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놈은 된다'…하반기 중소형 공모주 시대
주식시장 거래 급감 속 조단위 뭉칫돈 끌어모은 중소형 공모주
대형 공모주보다 물량 부담 적고 수익률 높을 가능성 커
[이데일리 안혜신 기자] 지난 26~27일 일반청약을 진행한 협동로봇 전문기업 뉴로메카. 레고랜드발 단기자금시장 경색으로 주식시장도 변동성이 심화했지만 무려 1181.8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청약증거금으로는 3조7000억원이 몰려들었다. 상장 후 예상 시가총액이 1311억원에 불과한 중소형 공모주에 말 그대로 조 단위 뭉칫돈이 몰려든 것이다.
3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대형 기업공개(IPO)가 흥행에 실패하고 있는 가운데 오히려 중소형 규모 IPO가 선전하고 있다.
지난달부터 이달까지 두 달 간 수요예측을 진행한 기업 중 청약증거금이 1조원 이상 몰린 기업은 모델솔루션(417970)(5조원), 이노룰스(296640)(1조4000억원), 알피바이오(314140)(2조9000억원), 오에스피(368970)(2조2000억원), 에스비비테크(389500)(4조6000억원) 등이다. 이보다 앞선 지난 8월에는 대성하이텍(129920)에 4조2000억원의 증거금이 몰리기도 했다.
주식시장 거래대금은 줄어들고 있지만 될성부른 공모주에는 여전히 조 단위 자금이 유입되고 있는 것이다. 조 단위 자금이 몰린 공모주 중 가장 덩치가 큰 편인 모델솔루션은 최종 공모가 기준 상장 후 시가총액이 1727억원이었고, 이노룰스 638억원, 알피바이오 1017억원, 에스비비테크 737억원, 오에스피 785억원, 대성하이텍 1195억원 등으로 모두 1000억원 안팎의 규모를 보유한 기업들이다.
최근 들어 특히 중소형 공모주의 상장이 봇물을 이루는 모습이다. 실제 이달 들어서 상장한 기업 수는 20개로 올 들어 가장 많았지만 상장 시가 총액 합계는 약 1조7548억1322만원으로 LG에너지솔루션(373220)이 상장해 7조원이 넘었던 1월을 제외한 2~10월 월별 평균 상장 시가총액 1조4592억3217만원을 소폭 웃도는 수준에 그쳤다.
이는 올 들어 대어급 공모주의 상장이 부진한 것과 비교된다. 올해는 연초부터 유가증권 시장에서 현대엔지니어링, SK쉴더스, 원스토어 등이 줄줄이 상장을 철회하고 나섰고, 최근에는 코스닥 라이온하트스튜디오까지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이후 상장 과정을 철회했다. 뿐만 아니라 심사 승인까지 완료하고 중단한 현대오일뱅크, 심사 단계에서 미승인으로 끝난 교보생명, 청구서는 접수하지 않았지만 신규상장 후보군에 있었던 CJ올리브영, SSG닷컴 등의 상장 계획 연기까지 조 단위 몸값을 자랑하는 기업들의 상장이 LG에너지솔루션을 제외하면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도 중소형 공모주가 상대적으로 선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몸값이 작기에 상대적으로 수급 부담이 덜 하다는 점이 꼽힌다. 상장 직후 물량이 쏟아져나올 수 있는 대형 공모주보다 주가 안정성이 크다는 것이다.
올 들어 LG에너지솔루션을 제외하면 대어급 IPO 성적이 초라하다는 점도 중소형주에 자금이 몰리는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예상 몸값이 3조원에 이르면서 하반기 공모주 시장의 최대어로 거론됐던 더블유씨피(393890)(WCP)는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청약 증거금으로 3915억원을 끌어모으는 데 그치면서 흥행에 참패, 체면을 구겼다.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공모가가 낮아진 점도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몸값을 산정하는 경쟁사들의 주가가 하락하면서 자연스럽게 공모가도 낮아진 것이다.
상장 당일 실적도 대부분 우수했다. 에스비비테크는 상장일에만 공모가 대비 150.4%의 수익을 올렸고, 알피바이오 40.8%, 이노룰스 26.8%, 오에스피 19.6%, 모델솔루션 14.4%의 수익을 기록했다.
중소형주 중에서도 양극화 뚜렷…희비 갈려
규모가 작다고 무조건 IPO에 성공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일반적으로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 예측 경쟁률이 높을수록 청약 성공 가능성도 높은 모습을 보였다. 뉴로메카는 기관 수요예측에서 경쟁률 1652대 1을 기록하면서 공모가 희망 밴드(1만4000원~1만6900원) 상단인 1만6900원에 공모가를 확정했다. 특히 참여한 기관의 90% 이상이 희망 범위 상단을 적어냈다.
일반 청약에 4조원이 넘는 자금이 몰린 에스비비테크 역시 지난달 28~29일 진행한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에서 1644.01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면서 희망 밴드(1만100~1만2400원) 최상단인 1만2400원으로 공모가를 결정했다. 가격 미제시 기관을 제외한 모든 참여 기관투자자들이 공모가 상단 혹은 초과의 가격을 제시했다.
반면 전자재료 소재 전문기업인 제이아이테크는 뉴로메카와 같은 시기에 상장 일정을 진행했지만 정 반대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일반 투자자 대상 청약 경쟁률은 29.6대 1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청약 증거금도 1023억원 들어오는데 그쳤다. 제이아이테크는 지난 20~21일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에서 616대 1이 넘는 경쟁률을 기록했다. 당시 공모가를 희망밴드(1만3000~1만6000원) 최상단인 1만6000원으로 결정했다.
수요예측 경쟁률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수요예측 참여한 기관 중 절반에 가까운 42.54%가 하단 이하의 가격을 제시한 점이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이다.
반도체 종합 분석 전문기업인 큐알티도 지난 24~25일 진행한 일반 청약에서 7.44대 1의 경쟁률을 보이면서 흥행에 참패했다. 청약증거금도 405억7000만원을 모으는데 만족해야했다. 이미 수요예측에서 86.9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면서 공모가를 희망 범위인 5만1400~6만2900원 하단보다도 14% 낮은 4만4000원에 결정했지만 그럼에도 시장의 외면을 받았다.
박세라 대신증권 연구원은 “내년 IPO시장은 특정 섹터 및 종목에 관심 집중이 지속될 것”이라면서 “전반적으로 IPO 시장에서 벨류에이션 부담을 느끼는 반면, 주식 시장 하락이 지속될 시 IPO 종목들의 수요예측과 수익률 양극화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시장 관심 높은 업종 성공 가능성 높아
특색이 있거나 미래에 성장 기대감이 높은 업종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오에스피가 대표적이다. 오에스피는 유기농 반려동물 펫푸드 전문 제조업체다. 오에스피의 경우 수요예측 경쟁률도 높았다. 국내외 총 1634개 기관이 참여해 1582.8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참여 기관 중 99.98%가 공모가 밴드(6300~8400원) 상단인 8400원 이상의 가격을 제시(가격미제시 포함)했다.
지난달 5조원의 자금이 몰린 모델솔루션도 국내 프로토타입(시제품) 업계 최초로 상장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시장의 관심을 받았다. 지난 8월19일과 20일 실시한 수요예측 결과 1725.78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어 같은 달 26일과 27일에 진행한 일반투자자 청약에서도 1514.8대 1이라는 경쟁률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연말 신규상장 기업들 중에서 높은 주가수익률을 기록하는 기업들이 발생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를 활용해 투자에 나설 경우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흥국증권에 따르면 월별 신규상장주 주가수익률 평균을 살펴보면 12월 상장, 11월 상장, 10월 상장 순으로 주가 수익률이 높았다.
최종경 연구원은 “연말 성수기 기업수는 많아지고 공모가는 안정돼 낮은 공모가로 상장하는 기업들을 좋은 투자 기회로 삼는 전략을 제시한다”면서 “코스닥 특례 상장 기업의 경우 이러한 성수기 효과가 좀 더 뚜렷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어 특례 상장 기업들의 연말 상장 역시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안혜신 (ahnhy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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