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인권범죄 기록,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

김형주 2022. 10. 30.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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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식 북한인권기록보존소장
북한 인권탄압 기록 남기는
법무부 동명기관서 소장 역임
지난 정권때 수집활동 중단
"유엔인권이사국 낙선 참사는
文정부 北인권범죄 용인한 탓"
임신 8개월 차 여성을 수용소 관계자들이 데리고 나갔다. 여성은 하루 만에 부풀었던 배가 꺼져 돌아왔다. 강제 낙태를 당한 것이다. 중국으로 탈북했다가 잡혀 북송됐으니 배 속 아이가 조선인의 핏줄이 아닐 것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수용소에 함께 있었던 한 북한이탈주민은 충격으로 정신이 나간 이 여성이 다음 날 아침 자신이 베던 베개를 아이라고 생각하며 어르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법무부 산하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이 같은 북한 내 반인권 범죄를 기록해 보존하는 기관이다. 통일 후 해당 기록을 바탕으로 인권 범죄자를 기소해 처벌하는 것이 목적이다. 북한인권법에 따라 2016년 세워진 보존소는 다수 검사가 소속돼 활발히 운영됐으나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며 사실상 활동이 중단됐다. 정부가 파견된 검사들을 불러들이고 관련 예산도 10분의 1로 삭감했기 때문이다. 법무부 청사에 있던 보존소는 법무연수원 용인분원으로 쫓겨났다.

검사 시절 법무부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소장을 지낸 최기식 변호사(사진)는 검찰을 나온 뒤 2020년부터 민간 기관인 북한인권정보센터(NKDB)가 운영하는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소장을 맡고 있다. 2007년 설립된 NKDB 부설 보존소 역시 법무부 보존소와 마찬가지로 북한에서 발생한 인권 범죄를 조사해 기록으로 남기는 역할을 한다.

최기식 소장은 한국이 최근 유엔 인권이사국에서 탈락한 이유로 북한의 인권 침해를 외면한 사실을 들었다. 2006년 유엔 인권이사국이 창설된 이후 5차례 이사국을 지낸 한국은 지난 11일 아시아 국가 이사국 자리를 놓고 벌어진 표결에서 낙선했다. 한국보다 많은 표를 받은 나라는 방글라데시, 몰디브, 베트남, 키르기스스탄이었다.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 경제와 민주주의 수준을 고려했을 때 충격적인 결과다. 최 소장은 "옆집에 사는 친동생(북한)이 조카들(북한 주민)을 학대하는데 형이라는 사람(한국)이 이를 외면하고 오히려 동조한 결과"라며 "학대를 우려하는 이웃들(다른 나라들)에도 동생을 비난하지 말라고 나서니 마을 전체에서 왕따를 당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소장은 문재인 정부가 지난 4년간 북한인권결의안 공동 제안국에 참여하지 않은 것과 더불어 서해 공무원 피살, 탈북 어민 강제 북송 등 국내 사건들이 인권이사국 낙선에 영향을 줬을 거라고 밝혔다. 정부가 자국민이 북한에 납치돼 살해당하는 것을 방조하고, 탄압받을 것이 뻔한 탈북 어민을 강제로 북송한 행위 등이 국제사회의 인권 기준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것이다.

NKDB 보존소는 법무부 보존소와 마찬가지로 기록 수집 활동이 거의 중단된 상태다. 문재인 정권이 2020년 NKDB가 하나원을 방문해 북한 인권 범죄 사례를 조사하는 것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하나원은 탈북민에게 국내 정착 교육을 하는 통일부 산하 기관이다. NKDB는 2004년부터 하나원에 입소한 탈북민을 대상으로 북한 인권 실태를 조사했고, 이를 바탕으로 북한인권기록보존소 기록을 데이터베이스(DB)화해왔다.

법무부 보존소와 NKDB 보존소는 통일 후 인권 범죄자 처벌을 위한 기록을 보존하는 것 외에 현재 진행되는 북한 내 인권 범죄를 견제하는 역할도 해왔다. 한국이 북한 내 인권 범죄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이 북한 인사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두 보존소가 벤치마킹한 서독 잘츠기터 중앙범죄기록소의 기록은 통일 뒤 동독 인권 범죄자들을 처벌하는 근거가 됐을 뿐 아니라 통일 전 동독 내 인권 침해를 제지하는 역할을 했다.

NKDB는 수십 년간 DB화한 북한 인권 범죄 기록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범죄 기록이 국제사회에 낱낱이 밝혀지고 대대손손 보존된다면 북한 당국자들이 더 큰 압박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한국 유산은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 등을 포함해 16건이다. NKDB 측은 기존 등재 유산과 비교했을 때 보존소 기록의 영향력과 보존 필요성 등이 부족하지 않아 등재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최 소장은 "동독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서독 측에 잘츠기터 기록소를 없애라고 요구했고, 북한 역시 한국의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의식하고 있다"며 "수년째 보존소 활동이 무력화돼 안타깝지만 기록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다면 조금이나마 북한 인권 범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주 기자 / 사진 = 박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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