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왜 여기 있어" "차라리 정신 잃었으면" 병원마다 통곡(종합)
기사내용 요약
딸 잃은 부친 눈물 "대학 졸업 사진이 영정 사진 돼"
자녀·친구 사망 확인한 유족들 속속 장례식장으로
오전 신원 확인 전 가족들 시신 찾아 병원 돌며 발품
숨진 20세 딸 찾는 어머니 "자정부터 병원 찾아다녀"
"어느 병원인지 모른 채 경찰은 집에 가있으라고만"
이태원 압사 153명 수도권 병원·장례식장 39곳 안치
[서울=뉴시스]정진형 임철휘 기자 = "이 녀석이 인사도 안 한게, 전전날 퇴근하고 방에 있었는데 평소에는 내다보는데 그날은 안 내다보데? 그 전날 아침에 보고 못봤는데…"
이태원 참사 희생자인 A(26)씨 부친은 30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삼육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취재진과 만나 지난 날 딸의 얼굴을 보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아버지는 "그저께 새벽에 집사람하고 새벽에 지방에 등산을 가서 1박을 하고 아침에 와보니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 듯 표정은 텅 비어 보였다.
30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삼육대병원 장례식장에는 이송된 사망자 6명 중 2명의 빈소가 차려졌다. 모두 20대 청년이었다. 일부 유족들은 다른 장례식장으로 고인을 옮길 채비에 바빴다. 유족으로 추정되는 중년 여성 일행이 장례식장 로비에서 두리번거리다가 빈소 안내판을 들여다보고 "아이고, 왜 여기있어"라고 통곡하기도 했다.
같은 병원에서 장례를 치르기로 한 A씨 부친은 "대학교 이번에 졸업하고 (취업) 시험도 다 통과한 거 같고 해서 좋은 꽃길 걸을 일만 남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아직 장례절차가 시작되지 않은 빈소에는 A씨 영정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대학 졸업 때 찍은 사진이 영정 사진이 됐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취재진에게 차분하게 딸에 대해 이야기했던 그는 잠시 후 다른 가족들이 도착하자, 그제서야 흐느껴 울었다.
지난 29일 이태원 핼러윈 압사 사고로 현재까지 151명이 사망한 가운데, 유족들은 자녀나 지인의 시신이 안치된 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통곡하고 있다.
신원이 확인 돼 연락이 닿은 유족들이 장례식장을 찾은 경우도 있었지만 오전까지 연락을 받지 못해 일일이 병원들을 돌며 시신이 이송됐는지 확인하는 경우도 있었다.
친구와 함께 이태원을 찾았던 B씨도 이곳 병원에서 가족들을 만났다. 그는 친구 김모(30)씨와 함께 물건을 사기 위해 이태원을 찾았다가 인파에 휩쓸렸고 변을 피하지 못했다.
친구를 보러 온 김씨는 전날 B씨와 "우리 여기서 나갈 수 있어. 정신 똑바로 차려", "너무 힘들어. 나 진짜 죽을 거 같아" 등의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간호사인 김씨는 현장에서 구조돼 의식을 되찾자마자 구급대원들을 도와 사고를 당한 다른 사람들에게 심폐소생술(CPR)을 했다고 한다. 이후 함께 사고를 당했던 B씨가 없는 것을 깨달았고, 몇시간 뒤 고인의 어머니로부터 부음을 전해들었다.
B씨 어머니는 "차라리 쓰러졌으면 좋겠다. 정신이 있는 게 너무 힘들다"고 황망해했다고 김씨는 전했다.
김씨는 고인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구였다며 "이제 좀 자리잡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려고 했다. 진짜 착하고 좋은 애였다"며 "원래 놀러간 게 아니어서 빨리 살 거만 사고 사진만 찍고 집에 가자고 그랬던 거였다"고 한탄했다.
동작구 보라매병원에도 20대 남녀 사망자 6명의 시신이 안치됐다. 현재까지 3명의 가족에는 연락이 닿았지만 외국인 사망자도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망자 신원 통지가 이뤄지기 전이던 오전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 앞에는 출입을 통제하는 경찰과 가족이 안치돼 있는지 확인해보겠다는 유족들 간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서울 금천구에 사는 안모(55)씨는 전날 자정께 이태원에 놀러간 딸이 숨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시신이 임시 안치된 원효로 다목적 실내체육관에서 함께 있던 남자친구가 신원을 확인해줬지만, 이후 딸이 옮겨진 병원이 어딘지는 연락받지 못했다. 이에 실종자 접수를 받는 한남동 주민센터와 병원을 오가고 있다고 했다.
안씨는 "어제밤 12시쯤 전화를 받고 엄청 돌아다녔다. 체육관에서부터 걸어왔다"며 "여기서 밤새 기다리다가 (구급)차가 엄청 오길래 따라왔더니 못 들어가게 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어느 병원에 간지도 모르고 얼마나 황당하냐"며 "지금 밥도 못 먹고 애기 보고 싶어갖고 그렇게 하는데 경찰은 전화 올거니까 집에 가서 기다리라고만 한다"고 한탄했다.
딸과 마지막으로 연락한 게 언제냐는 질문에는 "(전날) 오후였다. 돈을 달라길래 5만원을 줬었다"고 답했다. 3남1녀 중 둘째 딸인 고인은 올해 20살이었다고 한다.
경찰에 따르면, 순천향대병원에 안치된 시신 6구 중 한구만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나머지 희생자 5명의 가족에게는 연락이 닿아 급히 병원으로 오고 있다고 한다.
시신을 직접 확인하려는 일부 유족들이 출입하는 모습도 보였다. 한 고려인 남녀는 경찰과 대화한 후 굳은 표정으로 장례식장에 들어섰다.
스리랑카 국적 남성 리하스(33)씨 일행은 직장 동료인 C(27)씨의 휴대전화를 습득했다는 경찰의 연락을 받고 한남동 주민센터를 갔다가 순천향병원으로 향했다.
리하스씨는 "현지에서 뉴스를 본 가족들이 우리에게 알아봐달라고 한다"며 "새벽 5시반부터 주민센터를 왔다갔다하다 병원으로 와봤다. 뭐가 나오면 알려준다는데 아직까지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에서 온 D씨는 한국 여행을 왔다가 만난 호주 여성 E(23)씨와 이태원에 갔다가 E씨가 변을 당했다며 "시신을 봤지만 따라가지 못해 헤어졌다"며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가족들의 연락처를 몰라 연락하지 못 하고 있다. 그녀는 다음주가 생일이었다"고 눈물을 흘렸다.
핼러윈데이를 이틀 앞둔 지난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해밀톤호텔 일대 골목에서 발생한 대규모 압사 사고로 소방청에 따르면 153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12명이 있으며, 외국인 사망자는 20명으로 집계됐다. 이밖에 중상 24명, 경상은 79명이었다.
희생자들이 안치된 병원은 ▲강남세브란스병원 ▲강동경희대병원 ▲강동성심병원 ▲강북삼성병원 ▲건국대병원 ▲국립중앙의료원 ▲노원을지대병원 ▲보라매병원 ▲부천성모병원 ▲삼성서울병원 ▲삼육서울병원 ▲상계백병원 ▲서울성모병원 ▲성남중앙병원 ▲성빈센트병원 ▲순천향부천병원 ▲순천향서울병원 ▲쉴낙원경기장례식장 ▲안양샘병원 ▲양주예쓰병원 ▲여의도성모병원 ▲용인세브란스장례식장 ▲의정부백병원 ▲의정부성모병원 ▲의정부을지대병원 ▲의정부의료원 ▲이대목동병원 ▲이대서울병원 ▲일산동국대병원 ▲평택제일장례식장 ▲한림대성심병원 ▲혜민병원 ▲코리아병원 ▲고대안암병원 ▲고대구로병원 ▲경희대병원 ▲서울대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한양대병원 등 39곳이다.
부상자 중 심폐소생술(CPR) 등을 받던 중상자가 적지않아, 사망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이날 이태원에는 야외 마스크 해제 후 맞는 첫 핼러윈을 앞두고 10만명 이상의 인파가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공감언론 뉴시스 formation@newsis.com, f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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