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증권사, CP 돌려막기 연명… "돈 되는 건 모두 판다"

이윤희 2022. 10. 3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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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긴급자금 수혈에도 역부족
"부동산시장 더 침체땐 위기 확산
내년 1분기 도산업체 나올수도"
연합뉴스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자금 시장 경색이 정부의 긴급 자금 수혈로 큰 고비를 넘기게 됐다. 하지만 채권시장의 불안감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단군 이후 최대 재건축이라고 불리던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차환은 주관사를 바꾸는 등 어려움을 겪다 만기 직전 발행에 성공했다.

보증 선 PF 사업들이 휘청거리자 증권사들은 현금 확충에 여념이 없다. 자금이 부족한 일부 중소형 증권사는 금리를 두 배 높인 기업어음(CP)이나 전자단기사채 발행으로 연명하면서 돈이 될만한 자산을 내다 팔고 있다.

◇'역대급 재건축' 둔촌주공 연 12%에 자금 모집= 지난 28일 둔촌주공 PF 대출은 만기를 하루 남기고 연 12% 금리에 가까스로 차환됐다.현대·롯데·대우건설이 대출채권에 대해 연대보증을 했지만, 기존 발행 금리(연 3.55∼4.47%)의 3배까지 뛰었다.

앞서 둔촌주공재건축조합은 NH농협은행 등 24개사로 구성된 대주단에 조합사업비 7000억원의 대출 만기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발행 증권사인 BNK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SK증권, 부국증권, 키움증권 등은 기존 사업비 7000억원에 추가로 1250억원을 더한 8250억원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발행을 시도했지만 투자자를 구하지 못했다.

재건축조합과 시공사업단은 이에 따라 KB증권으로 주관사를 변경했다. 정부가 가동한 채권시장안정펀드가 일부 물량을 사주고, KB증권이 기존 투자액 1220억원을 재투자했다. 다만 3개월 뒤인 내년 1월 19일 만기가 다시 돌아온다.

정부는 이번 주에 3조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캐피털콜(펀드 자금 요청)을 통해 자금을 수혈한다. 한국증권금융이 증권사에 3조원 이상의 유동성을 지원하고 산업은행도 2조원 이상의 증권사 CP 매입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시장에선 정부의 유동성 지원에 금융시장은 안정을 찾겠으나 부실이 누적된 일부 증권사와 건설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위험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시중금리 10%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 현재 시중 금리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뛰었다.'AA' 신용등급 회사채 1년 만기 금리의 신용 스프레드는 지난 27일 기준 1.471%포인트로, 2009년 3월 27일(1.486%포인트) 이후 최고치다. 신용 스프레드는 회사채와 국고채 금리 간 차이로, 확대될수록 시장이 회사채 투자 위험을 높게 본다는 뜻이다.

사채 시장의 유동성을 빨아들이던 AAA 등급의 한전채 발행 금리도 연 6%에 육박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가 지난 25일 발행한 2년 만기 한전채의 금리는 연 5.99%에 달했다. 6.5~7.0% 금리에 사겠다는 투자자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은 올해 23조원 어치가 넘는 회사채를 발행했다.롯데건설이 지급보증한 플로리스리테일제일차는 지난 25일 3개월물이 연 16.83%에 거래됐다. 지난 26일 발행된 A1 등급의 3개월 만기 봉명산단제이차는 연 13%에 발행됐다. 지난 25일 장외 채권시장에선 DB금융투자가 보증하고 만기가 이틀 남은 스펠바인드제16차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이 연 20%의 금리에 거래됐다.

자금력이 약한 중소기업들이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을 통해 발행하는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 발행 금리도 연 9%대까지 뛰었다.

◇"중소형 증권사, CP로 돌려막기…내년 1분기 도산 위험"= 증권사들은 정부와 한국은행의 유동성 지원 조치로 단기시장이 안정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일제히 비상 경영에 들어갔다. 일부 중소형 증권사들의 경우 실질적인 유동성 위기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CP를 연 8∼9% 금리에 발행해도 팔리지 않아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28일 채권시장에서 91일물 CP 금리는 연 4.58%로 올라 연고점을 경신했다. 일부 증권사들은 상장지수펀드(ETF) 등 돈이 될 만한 보유자산을 내다 팔며 현금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9개 대형 증권사들이 중소형사 지원을 위해 특수목적법인(SPC) 설립을 추진하고있으나 모집 자금은 1조원에 못 미치는 데다 투입까지 시간도 걸린다. 더구나 유동성에 여유가 있는 대형 증권사들도 위기가 전이될까 노심초사하면서 비상계획을 마련하는 한편 자체 위기관리에 들어갔다. 업계가 추산한 증권사의 부동산 PF 채무보증 위험 노출액(익스포져)은 40조원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당국의 유동성 지원 조치로 자금이 수혈되면 전체적인 시장은 점차 안정을 되찾겠지만 고비를 넘기지 못하는 금융회사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의 유동성 지원책은 자금흐름 물꼬를 터주는 역할에 그쳐 부실이 심한 곳까지 흘러가기 어렵다"며 "부실이 누적된 곳은 꼬리 자르기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소형 증권사 중에서 내년 1분기 말께 도산이나 회생절차를 밟는 곳들이 생길 수 있다"며 "부동산시장이 더 위축되면 부동산 PF 부실 심화로 건설·증권사뿐 아니라 캐피탈사 등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윤희기자 stel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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