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가서 마저 마실까?"…의료진이 본 이태원 끔찍한 현장

지난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 핼러윈을 맞이해 인파가 몰리면서 대규모 인명사고가 발생했다. 30일 오전 출동한 119 구조대원들이 희생자들을 분류하고 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발생한 압사현장에서 역대 최악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사고 현장을 목격한 의료진들이 끔찍한 기억을 공유했다.

30일 직장인들의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는 이태원 사고 현장에서 심정지 상태의 피해자들에게 심폐소생술(CPR)을 했다는 한 의료진이 '이태원 현장에서 끔찍했던 것'이란 제목의 글을 올렸다.

해당 글에서 글쓴이는 "어젯밤 이태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가 사고 소식을 듣고 CPR은 할 줄 알니까 도움이 될까 싶어 이태원으로 갔다"며 "평상시에도 무딘 편이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막상 가니 끔찍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이어 "이미 바닥에 눕혀진 사람들은 얼굴이 질리다 못해 청색증이 와 있는 수준이었다"며 "응급구조사가 눕힌 사람 한 명에게 CPR을 하는데 코에서는 코피가 나고 입에서도 피가 나오고 내가 이 사람을 살릴 수 없겠구나 싶었다"고 했다.

아무리 CPR을 해도 맥박이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을 보며 무능한 의사가 된 듯한 기분을 호소한 그는 "그 와중에 가장 끔찍했던 것은 가지 않고 구경하는 구경꾼들"이라고 지적했다.

글쓴이는 "앰뷸런스에 환자가 실려 떠나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CPR을 하려고 서 있는 앰블런스 뒤에서 물 잠시 마시는데 지나가는 20대가 '아씨 홍대가서 마저 마실까?'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정말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몸서리를 쳤다"고 했다. 그는 "타인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다음 술자리를 찾던 그들을 평생 못잊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태원 현장에서 CPR을 한 또 다른 의료진이라고 밝힌 이 역시 "여태까지 꽤 많은 죽음을 봤다고 생각했는데 어제는 좀 충격이 크다"며 "가망이 없는데도 옆에서 친구좀 살려달라고 울고 불고 난리여서 그만 둘수가 없었다. 자꾸 떠오른다" 며 외상 후 스트레스(PTSD)를 호소하기도 했다.

의료인 출신 일부 정치인들 역시 이태원 사고와 관련 병원 등을 찾아 의료지원과 응급구조 활동에 나선 가운데 참담함을 감추지 못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30일 자신의 SNS를 통해 "새벽에 순천향병원에 갔다. 소식을 듣자마자 의사로서 본능적으로 현장에 갔다"고 밝혔다.

안 의원은 "이런 사고의 경우 사고가 나자마자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의료적으로는 돕기가 힘들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무력감을 절감했다"며 "지금 이 순간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 지 모르겠다. 참담하고 먹먹한 마음을 누를 길이 없다"고 했다.

의사 출신이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같은날 새벽 이태원 사고 현장에서 재난 의료지원팀(DMAT) 소속으로 응급구조 활동을 수행했다. 신 의원은 "현장에는 부상자, 경찰, 소방대원, 공무원 등이 투입되어 수습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었지만, 대형 사고가 발생한 그 장소에서 여전히 핼러윈을 즐기는 젊은 인파들이 뒤섞여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고 상황을 전하기도 했다.

[방영덕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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