆에 위치한 4m 너비의 비좁은 경사로에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이 인파의 압력에 밀리면서 한 번에 쓰러졌다고 증언했다.
스틸 교수는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으로 오랜 기간 외부활동이 제한됐다가 올해 관련 규제가 대부분 해제되면서 평소보다 더 많은 사람이 핼러윈 행사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WP는 '서울 압사 사고는 어떻게, 어디서 일어났나'라는 제목의 별도의 기사에서는 이번 비극의 원인이 여전히 조사 중이지만, 현장 영상을 보면 좁은 거리와 골목길이 몰려드는 인파의 규모를 감당할 수 없었음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CNN은 "이태원의 비좁고 협소한 거리와 골목으로 인해 어둠이 깔리고 특히 사람이 붐비면 길을 찾기가 더 어려워진다"며 당시 좁은 거리로 군중이 밀려들면서 압사가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한국은 수십 년간 정치적 시위 및 종종 폭력적 결과를 부른 경찰 병력 진압을 수반한 대규모 집회를 겪어오면서 군중 통제에 대한 경험이 있는 나라"라며 "이번 토요일 밤의 이태원 상황은 최근의 정치적 시위 현장에서 민간인보다 경찰이 많은 것처럼 보인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고 지적했다.
미국 뉴욕의 존 제이 범죄학 컬리지 강사인 브라이언 히긴스는 NYT에 경찰과 공공안전 당국자들이 쏟아져나온 규모의 군중에 대한 대응에 준비가 안 된 상태였던 걸로 보인다며 "충분한 현장 인력과 계획이 없었던 것은 꽤 분명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수용 가능한 규모보다 더 많은 인파가 그 공간에 들어갔다. 그것은 분명하다"며 "많은 사람이 일단 안에 들어간 상황에서 그들을 빨리 해산시킬 계획 또한 있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처럼 많은 군중이 운집한 상황에서 출구 신호나 해산을 도울 장내 설비를 통한 안내 방송이 필요한데, 이 어느 것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이다.
NYT는 이번 사고에 휘말렸다가 살아남은 생존자의 증언을 직접 소개하면서 인파가 몰릴 것이 충분히 예상 가능했지만 적절한 대비책이 없었다고 전했다.
이 생존자는 사고 당시 주변에 있던 경찰관 몇 명이 달려와 상황을 수습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면서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작년 핼러윈 때도 큰 인파가 몰렸다. 올해는 사람이 더 몰릴 것으로 예상하고 정부가 더 많은 경찰을 배치해 군중을 통제했어야 했다"고 NYT에 말했다.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내 앞사람이 발이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나도 밀려 넘어졌고, 내 뒷사람들 역시 도미노처럼 넘어졌다"면서 질식할 뻔하다가 간신히 빠져나와 돌아본 현장은 혼란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너무나 붐비고 시끄러운 탓에 불과 몇 m 앞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데도 주변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한 채 사진을 찍거나 화장을 하고 주점 주인과 언쟁을 벌이는 등 상관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고 그는 전했다.
CNN 방송은 3년 만에 코로나19 관련 제한이 없는 첫 핼러윈 행사였다는 점을 언급하며 "마스크 착용 의무도, 군중 규모에 관한 제한도 없었다.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는 확성기 경고만 있었다"고 지적했다.
CNN 윌 리플리 기자는 그러면서 "아직 답변이 없는 큰 질문은 '왜', 그리고 '다른 무슨 일을 할 수 있는가' 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으로 한국에서 12년을 거주했다는 윌렘 그레젤은 WP에 "이날 저녁에는 이태원에서 가까운 지하철역 인근에서 경찰관 몇 명만 보였다"면서 "인파가 몰리면 경찰이 거리와 골목길을 통제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AFP통신은 참사 이틀 전인 27일 경찰이 핼러윈 경비를 위해 이태원에 200명의 경찰관을 배치한다고 밝힌 보도자료를 거론, 이번 참사가 안전 불감증 및 대비 부족으로 인해 촉발된 '인재'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는 국내 일각의 비판적 시각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태원 상인들과 정부 당국자들이 대규모 군중 집결에 대해 보다 충분한 대비를 했어야 한다는 인터뷰를 소개했다.
한 목격자는 CNN에 "한 경찰관이 소리를 지르고 있는 걸 봤지만 (경찰) 복장을 하고 나온 많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진짜 경찰인지 여부를 분간할 수 없었다"고 당시의 혼란상을 전하기도 했다.
군중 시뮬레이션과 바이오정보학을 연구하는 마틴 에이머스 영국 잉글랜드 노섬브리아대 교수는 WP에 대형 이벤트에는 군중을 관리할 수 있도록 적절한 기획과 훈련된 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에이머스 교수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위험하게 높은 군중 밀집도를 예측·감지·방지하는 적절한 군중 관리 프로세스가 정립되지 않는 한 이러한 일들은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BBC 방송도 이번 행사에 참가인원 제한이 없었던 점에 주목했다. 이 매체는 "안전기준과 군중 통제 조처가 취해졌는지 등으로 관심이 옮겨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이미 축제 현장 안전에 대한 재검토를 촉구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본래의 의미가 퇴색된 채 한국 내 핼러윈 문화가 변질됐다는 취지로 지적하기도 했다.
WSJ은 "서울에서는 핼러윈이 어린이들이 사탕을 받는 날로 널리 기념되지 않는다"며 "최근 몇 년간 20대 안팎의 젊은이와 파티에 가는 이들이 핼러윈을 특유의 복장으로 치장한 채 클럽에 가는 주요 이벤트로 만들어버렸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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