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어른들의 잘못, 젊은이들의 희생 [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읽기]
29일 밤 이태원 좁은 내리막 골목에 몰려든 인파가 넘어지면서 150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번에도 희생자 대부분은 20~30대 젊은이들이다.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숨진 젊은이들 앞에 숙연해진다. 국민소득 3만 달러의 선진국에서 왜 이런 후진국형 참사가 되풀이되는 것일까.
이번 사고도 '예견된 참사'였다. 전날인 28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좁은 골목길에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일부 쓰러져 부상을 입은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근원적으로는 이태원의 좁은 내리막길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수십년 째 넓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미 상업화된 도심에서 도로 확장은 그리 간단치 않다. 서울시와 용산구가 인근 건물에 건폐율과 용적률 혜택을 주고 도로를 확장하거나 주변 토지를 매입하거나 해야 한다.
하지만 간단하지 않다. 특혜 논란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공무원들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 무사안일이다. 그러다보니 좁은 골목길을 그대로 둔채 영업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10만명이 훌쩍 넘는 인파가 한꺼번에 몰려들었다는 점은 이렇다 할 놀이문화도, 놀이공간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많은 청소년들은 학교와 학원만을 반복해서 오간다.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더라도 마찬가지다. 이런 젊은이들에게 핼로윈은 그럴 듯한 탈출구 역할을 해왔다. '이태원'이라는 상업자본의 골목길은 '핼로윈 축제'를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어 귀신과 마녀 분장을 한 전국의 젊은이들을 불러 모았다.
안타까운 것은 참사가 발생했는데도 인근 클럽에서는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계속 흘러나왔고, 거리에서는 춤을 추며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도 많았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소방관과 의료진 등의 진입이 방해받기도 했다.
우리는 그동안 한국 문화의 세계화를 환호해 왔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지금 우리 학교는' '수리남' 등 한국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소비되고 있음을 자랑삼곤 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 우리 문화가 서구 문화와 유사해졌다는 사실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K-콘텐츠 인기는 한국적인 내용이 세계 속에 퍼졌기 때문만이 아니다. 서양식 습성이 우리 문화콘텐츠에 재현되어 서구인들의 취향을 저격했기 때문이다. '오징어게임'에서 툭하면 총기를 사용해서 탈락자들을 죽이는 장면, '지금 우리 학교는'에 나오는 좀비, 살아있는 시체는 할리우드 영화의 산물이다.
핼로윈의 확산은 우리 문화가 이미 서구화되었음을 보여준다. 미디어는 매년 젊은이들의 새로운 트렌드로 핼로윈을 소개해왔다. 그 사이 피 묻은 옷을 입은 유령과 마녀 복장 차림은 10월 말의 풍속으로 자리 잡았다. 많은 유치원과 키즈카페, 캠핑장 등에서도 핼러윈 파티를 열고 있다. 시골의 꼬마 아이들까지 저녁 무렵 핼로윈 복장을 하고 뛰어다니는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이번 이태원 비극은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고민하게 만든다. 적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태풍과 홍수, 화재 등 재난에 대한 대비와 구호, 다양한 사회복지 정책은 지극히 당연하다. 국민이 안전하게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게 하는 것 역시 행정당국에게 주어지는 책무다. 아쉽게도 서울시와 경찰은 안이했다. 경찰은 이태원의 핼로윈 축제에 마약, 성범죄, 절도 등에 대한 단속과 예방에만 그쳤다. 최소한의 형식적 활동이 아니라 더 적극적인 정부의 역할이 필요했다.
젊은이들의 무고한 희생을 놓고 벌써부터 책임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사고 원인을 면밀히 검토하고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비슷한 사건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참사가 발생하면 희생양부터 찾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 사회는 건강한데, 일부의 악덕 상인들, 일부 건물주의 안전의식이 문제를 일으켰다는 손쉬운 핑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지난 50년간 압축 경제성장을 거듭했다. 웃자란 식물처럼 뿌리와 줄기의 성장보다는 풍성한 결실만을 추구해왔다. 그러다보니 경제규모에 비해 도심 인프라와 사회 안전망은 여전히 취약하고, 시민의식 역시 부족하다. "빨리 빨리"를 외치고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임기응변식 대응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인재(人災) 역시 웃자란 성장에 대한 대가일지도 모른다. 얼마나 더 희생을 치러야 명실상부한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을까. 앞으로는 어른들의 잘못으로 젊은이들이 희생당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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