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런 일이…젊은 목숨 앗아간 '핼러윈 악몽' [사설]

2022. 10. 3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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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10만 인파 예상됐는데도
통행로 확보·안전요원 배치 안해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안전불감증 여전
군중운집 안전시스템 전면 재점검해야
30일 이태원 참사 사고지점에 꽃다발이 놓여있다. 2022.10.30 [김호영 기자]
축제 분위기로 들썩이던 29일 서울 이태원의 밤은 '핼러윈의 악몽'으로 남고 말았다. 유례없는 압사 사고로 150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부상자도 130명 이상 발생했다. 2014년 304명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 이후 최악의 인명 피해다. 외국인 사망자도 26명에 달한다. 이번 사고가 발생한 이태원은 매년 핼러윈이면 인파가 북적이는 곳이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마스크 없는 핼러윈'을 맞아 10만명의 인파 운집이 예상됐는데도 별다른 안전 대책 없이 참사가 방치된 것 아니냐는 점에서 충격이 크다. 희생자 대부분이 핼러윈을 즐기러 나간 10·20대 젊은이들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30일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나선 안 될 비극과 참사가 발생했다"며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국가 애도기간 선포 방침을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리시 수낵 영국 총리 등 각국 정상들도 애도를 표했다.

이번 사고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억눌렸던 에너지를 분출하려는 젊은이들이 일시에 쏟아져 나온 데다, 지하철역 인근의 좁고 경사진 골목에 지나치게 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발생했다. 골목 뒤쪽에 있던 사람들이 앞쪽에서 벌어진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골목으로 진입하면서 상황이 악화됐다. 일부 업주들이 문을 닫고 대피에 협조하지 않은 것도 인명 피해를 키운 이유다. 좁은 길에 취객까지 뒤엉켜 구조대 접근마저 쉽지 않았다고 한다.

2010년대 후반 이후 다양한 분장을 하고 클럽에서 파티를 즐기는 '한국식 핼러윈'이 젊은이들의 문화로 자리를 잡았고, 중심지는 이태원이었다. 하지만 몰리는 인파에 대한 안전사고 예방 조치가 없었다는 점은 아쉽기만 하다. 이태원 상점과 거리가 수용할 수 있는 적정 인원에 대한 분석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통행로 확보 조치와 안전요원 배치도 없었다. 특히 사고 하루 전인 28일에도 이 골목에 인파가 몰리면서 유사한 사고가 여러 차례 발생할 뻔했는데도, 누구도 사고를 막지 못했다. 우리 모두의 안전불감증이 빚은 대참사인 셈이다.

당장 시급한 과제는 사망자 신원 확인 등 하루빨리 사고를 수습하는 일이다. 윤 대통령도 "국정 최우선 순위를 사고 수습과 후속 조치에 두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참사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지금은 모든 응급의료체계를 가동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둘러싼 검찰 수사로 대치 중인 정치권도 정쟁을 멈추고 사고 수습에 힘을 모아야 한다. 여야 지도부는 정치 일정을 전면 중단하고 각 당 의원들에게 사적 모임 등 정치 활동 자제를 당부했다. 여야 모두 사태 수습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것인데 당연한 결정이다. 이런 와중에 민주당의 남영희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고 원인을 청와대 이전으로 돌리는 글을 올렸다가 논란이 일자 삭제했다. 국민들이 엄청난 충격과 슬픔에 빠져 있는데 대형 참사마저 정쟁에 이용하려는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사고 수습과 함께 참사 원인을 철저히 밝히는 일도 중요하다. 많은 군중이 몰리는 곳에서는 종종 압사 사고가 일어난다. 최근 인도네시아 축구장에서도 흥분한 관중이 경기장으로 뛰어들었고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막자 사람들이 한꺼번에 출구로 몰리면서 132명이 압사했다. 1990년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성지순례 때는 1400여 명이 희생된 최악의 압사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대부분 예상하지 못한 돌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사고 원인을 밝히는 것은 쉽지 않다.

이태원 참사도 직접적인 원인이나 사고 경위를 파악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사고가 일어난 원인을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 유사한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일본은 2001년 효고현 아카시시에서 열린 대규모 불꽃놀이 때 11명이 사망한 사건 이후 많은 사람이 모이는 행사의 경비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개선한 바 있다. 우리도 이번 참사를 계기로 군중이 모이는 장소의 안전 시스템을 전면 재점검하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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