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의 전쟁이 되어선 안 된다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
지난 27일 모스크바에 개최된 국제토론클럽 <발다이> 연례 회의에서 푸틴 대통령이 한국 측 참석자(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의 북핵 관련 질문에 답변하면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탄약을 제공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그것은 양국 관계를 파멸시킬 것이다’라고 하여 국내에서 반향이 일고 있다. 5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였을 때부터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제공할지도 모른다는 예상이 있었는데 대통령실 관계자는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최근 우크라이나의 이웃이며 러시아에 대해 매우 적대적인 폴란드에 한국산 무기 판매가 알려지면서 그러한 우려의 목소리가 다시 나오고 있다. 일부 매체에서는 푸틴 대통령이 한국에 대해 ‘으름장’을 놓았다고 평가하였는데 푸틴 대통령의 발언 맥락과 한국 내 반응에 대해 평가해 보고자 한다.
푸틴 대통령의 생각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우선 그의 발언을 우리 말로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한국과 매우 좋은 관계이다. 우리는 항상 한국뿐만 아니라 북한과도 대화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현재 한국이 (폴란드를 통해서)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탄약을 제공하기로 결정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이것은 양국 관계를 파멸시킬 것이다. 우리가 북한과 이와 같은 방향으로 협력을 재개한다면 한국은 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한국은 이를 기뻐할 것인가?” 푸틴은 이제까지는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고 하면서 우려를 표명하고 처지를 바꿔 생각해 보라고 촉구한 것이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출근길 기자들의 질문에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대해 늘 인도적, 평화적인 지원을 국제사회와 연대해서 해왔고 살상 무기는 공급한 사실이 없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우리 주권의 문제”라고 답변하였다. 그런데 앞으로 살상 무기를 지원할 계획이 없으면 “그런 사실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고 답하면 충분한데 ‘주권’ 이야기는 무슨 말을 하고자 한 것인가? 푸틴 대통령의 주장은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이제까지는 지원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뜻인가?
푸틴 대통령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였는데 윤 대통령의 답변은 단지 과거만 이야기하였다. 외교부도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재확인하였는데 뜬금없이 “우리로서는 러시아가 북한 무기를 구매할 가능성이 있다는 언론 보도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러시아가 북한에서 무기를 구입하는 것이 한러 관계에 어떤 중대한 의미를 가질까? 문제가 되는 경우는 러시아가 북한에 무기를 공급하는 경우 아닌가? 대통령의 답변과 외교부의 설명에 붙은 사족은 오해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본다. 더욱 이해 안 되는 것은 어느 매체도 이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푸틴 대통령은 모두에서 “우리는 한국과 매우 좋은 관계”라고 하였는데 이례적이지 않은가? 한국은 서방의 대러 경제제재에 동참하였고 이에 따라 러시아는 보복 제재를 하는 대상인 비우호국 명단에 한국을 올렸다. 그러한 한국과의 관계가 매우 좋다고 한 것은 무슨 의미인가? 우선 2014년 발효된 비자면제협정이 유지되고 있어 현재 양국 국민들이 자유롭게 왕래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 발발 이후에도 양국 간 교역은 한국 쪽에서 제한하고 있는 품목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 러시아가 비우호국에 대해 수출을 금지하고 있는 품목들도 한국에 대해서는 해제하였거나 건별로 허가해 주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 반도체 산업에 필수적인 품목인 제온, 크립톤 등 특수가스가 제한 품목에서 해제되었고 레이더 등 무선통신 장비의 부품은 건별로 허가해 주고 있다. 현재 우리 기업들이 제재 때문에 러시아로 직수출하지 못하고 있는 휴대전화 등 전자제품의 경우 러시아 측은 제3국을 통해 우회 수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그 결과 올해 들어 대러 수출 규모가 줄어들었으나 대신에 카자흐스탄 같은 러시아 이웃 국가들에 대한 수출이 급증하였다. 또한, 지난 8월에는 러시아 국영 로사톰(Росатом)의 자회사가 원청으로 수주한 이집트 엘다바 원전 건설 공사와 관련하여 일부 공사에 대해 한국의 한수원에 하청계약을 통해서 3조 원 규모의 일감을 주었다. 과연 그 하도급 공사는 한국만이 할 수 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준 것일까? 러시아가 서방의 대러 제재에 동참하고 있는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긴 안목에서 한국과의 관계는 원만하게 유지되길 바라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 아닌가?
이와 같은 러시아의 배려에 한국은 러시아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우리는 미국 등 서방의 경제제재에 동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난 5월 마드리드 나토정상회의에 참석함으로써 반러시아 전선에 명시적으로 합류하였다. 사실상 현재 양국 정부 간 협의 채널은 거의 모두 단절된 상태이다. 양국 간 투자서비스 분야 FTA 협상은 언제 재개될지 알 수 없다. 러시아가 극동지역 개발을 위한 투자 유치를 위해 매년 9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하는 동방경제포럼이 올해도 열렸는데, 60여 개국에서 정부 인사와 기업인 등 7천여 명이 참석하여 우크라이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협력하고자 하는 나라와 기업이 여전히 많이 있음이 확인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과거 대통령이 참석한 적도 있고 올해도 러시아와 이미 비즈니스를 하고 있거나 러시아에 관심 있는 기업인들 상당수가 참석하였으나 정부에서는 현지 공관에서 참석하였을 뿐이며 국내 언론은 대부분 이번 포럼에 대해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러시아 극동 지역 개발에의 참여는 중장기적으로 우리에게는 비단 경제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전략적인 중요성도 갖는 문제인데 그렇게 무관심해도 괜찮은 것인가? 이 지역 개발과 관련하여 러시아는 중국의 과도한 진출을 견제하기 위해 그간 한국의 참여를 상당히 기대하였으나 이제는 그런 기대를 접고 한국의 대안으로 인도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9월 하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남부 점령지를 병합한 뒤 10월 중순 유엔 긴급특별총회에서 있었던 러시아의 조치를 규탄하는 결의 표결에 한국이 찬성한 것까지는 이해되나 총회에서 굳이 한국 대사가 러시아에 대한 비난 발언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외교부 대변인이 이번 러시아의 병합 조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정부 입장을 밝혔으면 된 것 아닌가? 한마디로 현 정부의 한러 관계를 유지하고 관리하겠다는 말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에도 여전히 호의를 갖고 한국을 대하고 있다고 보이는데 러시아가 한국에 대해 무슨 해코지를 하였다고 한국은 러시아를 대하는 태도가 그런가? 푸틴 대통령의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기로 결정하였다’라는 말이 전혀 근거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그가 아무런 정보 보고 없이 언론에서 떠도는 이야기만 갖고 그런 말을 했을까? 물론 한국은 폴란드에 무기를 수출할 뿐이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변할 수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방산 수출 계약은 최종사용자 증명서를 받은 후에 체결하고, 구매자가 제3자에게 재판매, 공여 또는 대여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판매자가 사전 승인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또한, 구매자가 이를 어겼을 경우 판매자는 구매자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조항이 들어가기도 한다. 즉, 한국이 폴란드에 무기를 팔면서 제3자 이전 금지 조항을 넣지 않으면 무기가 우크라이나로 갈 수 있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미국의 입김이 작용할 가능성을 상정할 수 있다.
또한, 체코 프라하 소재 인터넷신문 이드네스(Idnes)는 9월 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한국이 신궁 휴대용 단거리 지대공 미사일, 포탄 등 무기를 체코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공급할 예정이며 총 공급액은 무려 30억 불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체코 방산업체는 헬리콥터 같은 저공비행 항공기 공격용 차이론(Chiron, 원명은 신궁) 지대공 미사일과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공급할 목적으로 구매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신문은 나아가 “군사 물자 구매 비용은 미국이 부담한다"라고 보도하였다. 자국 매체의 이러한 보도에 대해 체르노코바 체코 국방부 장관은 "언론에서 나오는 추측성 보도에 대해 코멘트하지 않겠다. 전반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체코의 지원이 계속되고 있는데 보안상 우크라이나에 보낼 군사 물자를 자세히 공개하지는 않겠다는 정부 입장을 이미 수차 밝혔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직접 공급하지는 않지만, 한국산 무기를 수입한 나라가 그 무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는 불문에 부친다는 방침을 정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물론 한국산 무기가 우크라이나 전장에 투입된 것이 확인되면 결국 진실은 드러날 것이다. 그전까지는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러시아 측의 우려는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푸틴 대통령의 발언은 한국과의 관계 유지를 희망하는데 관계가 한국 측의 신중하지 못한 조치로 파국으로 내몰릴 가능성을 제기하고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이제까지는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해줄 뿐이고 미래의 일은 알 수 없다는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한국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놓고 무슨 큰 이해관계가 있는가? 아니면 미국과의 포괄적인 글로벌 가치동맹을 추구한다고 선언했으니 그렇게 행동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인가?
한국 사회에서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가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에 대해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국제사회는 결코 선과 악의 대결장이 아니며 국익이 충돌할 뿐이다. 아무리 우크라이나를 동정하는 마음이 넘친다고 해도 우크라이나 사태는 어디까지나 그들의 전쟁인데 이러다 잘못하면 우리의 전쟁이 되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일부 매체들이 이번 푸틴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으름장’ ‘협박’ 등의 표현을 쓰고 있는데 한마디로 약소국 콤플렉스를 드러내는 반응이다. 사실이 아니면 아니라고 말하고 ‘괜한 걱정하지 말라’ 하면 될 걸 가지고 왜 과민반응을 보이는가? 제 발이 저려서 그런 것인가?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한국은 냉철한 손익계산을 하여 임해야 한다. 한러 관계는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미국의 정책에 맹목적으로 동조하는 것이라면 한심한 정책이고 손익계산을 한다면 미국에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할 것이다. 마침 한국의 한수원이 폴란드 원전 수주 경쟁에서 미국에 밀렸다는 소식이 들린다.
개인 간 관계와 마찬가지로 국가 간 관계는 한번 틀어지면 회복되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2016년 한국이 사드를 배치하기로 한 데 대해 중국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데 한국이 자기 영토에 안보를 위해 방어용 무기를 배치하는 것은 주권적 행위인 바 중국이 이를 적대행위로 간주하고 시비를 거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에 반해 한국이 어떤 방식으로든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제공하는 것은 러시아에 대한 명백한 적대행위에 해당한다. 11월 중순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 푸틴 대통령도 참석할 가능성이 있다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진정으로 한러 관계를 유지하고 관리할 의지가 있다면 이번 기회에 상견례를 겸하여 만남을 추진하길 기대해 본다.
[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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