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채로 의식 잃었다, 이태원 내리막 ‘폭 3.2m’ 골목에 갇혀
지난 29일 밤 서울 이태원에서 발생한 최악의 압사 사고로 30일 밤 10시30분 현재 154명이 숨지고 132명이 다쳤다. 주말을 맞아 핼러윈 데이(31일)를 미리 즐기기 위해 나온 인파가 좁고 경사진 골목길에서 엉키고 눌리며 초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희생자 상당수가 20대였다. 종교행사나 스포츠경기처럼 출입구가 있는 제한된 공간에서 주로 발생하는 압사 사고가, 10만명 이상이 몰릴 것으로 예고된 서울 도심 한복판 열린 공간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안전대책 마련에 실패한 행정 참사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생존자와 목격자 진술 및 소방당국과 경찰 발표를 종합하면, 압사 사고는 29일 밤 10시15분께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건물 옆 너비 3.2m, 길이 40m 경사진 골목에서 발생했다. 해밀톤호텔 뒤편 클럽 골목에서 내려오는 인파와 호텔 앞쪽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1번 출구 쪽 도로변에서 올라오는 인파가 좁은 골목에서 마주치며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생존자 등은 “마치 도미노처럼 앞으로 쓰러졌다”고 전했다. 생존자 이창규(19)씨는 “좁은 골목이 사람으로 꽉 찼다. 그러다 한두 사람씩 넘어졌다. 깔린 사람들이 ‘뒤로! 뒤로!’ 소리를 질렀지만 사람들이 빠지질 않았다. 죽을 거 같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매디슨 프로스트(23)는 “클럽에 유명한 사람이 왔다고 들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해밀톤호텔 쪽으로 쓰러졌다”고 했다.
사고 발생 신고 접수 2분 뒤인 밤 10시17분께 용산소방서 구조대가 출동했지만 수만명 인파가 좁은 골목을 꽉 채운 상황에서 현장 접근 자체가 쉽지 않았다. 구조대와 시민들이 깔린 사람들을 빼내려 안간힘을 썼지만 서로 엉킨 이들은 좀처럼 분리되지 않았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이런 상황은 1시간 넘게 계속됐다. 당시 상황을 찍은 영상을 보면, 좌우가 막힌 약 38평 넓이 골목 한가운데 갇힌 수백명 인파가 엄청난 압력으로 서로를 수평으로 누르면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한 이들이 선 채로 의식을 잃기 시작했다. 사고 현장에서 곧바로 사망 판정을 받은 이들만 45명에 이르렀다. 사상자 규모가 워낙 커서 30일 새벽 4시가 넘어서야 희생자와 부상자를 주변 병원으로 모두 이송할 수 있었다. 사망자 154명 중 여성 사망자는 98명, 외국인은 26명이었다. 경찰은 해밀톤호텔 등 주변 건물에 설치된 시시티브이(CCTV) 녹화영상을 확보해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이번 참사를 두고 기본적 안전 관리에 손을 놓고 있었던 지방자치단체와 경찰 책임론이 제기된다. 사회적 거리두기 전면 해제로 3년 만에 마스크 없는 핼러윈 데이를 맞아 이태원에는 금요일인 28일에도 시민 수만명이 몰렸다. 휴일인 29일 더 많은 인파가 몰리는 상황이었지만, 지자체와 경찰은 안전인력 증원 등 추가 조처를 하지 않았다. 경찰은 마약사건·성범죄 대비 명목으로 137명을 배치했을 뿐이고, 용산구청도 안전관리계획을 세우거나 도로 통제 등을 요청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그 전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은 아니었다.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발표한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과 참사가 발생했다”며 사고 원인을 철저하게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다음달 5일까지를 국가애도기간으로 지정했다. 또 용산구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대책회의 뒤 “사망자 유족과 부상자에 대한 지원금 등 필요한 지원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여야는 이날 각각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고, 당 차원의 모든 정치일정·행사를 전면 중단했다. 정부와 전국 지자체, 주요 기업 등도 예정된 축제, 콘서트, 핼러윈 행사 등을 취소했다.
장나래 기자 wing@hani.co.kr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단독] 심정지 76명 몰리자 안치실 모자라…“분산 이송했다면”
- 17살 친구 함께 숨져…“공부할 시간 떼서 남 도울 만큼 착해”
- 빈소엔 엄마와 딸 사진 나란히…복도선 교복 입은 학생들 울음소리
- “서서 숨진 아들, 내려가지도 못하고…” 아빠 가슴이 조여왔다
- 핼러윈 대비 질문에 “선동” 딱지 붙인 장관 이상민 [김영희 칼럼]
- 퇴근길 이태원역 잇단 발길…추모 공간엔 콜라·과자가 놓였다
- [단독] 사과 안 한 용산구, 참사 전 ‘쓰레기 대책’ 논의만 했다
- 참사 3시간 전, 침착하게 안내한 여성 덕에…그땐 다 무사했다
- [단독] 김용 부른 검찰, 8억 경위 안 묻고 “가족 챙겨라” 설득
- ‘연쇄 성폭행범’ 이주에 화성시 발칵…“법무부, 일방적 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