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 칼럼] 김문수와 신영복, 그리고 문재인

2022. 10. 30.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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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철 총괄부국장 겸 금융부동산부장

"문재인 전 대통령이 신영복 선생을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라고 한다면 확실하게 김일성주의자다."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이 지난 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 발언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김 위원장은 다음날 한 인터뷰에서 "신영복 사상이라는 것은 김일성 사상이다. (이로 인해) 통일혁명당의 세 명이 사형됐고, 신영복 선생은 무기징역을 받고 20년 20일을 감옥에서 살았는데, (이후) 그 분은 한 번도 본인이 전향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했다.

신영복(존칭 생략)은 대중에게 '사상가이자 인문주의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서(글씨)'와 '화(그림)'에 능하고, 동양철학에 일가견이 있는 신영복의 사상이 어떻길래 학생 운동과 노동 운동으로 이름을 날린 김 위원장은 '신영복 사상을 믿는다면' 문 전 대통령이 김일성주의자라고 했을까?

신영복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계기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부터다. 1988년 8월 나온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나온 수필문학에서 내가 읽어본 한 최고(소설가 이호철)"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이어'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강의 : 나의 동양 고전 독법' 등을 잇달아 내놓으며 '시대의 압제를 이겨낸 지식인'이 됐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나 '강의' 등을 읽을때만 해도 신영복을 논어·주역과 노·장자, 묵가 등을 넘나드는 사상가쯤으로 알았다. 그런데 2015년 4월 출간된 '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를 보고서야 그가 일생에 걸쳐 사회주의 사상을 증폭시키고, 학술로 대중을 의식화해온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성공회대 강의 내용을 풀어 쓴 이 책은 계급철학을 동양의 '여민(與民) 사상'으로 둔갑시킨 까닭에 마르크스나 동양 철학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속기 쉽상이다.

예를 들어 감옥에 갇힌 비전향 공산주의자들을 "초나라 애국 시인인 '굴원'만큼이나 비타협적인 분들"로 미화한다든지, "마오쩌둥의 해방구 건설은 새로운 사유를 요구한다"거나,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를 '공산주의의 하방연대(下方連帶·민중과의 연대)'와 연결짓는 식이다. 그는 "기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실업자가 됐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노동만이 가치를 생산한다"고 하고, 9.11 테러에 대해선 "미국 사람들도 이슬람 국가들에 대한 포격과 파괴를 게임 즐기듯 보지 않았는가"라고 궤변을 늘어놓는다.

'백미'는 빨치산 얘기다. 1960년경 토벌대에 쫓겨 동굴로 숨은 지리산 최후의 빨치산이 옆에서 죽은 또다른 빨치산의 배낭속에서 소련 공산주의자 부하린이 쓴 '공산주의 ABC'란 책을 발견했다는 것을 감동적인 어투로 들려준다. 소설가 조정래가 '태맥산맥'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유 대한민국 수립의 적이었던 남로당 공산주의자를 '영웅'으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신영복의 진면목은 통일혁명당(통혁당) 사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영복이 참여한 통혁당은 마르크스·레닌과 김일성 주의를 기초로, 남한에 사회주의 사회 건설을 목표로 북한 조선노동당의 지령하에 움직이는 비밀 혁명조직이었다. 통혁당 주범 중 한 사람인 김질락의 옥중수기에 따르면 1964년 3월 김질락은 신영복(당시 육사 교관)을 만나 4.19 때 선언문 같은 것을 쓰고도 아무 일 없었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신영복은 "외견상으로 나는 순수한 자유주의자다. 학생들에게 강의할 땐 쉬운 말로 계급의식을 주입시킨다. 예컨대 원시사회에는 남이 지어 놓은 농사를 빼앗는 게 훨씬 수월했기 때문에 부족 간에 싸움이 생기고, 이긴 자는 지배자가 되고 진 자는 노예가 됐다. 이런 식으로 인류 역사가 계급투쟁사임을 인식시키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신영복은 전향서를 쓴 뒤 1988년에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출소 이후 신영복은 강연 등을 통해 "나는 전혀 전향하지 않았다"라며 자신의 한결같은 이념을 강조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1월 신영복 1주기 추도식에 당 대표 자격으로 참석해 "신영복 선생은 더불어민주당의 '더불어'라는 당명을 주고 가셨다"라고 했으며, "대선 당시 '사람이 먼저다'를 핵심 선거 슬로건으로 했는데 그 문구도 신영복의 글에서 따온 것"이라고 했다. 북한의 김영남, 김여정이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는 신영복의 서화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고, 각 비서관실엔 신영복이 쓴 '춘풍추상(春風秋霜)' 글씨 액자를 걸도록 했다.

공산주의에선 인간은 '인민'과 '적인(敵人)' 두 종류 뿐이다. 적인은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역사의 정도(正道)에서 이탈한 세력이다. 마오쩌둥의 말처럼 "공산 혁명의 성공을 위해서는 '절대 다수의 인민'이 '극소수의 적대 세력'을 제거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오쩌둥은 국공 내전 당시 토지개혁 과정에서 300만~500만명의 부농 등을 인민의 적으로 몰아 학살하고, 대기근(1958~1962) 시기 3600만~4500만명을 아사시키면서도 눈 한번 깜짝 안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공산주의자인가? 본인이 가부를 말한 적이 없기 때문에 판단하기 어렵다. 그런데 문 전 대통령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 감사원이 "문재인 정부가 월북몰이를 했다"고 결론을 내려 온 나라가 시끄러운데도 이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이 트위터를 통해 '빨치산'을 주제로 한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는 책을 추천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그에게는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보다 '빨치산'이 더 귀중한 것일까? 홍준표 대구시장이 '2018년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당시 문 전 대통령이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에게 건넨 USB에 무엇이 담겨 있었을까"라는 의혹을 제기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에 공감하면 진보든 좌파든 협치하고 타협할 수 있지만, 북한을 따르는 주사파는 진보도 좌파도 아니다"라며 "적대적 반국가 세력과는 협치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전향'은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가장 비인간적 단어로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공산주의 사상을 가졌던 사람이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일원이 되려면 당연히 전향해야 한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사회주의에서 인간은 공산혁명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고, '인권'이란 언제든 버려도 좋은 하찮은 것이기 때문이다. 부국장 겸 금융부동산부장 강현철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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