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생일이라고 딸이 식당 예약해준 날”…통곡의 빈소

권지담 2022. 10. 30.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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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이건 꿈이야. 어떡해. 우리 애기!" 새파랗게 젊은 자녀의 주검을 확인한 부모는 몸을 가누지 못한 채 울음을 쏟아냈다.

"말이 되나. 압사해서 죽은 게." 사고가 일어난 29일 밤 11시55분 딸 서예솔(19)씨의 친구로부터 딸이 숨졌다는 말을 전해 듣고 무작정 체육관을 찾은 안연선(54)씨는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장례는 어떻게 되는 건지 걱정된다"며 눈물을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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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이태원 참사]
생일 축하문자엔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앞으로 갚을게요”
30일 오전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동국대학교 일산병원 장례식장 모습. 연합뉴스

“아니야. 이건 꿈이야. 어떡해. 우리 애기!” 새파랗게 젊은 자녀의 주검을 확인한 부모는 몸을 가누지 못한 채 울음을 쏟아냈다.

“다 거짓말 같아.” 며칠 전까지 함께 웃던 친구의 죽음을 마주한 20대 여성은 전화기를 붙들고 흐느꼈다.

2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 ‘이태원 참사’ 직후, 희생자들이 안치된 수도권 전역의 대형병원 장례식장은 어디나 통곡으로 가득 찼다. 154명의 때 이른 부음을 수용할 여력이 없는 장례식장들 앞에선 주검을 싣고 온 구급대원들과 병원 직원들 사이에 승강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30일 밤 10시30분 현재 희생자 154명은 경기 일산 동국대병원을 비롯한 40여 병원에 나뉘어 안치돼 있다.

희생자 임시 안치한 체육관은 새벽부터 북새통

이날 숨진 이들이 이송된 서울 순천향대병원과 용산 다목적 실내체육관 등에는 가족과 지인의 생사를 확인하려는 시민들이 몰리며 밤새 애를 태웠다.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시각, 주검을 실은 들것이 눈에 띌 때마다 희생자의 가족들이 절박한 울음을 토해내며 달려가 얼굴을 살피곤 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갑갑함에 발을 굴렀다. “왜 전화를 안 받니.” 한 중년 여성은 흐느꼈다. 희생자 가족들은 황망함에 망연자실했다. “말이 되나. 압사해서 죽은 게….” 사고가 일어난 29일 밤 11시55분 딸 서예솔(19)씨의 친구로부터 딸이 숨졌다는 말을 전해 듣고 무작정 체육관을 찾은 안연선(54)씨는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장례는 어떻게 되는 건지 걱정된다”며 눈물을 훔쳤다.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던 딸의 마지막 메시지

날이 밝으며 희생자들의 신원이 속속 확인되자 희생자들이 안치된 병원의 장례식장엔 곳곳에 유족들이 모여들었다. 현장을 찾은 유족과 지인들은 한목소리로 “믿을 수 없다” “거짓말 같다” “현실 같지 않다”고 했다. 피해자 대부분이 건강한 청년인데다, 한번도 상상하지 못한 사고여서 남은 이들의 충격은 더 큰 듯했다.

“우리 수정이(가명) 어딨어. 우리 수정이가 나를 기다릴 텐데 배고프겠다.” 이날 이대목동병원 로비에서 만난 한 유족은 세상을 떠난 20대 손녀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서성이고 있었다. 노인은 “원래 바깥에 싸돌아다니는 애가 아니다. 우리 아기 불쌍하고, 저렇게 찬 데 두고 어쩌냐”며 눈물을 훔쳤다. 서른살 딸을 잃은 60대 남성도 “집안의 꽃 같은 아이였다”며 울음을 삼켰다.

김아무개(58)씨도 딸(27)이 남자친구와 이태원에 갔다가 사고로 숨졌다는 참담한 소식을 듣고 막 병원에 도착한 참이었다. 아빠의 생일이라고 ‘엄마와 함께 가라’며 고급 식당을 예약해준 착한 딸이었다. 김씨는 “딸이 예약해줘서 아내와 맛있게 식사를 했는데, 저녁 내내 계속 통화가 되지 않았다. 1천만분의 1도 안 되는 확률로 벌어지는 이런 일이 우리한테 벌어질 줄은 몰랐다”며 고개를 떨군 채 흐느꼈다. 숨진 딸이 김씨에게 마지막 보낸 생일 축하 메시지엔 “그동안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갚아나가겠습니다ㅎㅎ”라고 적혀 있었다.

몸 누일 곳 찾기도 어려웠던 마지막 길

가장 많은 희생자(14명)가 안치된 일산 동국대병원에선 이날 아침 주검을 두고 장례식장 쪽과 구급대 사이에 언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20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도착한 구급대에 장례식장 쪽이 ‘일반 사망자와 빈소 문제로 안치실을 모두 이태원 참사 희생자에게 내주기엔 역부족’이라고 난색을 보인 까닭이다. 구급대가 싣고 온 네구의 주검은 병원에 들어갔다가 끝내 도로 실려 나왔다. “아무튼 저희는 지금 안 됩니다.” 병원 쪽은 선을 그었다. 몸 누일 곳조차 찾기 어려운 주검을 감싼 갈색 모포 밖으로 즐거운 외출을 위해 골랐을 분홍빛 운동화가 쓸쓸하게 삐져나와 있었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심우삼 기자 wu32@hani.co.kr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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