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만 하던 어린 딸, 몇년만에 외출했는데…” 병원마다 통곡
수도권 병원 42곳 시신 안치
가족 얼굴 확인하고 실신해
"퇴근하고 인사 못했는데…"
마지막 모습 떠올리며 오열
실종된 가족 찾으며 발동동
병원 헤매며 신원 확인나서
한남동 주민센터도 눈물바다
◆ 이태원 대참사 ◆
삼육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희생자 A씨(26)의 아버지는 A씨의 졸업 사진이 영정 사진이 될 줄은 몰랐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그는 "딸이 여름에 미국 공인회계사(AICPA) 자격증을 따고, 몇 년 만에 기분을 내러 친구와 외출했다"며 "이제 더 좋은 일만 남아 있을 줄 알았는데 졸업 사진이 영정 사진이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뉴스를 통해 이태원 압사 사고를 접한 A씨의 아버지는 딸의 안부가 걱정돼 황급히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전화를 받은 건 딸이 아닌 경찰이었다. 딸의 사망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에 도착한 그는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자꾸만 고개를 떨궜다. 그는 "엊그제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평소와 다르게 방에서 딸이 나오지 않아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며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떠나보내려니 막막하다"고 말했다.
이태원 사고 희생자 5명의 시신이 안치된 삼성서울병원에서도 유족들이 슬픔을 이기지 못해 울부짖는 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희생자 B씨(24)의 언니는 B씨와 연락이 두절된 새벽녘부터 이태원 일대를 밤새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는 "동생이 친구와 이태원에 놀러간다고 했는데 연락이 안 돼 경찰서와 병원을 모두 돌았다"며 "가슴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프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중엔 외국인도 다수 포함됐다. 이날 용산구 순천향대서울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나단 타베르니티 씨(24)는 함께 이태원을 방문했던 호주 국적 C씨(23)의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다. 다음주 생일을 맞이하는 C씨는 한국 친구들과 함께 이태원을 방문했다가 변을 당했다. 그는 "클럽에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넘어지기 시작했다"며 "C씨를 구하려고 손을 내밀었지만 순식간에 인파에 깔려 밑으로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일부 유가족은 시신이 안치된 곳을 확인하지 못해 병원에서 발만 동동 구르기도 했다. 순천향대서울병원을 찾은 D씨(63)는 실종된 둘째 딸을 찾기 위해 이날 오전 일찍 이곳 병원을 찾았다. 둘째 딸의 휴대폰은 경찰이 확보했지만, 사망 여부는 확인되지 않은 상태였다. D씨는 "새벽에 나와서 몇 시간째 딸을 찾고 있다"며 "어디에 가서 딸을 찾아야 할지 몰라 답답하다"고 전했다. 이날 150명이 넘는 사망자들은 일산동국대병원(20명), 평택제일장례식장(7명), 성빈센트병원(7명), 이대목동병원(6명) 등 42개 병원에 분산·안치됐다. 이태원 압사 사고와 관련해 이날 새벽 5시부터 실종자 접수 창구 역할을 한 한남동 주민센터도 희생자를 찾으려는 가족들과 지인들로 내내 붐볐다.
[김유신 기자 / 박나은 기자 / 김정석 기자 / 박홍주 기자 / 신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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