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우의 바람] 적벽대전

한겨레 2022. 10. 3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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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에 등장하는 무수한 전투 장면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단연 적벽대전이다.

사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를 읽어본 적은 없다.

아마도 삼국지에 대한 무수한 드라마와 영화 때문일 것이다.

물론 실제 병력은 이보다 적었다고 전해지지만, 조조군이 압도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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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우의 바람]

우위썬(오우삼) 감독의 영화 <적벽대전2> 스틸컷.

손석우 |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삼국지에 등장하는 무수한 전투 장면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단연 적벽대전이다. 사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읽어본 적은 없다. 베스트셀러에 오른 평역서를 읽은 것도 아니다. 단지 무협지에 빠져 있던 시절, 저자가 누구인지 기억할 수 없는 문고본 몇권 읽은 것이 전부다. 그런데도 삼국지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면면은 너무나 익숙하다. 아마도 삼국지에 대한 무수한 드라마와 영화 때문일 것이다.

<삼국지연의>는 외국에도 잘 소개돼 있다. 영문 제목은 (로맨스 오브 더 스리 킹덤스)이다. 삼국지 책을 어느 정도라도 읽어봤다면 혹은 삼국지 영화를 한편이라도 집중해서 감상했다면, 왜 로맨스라 부르는지 이해할 수 있다. 남녀 사이의 사랑 때문이 아니다. 사람들 사이의 로맨스, 그것이 곧 역사로 기록되기 때문이다.

서기 208년, 한겨울 동지 즈음이었다. 아마도 1800년 전 이맘때였을 것이다. 얼마 전 가을의 마지막 절기인 상강이 지났으니. 유비-손권 연합군은 조조의 대군을 장강에서 맞닥뜨린다. 그러나 무려 80만명에 이르는 조조의 군대를 상대하기에 연합군 10만 병력은 너무나 초라했다. 물론 실제 병력은 이보다 적었다고 전해지지만, 조조군이 압도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풍전등화에 놓인 유비-손권 연합군. 그들을 도운 것은 바람이었다. 남동풍. 장강을 가득 채운 조조의 수군 앞에서 제갈량은 주유를 설득한다. 동짓날부터 남동풍이 불 것이니 화공으로 제압하자고. 그리고 그의 말대로 며칠간 불던 서풍은 거짓말처럼 남동풍으로 바뀌고, 조조의 수군은 예상치 못한 화공(火攻)으로 전멸하고 만다.

제갈량은 어떻게 바람을 예측했을까? 우위썬(오우삼) 감독의 영화 <적벽대전2>에는 제갈량이 구름을 살피는 대목이 나온다. 거기에 비밀이 있다. 겨울철 동아시아 기후는 삼한사온으로 정의된다. 삼일은 춥고 사일은 따뜻하다. 이는 고기압과 저기압이 이동하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고기압이 다가오면 전면에 북풍이 불면서 기온이 내려간다. 고기압이 지나간 자리, 이번엔 저기압이 다가온다. 저기압은 전면에 온난전선을, 후면에 한랭전선을 동반한다. 전선을 따라 구름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저기압 주변, 특히 온난전선 주변은 기온이 다소 높은 경향이 있다. 눈과 비가 내리는 때를 제외하면. 흥미롭게도 고기압과 저기압이 모두 지나가는데 보통 일주일이 걸린다. 삼한사온이 일주일 만에 발생하는 이유다.

저기압 전면에는 종종 동풍 혹은 남동풍이 분다. 이 바람이 저기압의 남쪽에서 불어오는 남서풍을 만나면 온난전선이 만들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온난전선을 따라 발생하는 구름은 넓게 퍼진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온난전선이 통과하기 전 넓게 펼쳐진 구름을 먼저 보게 된다. 바로 이 구름을 보고 제갈량은 남동풍을 예측했다. 제갈량은 신통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날씨를 잘 관찰했던 것이다.

<삼국지연의>는 역사서가 아니라 소설이다. 물론 사실에 기반했지만 어느 대목이 사실인지 어느 대목이 각색인지 분명하지 않다. 적벽대전도 마찬가지다. 일부 사학자들은 적벽대전은 실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당대 사서 중 극히 일부에만 언급돼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조조가 스스로 배를 태웠을 가능성을 언급한다. 조조군은 유비를 장기간 뒤쫓았다. 그로 인해 병사들은 지쳐 있었고 심지어 풍토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보급마저 원활하지 않았다. 도무지 전투에 나설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후퇴를 결정한 조조는 유비와 손권이 자신의 배들을 이용할 것을 걱정해 모조리 불태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남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남동풍. 사실 여부를 떠나 삼국지를 기억하게 하는 바람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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