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칼럼] ‘경제안보동맹’이 흔드는 한국의 이익
문정인 | 세종연구소 이사장
윤석열 정부의 외교정책 핵심은 한-미 동맹의 강화다. 확장억지의 내실화,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횟수와 강도 증가,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수시 배치를 중심으로 한 군사동맹, 공급망의 안정적 확보와 첨단 과학기술 분야의 협력을 기조로 하는 경제안보동맹, 자유, 인권, 민주주의의 확산을 위한 가치동맹 등이 새로운 한-미 동맹의 주된 축을 구성하고 있다. 군사동맹과 가치동맹은 지난 보수정부에서도 제기된 바 있지만, 경제안보동맹은 다분히 새로운 개념이다. 그러나 이 분야에서 적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정부는 한-미 경제안보동맹 강화에 공들여왔다.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선도적으로 참여했고, ‘칩4’를 포함한 반도체 부문에서의 협력도 본격화하고 있다. 공급망 확보뿐 아니라 첨단과학과 방위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미국과의 경제안보 협력을 구체화하고 있다.
민간 부문의 협력은 더욱 두드러진다. 5월 말 방한한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의 세일즈 외교와 한-미 경제안보동맹을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의 독려에 힘입어 7월 삼성전자는 향후 20년간 250조원을 들여 미국 텍사스주에 11개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현대자동차도 조지아주에 6조3천억원 규모 전기차 및 전기배터리 공장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최태원 에스케이(SK) 회장은 7월26일 바이든 대통령과 한 영상대담에서 29조원 규모 반도체, 바이오, 그린에너지 부문 신규 투자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엘지(LG)그룹도 혼다와 합작으로 오하이오주에 신규 배터리 공장 설립 투자를 결정했다.
한국 정부와 기업들의 이런 행보에 비판이 없지 않다. 알맹이 있는 자본과 기술이 미국으로 다 빠져나가고 한국의 첨단산업은 공동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염려에도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미국에 사실상 ‘올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후 전개된 상황은 우려스럽기만 하다.
당장 북미 이외 지역에서 생산된 전기차와 중국 등 우려 국가에서 공급된 배터리나 핵심광물을 사용한 전기차를 소비자가 구매할 경우 세액 공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인해 현대자동차는 큰 타격을 입게 됐다. 반도체 분야에서 미국의 수출입 규제 등 대중국 견제 또한 한국 기업에 예기치 않은 부수 피해를 안기고 있다. 전체 수출의 60%, 소재 수입의 60%를 중국과 홍콩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 반도체 업계로서는 미국의 이런 조처가 만만찮은 충격일 수밖에 없다. 미국은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에 ‘사안별 허가’라는 출구를 열어놓고 있지만,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더불어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은 한국 경제의 기반을 흔들고 있고, 환율 안정을 위한 미 연방준비제도와의 통화스와프 논의는 별 소식이 없다.
문제는 미국의 이런 행보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데 있다. 경제 부문에서의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제일주의)는 단순한 트럼프의 유물이 아니며 바이든 행정부는 물론 향후 미국 대외경제정책 기조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0월12일 발표된 바이든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보고서를 보자.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산업정책과 노동자 및 중소기업 보호를 위한 공정무역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자유무역은 보고서 말미에 의례적으로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최근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가 발표한 미국 외교정책 우선순위 여론조사 결과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 본토 물리적 방어(30%)가 여전히 최우선 과제라지만, 국제무역에서 미국의 경제적 이익 확보(20%)가 민주적 가치의 확산(15%)이나 잠재적 침략국 봉쇄(9%)보다 더 중요한 사안으로 손꼽혔다.
이는 현재 미국의 대세가 보호주의로 돌아섰음을 시사한다. 미국 국내 정치지형이 그만큼 변했다는 의미다. 얼마 전 워싱턴에서 만났던 마크 놀런드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부소장은 필자에게 “이제 미 의회에서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정치연합은 찾아보기 어렵다. 노동자 이익을 옹호하는 반세계화, 반자유무역 세력이 득세하고 있다”고 한탄한 바 있다.
보호주의로 치닫는 미국과 개방형 통상국가 한국 사이에 경제안보동맹이 서로에게 유리한 호혜동맹이 될 수 있을까. 한국 정부는 군사동맹과 가치동맹을 위해 경제적 손실을 감수할 수 있을까. 이러한 손실에 대한 국내 정치권 반응은 어떨까. 1980년대 말 한국에서 거센 반미 정서를 촉발했던 방아쇠가 미국의 통상개방 압력이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한-미 경제안보동맹이 반드시 축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윤석열 정부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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