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장, 또 한장…손으로 풀칠해 아코디언처럼 이어붙인 책 150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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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출판계 사람들을 만나면 모두 이 책 얘기를 한다.
여러모로 '용감한' 이 책은 1인 출판사인 봄날의책 박지홍 대표가 최근 국내 출간한, 앤 카슨의 <녹스(nox·사진)> 다. 녹스(nox·사진)>
그는 "남들이 못하는 책을 한 번쯤 만들어 보고 싶었다"며 "봄날의책에서 내지 않으면 앞으로도 국내 독자들은 이 책을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출간을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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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대로 출간하라" 요구에
수작업으로 두달 동안 작업
요새 출판계 사람들을 만나면 모두 이 책 얘기를 한다. 192쪽 분량을 쭉 이어 붙여 접은 아코디언북 형태, 5만5000원이라는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 온라인 주문을 해도 10% 할인이 없는 우직한 정가 판매….
여러모로 ‘용감한’ 이 책은 1인 출판사인 봄날의책 박지홍 대표가 최근 국내 출간한, 앤 카슨의 <녹스(nox·사진)>다.
1950년생인 카슨은 노벨문학상 후보로 해마다 거론되는 캐나다의 시인이자 고전학자, 번역가다. <달콤쌉싸름한 자 에로스> <빨강의 자서전> 등을 쓰고 사포, 소포클레스 등의 작품을 번역했다.
<녹스>는 그가 오랜 기간 소원하게 지냈던 마약중독자 오빠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제작한 책이다. 녹스는 라틴어로 일몰과 일출 사이의 시간, 밤, 어둠을 뜻한다.
오빠의 죽음에 혼란스러웠던 카슨은 로마 시인 카툴루스가 형제를 추모하며 쓴 시, 자신의 과거 일기, 편지, 어린 시절 사진 등을 찢어 수첩에 붙였다. 그렇게 만든 수첩의 모습을 본떠 책을 제작했다. 책은 관을 연상시키는 사각의 종이 상자에 담았다.
카슨은 이렇게 썼다. “오빠가 죽었을 때 나는 책의 형식으로 그를 위한 묘비를 세웠다.” 카슨은 오빠의 사료를 발굴하고 오빠의 삶을 번역했다. 어쩌면 책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오빠를 이해하기 위한 추모 의식이었을지 모른다.
<녹스>는 번역본을 제작하기 어려운 책이다. 카슨은 이 책을 어떤 언어로 옮기든 책의 원형을 100% 재현하기를 요구한다. 심지어 종이 상자까지도. 까다로운 제본 과정 탓에 영어 원서 외에 프랑스어판, 일어판조차 없다.
처음 윤경희 번역가가 박 대표에게 <녹스>를 소개하며 “언젠가 꼭 번역하고 싶은 책이지만, 출판사를 괴롭힐 책”이라고 했을 정도다.
박 대표는 2년간 망설이다가 국내 출간을 결정했다. 그는 “남들이 못하는 책을 한 번쯤 만들어 보고 싶었다”며 “봄날의책에서 내지 않으면 앞으로도 국내 독자들은 이 책을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출간을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각오한 일이지만 제작 과정은 상상 이상으로 지난했다. 아코디언북 형태는 기계 공정이 불가능하다. 국내에는 만들 줄 아는 사람도 찾기 힘들다. 결국 내지를 다 인쇄해 놓고도 한 달간 묵혀야 했다. 박 대표는 “원서를 제작한 홍콩을 찾아가 책을 만들까 고민도 했다”며 “책을 내기로 한 스스로의 결정을 조금은 후회했다”고 털어놨다.
박 대표는 수소문 끝에 박한수 활판공방 대표 소개로 권용국, 김평진 장인을 만났고, 두 사람이 한 장, 한 장 풀칠로 종이를 이어 붙여 책을 완성했다. 초판 1500권을 제작하는 데만 꼬박 두 달이 걸렸다.
박 대표는 1993년부터 푸른나무, 열화당 등에서 편집자로 일하다 2013년 1인 출판사 봄날의책을 시작했다. 출판계 사정에 밝은 독자들은 30년 경력 편집자의 뚝심을 알아봤다. 이번주 출간됐는데 벌써 700권 정도 나갔다. 소문을 들은 동네서점에서도 출간 전부터 구입 문의가 이어졌다.
박 대표는 “새삼 책을 펴내고 독자에게 선보이는 일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깨닫는 나날”이라고 했다. “<녹스>는 이제 막 한국 독자들을 만나기 시작했어요. 앞으로의 여정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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