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특수학교서 일자리·예술사업까지... 밀알재단 30년은 기적의 역사 [나눔과 기부]
1993년 직원 10명으로 시작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 추진 땐 주민 반대에 세차례 사업 반려
중고물품·상품 등 기증받아 판매
‘굿윌스토어’ 장애인 300명 고용중
2035년 1200명으로 확대 계획
음악·미술로 발달장애인 인식개선
■한 알의 밀알이 기적이 되기까지
정형석 밀알복지재단 상임대표 겸 밀알나눔재단 대표는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말미에 밀알의 역사는 '기적의 역사'라고 강조했다. 서두에 이런 말을 들었다면 으레 과장으로 치부하고 넘겼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년에 서른살 생일을 맞는 밀알복지재단은 지난 1993년 7월 15일 설립됐다. 그렇지만 재단의 비공식 역사는 현재 총신대 총장인 이재서 박사가 1979년 설립한 장애인 선교기관인 '한국밀알선교단'에서 출발한다.
한국밀알선교단(이사장 손봉호, 단장 정형석)은 1991년 12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장애인을 위한 사회복지법인 설립을 위해 10억원의 모금 운동을 진행했지만 1억원도 모으지 못하고 실패했다. 하지만 1년 뒤인 1993년 두 명의 독지가가 나타나며 기적처럼 재단의 뿌리가 만들어졌다.
"1993년 봄 국제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민병완 목사였다. 민 목사는 퇴직금과 부모님의 유산으로 받은 서울역 앞 5층 빌딩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감정가는 7억원.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서울에 있는 민 목사의 어머니를 찾아 뵈었다. 재산이 많은가보다 했지만 그 건물이 민 목사의 전 재산이었다."
그 이후에 또 다른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경기 안성에서 피부과를 운영하는 윤영곤 의사였다. 그는 밀알 소식지를 보고 대전에 있는 땅 1650㎡(약 500평)를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정 상임대표는 "의사를 그만두면 병원 빌딩도 기부하겠다고 했는데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윤 의사는 러시아 의료 선교를 앞두고 병원 빌딩을 정말로 기부하고, 그 전에 재산도 기부했다"며 두 사람이 짠 것처럼 세 가지 동일한 조건을 달았다고 회고했다. △첫째 외부에 이름을 알리지 말 것 △둘째 기부는 자신의 기쁨이라는 것 △셋째 기부에 아무 조건이 없다는 것이었다.
■지역의 보배가 된 밀알학교의 기적
정 상임대표는 1993년 약 10명의 직원과 함께 밀알복지재단을 설립했다. 이후 첫 사업으로 당시 남서울교회가 추진 중인 장애인 특수학교 건축 사업에 관여하게 된다. 처음에는 교회에서 진행하는 특수학교 건립에 자문 역할로 요청 받았으나 재단과 교회간의 협의를 통해 밀알복지재단이 특수학교 설립을 주도해 추진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교회 후원금 32억원으로 현재 밀알학교가 있는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 부지 약 1만560㎡(약 3200평)를 매입했다. 교육청에서 학교 설립 허가를 받았지만 강남구청에서는 건축허가를 여러차례 반려했다. 세 차례 반려 후 이유를 알아보니 담당공무원이 "주민들의 반대가 극심하니 동의를 구해오라"고 채근했다.
사업이 지지부진하던 차에 어느날 갑자기 김앤장의 한 변호사가 찾아왔다. 미국 유학 후 복직 전 두 달의 휴가기간 중에 우연히 소식을 접하고 법률 봉사를 위해 왔다는 것이다. 김주영 변호사(현재 한누리 대표변호사)는 '공사방해 중지 가처분'을 법원에 신청하자고 제안했다.
■밀알의 기둥 '굿윌 스토어'
밀알복지재단의 미션은 장애인 일자리와 환경보호의 가치를 창출해내는 사회적 경제사업을 확장하는 것이다. 그중 '굿윌스토어'는 시민들에게 쓰지 않는 중고물품을 기증받거나, 기업으로부터 새 상품을 기증받아 판매한 수익으로 중증 장애인을 고용하는 국내 최대 재활용품 매장으로 성장했다.
장애인 직원들은 물품 분류 및 관리, 손님 응대 등을 통해 최저임금 이상의 월급을 받고 있다. 재단은 현재 총 16개의 굿윌스토어를 운영 중이며 300여명의 장애인을 고용하고 있다. 오는 2035년까지 100개 사업장을 운영해 장애인 1200명, 취약계층 100명을 고용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
정 상임대표는 "발달장애인에게는 단순 반복 작업이 쉽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며 "굿윌스토어에서 일하는 당사자는 자존감 회복, 사회성 발달이 된다. 심지어 코로나 기간 문을 닫자 부모와 당사자들이 빨리 다시 일하고 싶다고 여러차례 연락이 왔을 정도"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굿윌스토어의 모태가 된 미국의 경우 출범 120년이 지난 현재 3300개 점포에서 연간 매출이 10조원가량 발생하고 있다. 현재는 장애인 고용을 넘어 일반 직원을 고용하는 대형 기업이 된 셈이다.
■개인 후원자·기업 손길 이어져
재단은 많은 기업들이 재고 처리 문제를 겪고 있는 점에 착안해 기업사회공헌 전문 나눔스토어 '기빙플러스'도 운영 중이다. 유명 브랜드의 의류, 신발, 속옷, 생활용품 등을 최대 90%까지 할인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올해 양재역점, 강남역점, 노원역점, 왕십리역점을 신규 오픈했으며 5년 내 100개 지점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정 상임대표는 "오뚜기, 이랜드, 한화, 현대엔지니어링, CJ제일제당, SK, 한국수자원공사, 인천공항공사, 엠에이치앤코 등 다양한 기업과 단체가 후원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밀알복지재단에 1억원 이상을 약정한 컴패니언 클럽 멤버에는 장민준 올레인터내셔날 패션회사 대표 등 총 9명이 이름을 올렸다. 또 유산 기부를 약속한 사람도 6명에 달한다.
재단은 올해 주요 사업으로 국내 최초의 시청각장애인지원센터인 '헬렌켈러센터' 확장과 직장 내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 사업인 '브릿지온'을 추진 중이다.
헬렌켈러센터는 시각과 청각 모두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을 지원하기 위한 센터다. 지난 2019년 4월 국내 1호를 시작으로 현재는 뜻있는 국회의원들과 함께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시청각장애인지원법을 추진하고 있다.
브릿지온은 음악과 미술을 통해 장애인 인식 개선 활동을 진행하는 발달장애인 예술단이다. 클래식 연주자로 구성된 '브릿지온 앙상블'과 미술 작가로 이뤄진 '브릿지온 아르떼'가 활동하고 있다. 장애인 인식 개선을 위해 기업은 물론 다양한 단체들에 찾아가 전시, 연주 활동을 하고 있다.
정 상임대표는 "밀알복지재단의 서비스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생애 주기별 장애 통합 자립복지 글로컬(글로벌+로컬)'이라 할 수 있다"며 "지난 2005년부터 시작한 국외 사업도 현재 11개국, 13개 사업장에서 진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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