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동포들 ‘한반도 평화’ 기원하며 김치 나눠요”
“우리의 행동이 작은 불씨가 되면 나비효과가 되어 퍼져나갈 거라 생각해요.”
베를린에서는 올 4월부터 한반도 평화 기원 문화예술 행사가 잇달아 열리고 있다. 오는 11월20일(현지시각) 베를린자유대학 부근 지하철역 앞에서 올 여섯번째 베를린 평화문화제로 ‘베를린 평화김치 나눔’ 행사가 열린다. 이 행사를 이끄는 민화협(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베를린지회 상임의장 정선경(58·)씨를 최근 베를린 쿠담에서 만났다. 그는 평통(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코윈(세계한민족여성네트워크) 독일 담당관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민화협 베를린 상임의장을 맡은 정씨는 올해 들어 여러 단체와 힘을 모아 한반도 평화·문화 행사를 펼치고 있다. 지난 4월27일 ‘희망을 품자’라는 표제로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4·27 판문점 선언’ 4돌을 기념했다. 이날 한반도기를 바닥에 그려 그 위에 모형 블록을 놓고 두사람씩 손잡고 넘어가는 퍼포먼스를 해 주목을 받았다. 주위 사람들도 모두 따라 했고 뭉클한 경험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단다. 우크라이나 난민의 한반도 평화 지지 발언도 있었다. 이 행사 준비에는 작은 것 하나하나에 정성이 들어갔다. 빈 스티커를 사서 종전선언 지지 서명을 할 수 있는 큐아르(QR) 코드를 인쇄해 마스크에 붙였다. 한반도기, 독일어로 ‘한반도의 평화’ 문구가 들어간 다양한 크기의 각종 스티커를 만들어 행 인들에 배포했다.
6월25일에는 ‘한반도 평화염원 자전거투어’를 했다. 80명 가까이 참가했다. 베를린장벽공원, 장벽기념관, 평화의 소녀상, 대한민국과 북한 대사관을 거쳐 포츠담광장까지 14㎞를 달렸다. 한국대사관 마당에서 아리랑 음악을 틀고 함께 플래시몹도 했다. 북한대사관 앞에서도 플래시몹을 하고 독일어로 ‘한반도의 평화’를 바라는 구호를 외쳤다. “자전거투어 중 비가 많이 왔는데도 참가자가 거의 다 완주했어요.”
정 의장은 19 92 년 베를린에 유학 와서 베를린예술대학에서 미디어커뮤니케이션을 전공했다 . 자녀가 음악을 전공했고 그도 클래식 음악 애호가여서 연주회와 음악을 많이 접했단다. 그는 2019년 가을, 한반도 평화음악회를 처음 기획해 올해까지 4회째 열었다. 음악회는 2차 대전 때 폭격으로 파괴됐으나 전쟁을 경고하려고 그대로 둔 빌헬름카이저 교회에서 독일 통일의 날 즈음에 열고 있다 . “한국 문화부 산하 문화예술위원회에서 문화행사를 지원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청해 봤는데 덜컥 된 거예요 . 독일 음악대학에 북한 유학생들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함께하려고 찾았는데 한명도 없더군요. 할 수 없이 한국과 독일 음악가들이 모여 행사를 했죠.”
올 4월부터 잇달아 평화기원 문화제
‘4·27’ 4돌 기념 이어 ‘자전거 투어’
지난 8월 춤과 음악 어우러진 공연
내달 여섯째 행사로 ‘평화김치 나눔’
“평화운동 확산 위해 문화예술 접목
한반도 평화 관심 동포 늘어 희망적”
그가 이처럼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 “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제가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거예요 . 일단 시작하면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자꾸 불어나 결국 제가 없어도 할 수 있잖아요. 특히 지금 베를린에는 1 세대 이민자들은 있지만 중간세대 활동가들은 없어요 . 누군가 1세대를 이어야죠.”
그는 독일에서 살다 보면 통일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도 했다. “독일은 우리 상황을 투영해 보면서 통일 과정의 장단점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공간이죠. 아마 독일에 사는 한국 분들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겁니다.”
정 의장은 최근 남북 관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 한반도 평화 활동의 중요성을 더욱 절감했다는 말도 했다. “ 얼마 전 뉴스에서 ‘폴란드가 한국으로부터 무기를 샀는데 한국은 오랫동안 전쟁을 준비한 나라여서 무기가 훌륭하다’고 하더군요. 그 뉴스를 듣고 ‘우리나라가 전쟁을 준비했어 ?’라는 생각이 들어 깜짝 놀랐죠. 7·4 공동성명 , 6·15 합의 그리고 최근 4·27 까지 남북정상 등이 만나 평화를 위한 노력을 많이 한다고만 생각했거든요. 우크라이나도 사람들이 원해서 전쟁이 일어난 게 아니잖아요?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 ‘우리도 전쟁이 일어날 수 있겠구나 ’ 라는 위기감이 들었어요 . 요즘 남북관계도 그렇고요. 하지만 전쟁은 어떤 이유든 용납될 수 없어요.”
그는 자신의 문제의식을 문화예술과 접목했다. “한국에서 사람들은 분단과 정전상태인데도 평화롭다고 느끼잖아요. 내가 외국에 있어 보니 ‘(한국 상황이) 정말 평화로운 게 아닌데 평화롭게 느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에서 평화를 지향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누구나 동의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북정책이 바뀌잖아요. 저는 정치인이 아니지만 한 시민으로서, 우리나라가 분단돼 있어도 평화를 지켜야 한다는 원칙은 쭉 지속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어요. 그런데 기존 통일운동처럼 투쟁하듯 하면 확산력이 없잖아요. 그래서 문화예술과 접목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죠.”
지난 8 월 18 일 포츠담 광장에서 열린 평화문화제 제목은 ‘분단을 딛고 평화를 노래하고 춤추다’였다. 베를린의 한국 전통무용·음악 단체들이 가무악 공연을 했고 독일 삼바밴드는 타악기를 연주해 춤과 음악이 어우러졌다. 공연 위주였고, 설명은 독일어로 했다. 길놀이와 사물놀이 때 구경하는 사람들도 같이 할 수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한반도 평화’ 구호를 넣었는데 사람들이 재밌어 했단다. “ ‘ 요즘에는 데모하는 것도 재밌어 ’ 라는 말이 들려와 우리가 하는 게 성과가 있구나 싶었죠.”
그는 인터뷰를 마치며 이런 말을 했다. “한꺼번에 큰 것을 바라지 않아요 . 현실적이지도 않고요 . 그래도 적은 숫자지만 ‘아 , 괜찮은 것 같아 . 나도 같이 해보고 싶어’라는 분위기가 일어나고 있어요 . 그것만으로도 큰 성과이죠. 행사를 준비하고 참여하는 사람들도 ‘아 , 이거 재밌어 . 할 만해 . 다음에도 하고 싶어’ 이런 마음이 생겨나는 게 중요해요. 이런 마음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 같아 희망적입니다.”
베를린/한주연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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