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대책회의 안건은 방역·마약… 안전조치는 없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안승진 2022. 10. 3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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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경찰 책임론 제기
10만명 대규모 인파 운집 예고 됐지만
용산구선 구청장 대신 부구청장이 회의
서울시 “시 주관 행사 아니라 제한 못해”
이상민 장관 “경찰 배치로 될 문제 아냐”
전날 이미 같은 장소서 사고 조짐에도
당일 배치된 경찰 범죄단속에만 주력
市, 군중관리 매뉴얼 적용 소극적 지적
야외 마스크 해제 후 맞는 핼러윈 축제를 앞두고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하루 10만명 이상이 모일 것으로 예상됐지만 서울시와 용산구 등 행정 당국은 별다른 대비책을 세우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관할 지방자치단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을 막을 방역 대책이나 마약, 성범죄 등에 대해 대비하면서도 시민 안전 문제는 뒷전이었다.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인명사고 현장에 사용한 수액세트가 놓여있다. 연합뉴스
30일 서울시에 따르면 핼러윈 주말을 대비해 별도 시민 안전 대책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다. 지난 8일 3년 만의 불꽃축제에 대비해 여의도 일대 교통을 통제하고 안전 요원을 배치하는 등 시민 안전 대책을 마련한 것과 대조적이다. 시 관계자는 “불꽃축제 행사에는 주최 측이 있었고 서울시가 후원하는 입장이라 교통 통제 등이 이뤄질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특정 행사가 이뤄진 게 아니여서 자치구 차원에서만 상황실을 운영했다”며 “코로나19 당시는 방역법에 따라 보행자의 통행을 제한했지만 인파가 많이 모였다는 이유로 통행을 제한할 근거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태원을 관할하는 용산구는 27일 ‘핼러윈데이 대비 긴급대책회의’를 열었지만 회의는 이태원 일대 방역과 소독, 업장의 위생 상태, 마약 사건 예방 등에 맞춰 있었다. 인파에 대한 안전 대책은 사실상 전무했다. 회의도 지난해 성장현 당시 구청장이 주도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 부구청장 주재로 이뤄졌다. 용산구의 미흡한 대처에 대한 지적이 나온 이후, 박희영 구청장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은 모두 비공개로 전환됐다.

경찰의 사전 대응이 부실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사고 당일 경찰은 이태원 일대에 경찰관 200여명을 배치했지만, 불법 촬영과 강제 추행 등 범죄를 단속하는 데 주안점을 둔 것으로 전해졌다. 사고 현장에서 100m 거리에는 소방서도 위치해 있었지만, 일대 인파에 따른 혼잡이 빚어지면서 진입에 어려움을 겪었다.
오도 가도 못하던… 참사 직전 모습 3년 만의 첫 야외 노마스크 핼러윈 주말이었던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부근 골목이 인파로 가득 차 사람들이 오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안전을 위한 경찰이나 지방자치단체의 통제는 없었다. 잠시 뒤인 오후 10시15분쯤 일부 시민이 넘어졌다는 신고가 접수됐고, 결국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대형 참사로 번졌다. 해당 도로는 3.2m 정도의 좁은 길로 경사가 있는 내리막길이어서 피해가 컸다. 연합뉴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의 사전 대응에 문제가 없었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이 장관은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저희가 파악하기로 (이태원에) 예년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다”라며 “통상과 달리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한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 시내 곳곳에서 소요와 시위가 있었기에 경찰 경비 병력이 분산됐던 측면이 있었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핼러윈 행사에 대한 행정 당국의 무관심은 수백명의 인명 사고로 이어졌다. 사고 하루 전인 28일 밤에도 이태원 골목에 많은 인파가 몰려 사람들이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목격담이 SNS에 올라올 정도로 사고는 어느 정도 예견돼 있었다.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인명사고 현장에서 구조대원 등이 구조활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행안부는 지난해 ‘지역축제장 안전관리매뉴얼’을 통해 1000명이 넘는 지역 축제의 경우 지자체가 행사장의 동시 최대 수용 인원을 검토해 수용 대책을 마련하고, 수용 한계를 넘었을 때에 대비해 적절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내용을 권고했다. 2005년 10월 경북 상주시민운동장에서 공연을 보기 위해 많은 인원이 입장하던 중 11명이 압사당한 사건과 2006년 3월 롯데월드 무료 개방 행사에서 35명이 부상당한 사건 등이 계기가 돼 만들어진 매뉴얼이다.

핼러윈 행사에는 주최 측이 없다는 서울시의 주장과 달리 수많은 인파가 모일 것이 미리 예상된 만큼 매뉴얼을 적용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사고 지역과 인접한 이태원역 1번 출구만 막았어도 보행량이 분산됐을 것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임승빈 명지대 교수(행정학)는 “서울시가 직접 주최·후원하거나 인허가하지 않았어도 축제라는 개념을 크게 봐야 했다”며 “많은 인원이 모일 것을 시가 인지했고 이미 광화문 시위 등에서도 보행과 교통 통제 등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관련 근거는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등 충분히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세계일보는 이번 참사로 안타깝게 숨진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의 슬픔에 깊은 위로를 드립니다.

안승진·송은아·권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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